이 글에서 인상 깊은 것은 조선족들이 6.25전쟁에 참전만 하지 않았어도 6.25 전쟁은 일어나지도 않았거니와, 상당히 미뤄졌다는 말이 인상 깊게 남습니다.
역시 한반도 민족 영토 분단의 원흉엔 선족들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서의 역사 진실을 인정해야 할 사항입니다.
물론 이런 얘길하면 갈길이 날뛰는게 선족들 현실이지요. 이제 우리 한국인이라도 6.25 전쟁의 또다른 진실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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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南侵 주력부대는 朝鮮族 6만5,000명”
현대사 발굴 : 독립투사 김동삼 선생의 후손 ,金中生씨의 증언
박종주 월간중앙 차장 (jjpark@joongang.co.kr)
6·25 한국전쟁의 이면에는 조선족이 있었다.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던 조선의용군을 포함한 6만5,000명의 조선족이 전쟁 전에 북한으로 들어가 인민군 주력부대로 재편된 후 南侵을 선도했다. 전쟁 도중 입대한 병력과 중공군 통역으로 참전한 인원까지 치면 모두 10만명의 조선족이 6·25에 참전했다.
조선의용군을 직접 체험하고, 타의에 의해 인민군으로 참전했던 김중생씨의 증언을 통해 조선족의 참전 秘史와 6·25 직전 인민군 최전방 부대의 움직임을 복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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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용군이 다시 한번 역사의 회오리 속으로 끌려들어간 계기가 바로 북한으로의 입국과 6·25 참전이었다. 중국공산당은 만주 진출후 사단 규모로 확대되고 전투경험도 풍부해진 조선의용군을 6·25 이전에 북한으로 이동시켰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북한 인민군으로 재편된 조선의용군은 6·25 전쟁 발발 당시 인민군 최전방에서 남침(南侵)의 선봉대 역할을 맡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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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동안 모두 10만명의 조선족이 한국전쟁에 참전
유엔군 참전으로 북한군이 수세에 몰리자 중공군이 개입하기에 이른다. 중공군은 한꺼번에 수십개 사단을 전선에 내보냈다가 병력 손실이 발생하면 새로운 부대로 교체하는 방법으로, 한국전쟁 기간 동안 총 108개 사단 규모의 병력을 북한으로 보냈다. 이때 참전한 중공군은 조선족이 아닌 한족(漢族)이었기 때문에, 북한으로 배치될 때 반드시 조선족 통역요원이 동행했다고 한다. 1개 사단에 150명 정도의 통역이 배치된 것으로 추산하면 중공군을 따라 참전한 통역요원만도 2만5,000명이나 된다. 때문에 3년여에 걸친 한국전쟁중 북한에서 활동한 전체 조선족의 규모는 10만명에 달하리라는 것이 김중생씨의 분석이다.
관련자료와 퇴역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집계해낸 이같은 자료를 종합하고 김중생씨가 내린 결론은 “조선의용군이 밀입북하지 않았더라면 6·25 전쟁은 아예 없었거나 있었다 하더라도 상당기간 뒤로 미뤄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