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글>
얼마전 남아공 한국 대사관에 의해 난생처음 정말 불쾌한 공포를 경험했습니다.
지난 8월 남미를 방문하는 길에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 타운에 한시간 반 가량 경유를 하게 되었습니다. 경유하는 동안 비행기 안에 남아있었어도 무방했지만, 워낙 오랜시간 비행기를 타고 난 후라 잠시라도 내려서 비행기 바깥 공기도 쐬고 걷기도 해야 피곤이 덜 할 것 같아서 케이프타운 공항에 내렸습니다. Transfer 출구로 나가면서 경유를 증명하는 카드를 받고 좌석 확인을 하면 공항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앞에서 경찰들이 여권을 요구하더군요. 보니까 아시아사람들 여권만 보여달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별 생각 없이 여권을 보여 주었는데, 보고 돌려줄 생각을 않는겁니다.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 보니 다들 한국분만 있는것 같더군요. 그래서 그 경찰이 쥐고 있는 여권을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모두 대한민국 여권이었습니다. 뭐, 그 당시에는 잠깐 조사하려고 하나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다 빠져나오고 나니까 그 여권을 쥐고 있던 경찰이 우리보고 따라오라고 하더군요. 의아했죠.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어서 우리를 데리고 가는건지 아무 설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 옆에 있던 경찰에게 물었죠.
"도대체 왜그러는거냐."
"조사할 게 있어서 그런다."
"무슨 조사인지 말해줄 수 있나."
그 경찰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씩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네가 예뻐서 그냥 보낼수가 없어서 그런다."
이 상황에서 적절한 농담도 아니고, 이 무슨 부녀자 희롱하는 말이랍니까.
어이가 없었지만 그저 그가 농담처럼 이야기 하는걸 보니 심각한 일은 아닌가 보다 하고 그저 따라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비행기 안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 같이 가고 있는 한국분들이 열댓명은 되더군요. 그분들 모두 어리둥절하고 조금 두려운 표정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공항 안 비밀통로(물론 비밀통로는 아니겠지만 우리가 한번도 들어가 보지 못했던 안쪽 구역들)를 한참 구불구불 돌아서 들어갔으니까요.
한참을 그렇게 따라 들어갔더니 웬 철창 문이 나옵니다. 그리고 경찰이 우리보고 그 안에 들어가라고 하더군요. 그제서야 확 두려운 마음이 들면서 그앞에서 주춤 하게 되더군요. 별 별 생각이 다 났습니다. 왜 이곳에 우리를 끌고 온 걸까, 마치 감옥처럼 보이는 이 안에 들어갔다가 다시는 못나올 것 같은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모르는 동안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우리나라 사이에 문제가 생겨서 우리나라 사람들을 인질로 잡으려는건 아닐까, 별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급기야 한 한국분이 화가나서 한국말로 소리치더군요.
"도대체 뭐야 이 씨X, 한국인들만 잡아다가 지금 뭐하는거야~!!"
모두들 겁먹은 눈초리였습니다. 아무래도 이 중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듯 했습니다. 다들 한국말로 수군거리고만 있지 아무말도 없었으니까요. 저도 사실 영어를 잘 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가만히 있을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말해주지 않으면 들어갈수 없다. 모두들 겁먹고 있지 않나?"
"일단 들어와라."
"무슨 이유인지 말해라."
"아, 일단 들어와서 이야기 해라."
결국 어쩔수 없이 그 무시무시한 철창 안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 안에는 작은 사무실 같은게 있었고 몇분의 한국분이 더 있었습니다.
그리고 너덧 명의 경찰들이 우리의 여권을 이상한 기계 불빛에 비춰보고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는 등 나름대로 분주하더군요. 그렇게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걸꺼라고 마음속으로 위안하면서, 그곳에 계신 한국분들과 서로 위안의말을 주고받으면서 30분 정도가 흘러갔습니다.
무슨 일인지에 대한 질문에 경찰은 우리가 비자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민국에서 나와서 이야기를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어이없는 대답을 하더군요. 원래 남아프리카에 비자 필요 없는 걸로 알고 더군다가 경유인데 무슨 비자가 필요하냐고 했더니 다시 우리의 여권이 가짜여권이기 때문에 보낼수가 없다는 어이없는 대답을 합니다. 우리 다음 비행기 탈수는 있는거냐는 질문에 그것도 알수 없다, 기다려 봐야 한다는 모호한 대답만 합니다. 한 아저씨가 화가 나서 소리를 치며 뭐라뭐라 하자 그 경찰이 대뜸 "너는 여권이 잘못돼서 못간다." 하더군요. "뭐야? 이 새X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지금 뭐하는거야?"
아무래도 상황이 험악해서 제가 그 아저씨께 말했죠.
"지금 아저씨가 화내니까 이 경찰이 농담하는 거예요. 화내지 마세요."
농담이었다는 말에 조금 수그러든 아저씨는 자칫 진짜로 안보내줄까봐 조용히 있어야지 하며 수그러드시더군요...-_-
조금 더 있다가 그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한 경찰이 와서 종이를 한장 내밀어 보여주는데 우리나라 대사관에서 보낸 공문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여권 두개가 분실되었는데 그 여권을 가진 사람이 이 비행기에 탑승했을지도 모르니 조사를 해서 잡아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여권 조사를 철저히 받아야 했으며, 심지어 남미 교민분들은 여권이 우리나라 여권과 조금 달라서 이상하다고 보내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중간에서 그분들 교민 신분증을 보여주고 다른 이유를 설명해 주고 이해를 시켜야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보다 앞서 한 커플이 잡혀서 의자에 앉아 있는데 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여권이 분실된 여권과 같더군요. 저는 어설프게나마 이 상황을 통역해 줬다는 이유로 아무래도 조선족으로 보이는 그사람들에게 이곳에 잡혀 있어야 하는 이유와 이것은 이 경찰들의 잘못이 아니라 한국 대사관이 요청한 일이라는것을 설명해 주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그곳을 풀려 나오니 비행기 탑승을 해야 하는 시간이더군요. 한시간 반을 경찰서 안에서 꼬박 보내고도 우리는 허탈하게 웃어야 했습니다. 그저 인생에 있어서 재미있는 추억으로 생각하자고 애써 위안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사실 저는 화가 납니다. 그냥 넘어가서는 안될 일이라 생각됩니다.
이 상황이 만약 남아공 경찰들 자체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어쩔수 없는 일이지만, 분명 한국 대사관에서 그 경찰들에게 요청한 일이라면 분명 대사관에서 한명 쯤은 공항에 나와 있었어야 하는게 아닌가요?
우리나라는 영어권 나라가 아니며 아무리 영어를 공부 했다고 해도 외국인과 대화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더군다나 탑승객 거의가 나이가 드신 분들이 많았는데 특히 남미 교민분들은 영어보다 스페인어를 쓰기 때문에 영어가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만약 저라도 영어를 할 줄 몰라서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불가능한 상태였다면, 몇몇 분들 특히 교민분들은 비행기를 탈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혹 몇분이 욱하는 성격에 그 경찰들과 부딪히기라도 했다면, 그래서 혹여라도 공무집행 방해 등으로 잡히기라도 했다면 그 손실은 누가 책임질 것이란 말입니까?
그리고 그 곳에 끌려가서 상황설명을 듣기까지의 한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우리가 영문도 모르고 겁에 질려서 떨며 남아공 경찰들에게 우스개거리나 되고 있는 동안 우리나라 대사관 분들은 우리나라 국민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하고 계셨던 겁니까?
요즘 조선족들을 상대로 위조여권이 우리나라가 아니라 중국쪽에서 많이 만들어진다고 들었습니다. 아마도 그 분실된 여권도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만들어낸 잘못으로 우리나라 국민이 이런 피해를 보아야 하는 겁니까? 그것도 우리나라 대사관에서의 요청 때문에 말입니다. 만에 하나 우리나라 국민이 그곳에서 무슨 잘못을 했더라도 대사관에서는 우리국민을 보호하고 그들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하물며 아무 죄도 없이 그저 여행을 하고 있던 선량한 우리를 그저 방치해서 외국인으로부터 횡포를 당하게 하고 조롱거리로 만들어 버린 것에 대해 분노를 금치 못합니다. 대사관 직원이 달랑 대사 한분과 비서 두명만 있었던 것은 아닐텐데, 혹 대사관 직원들이 너무 바빠서 손이 부족했다면 교민중 한분만 섭외해서 도움을 부탁했어도 우리가 외국에서 이런 횡포를 자국민에 의해 스스로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외국에서 한국을 위해 애쓰시는 대사관 직원님들, 타지에서 고생하시는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왕 일하시는거 제발 눈가리고 아웅하는 행정이 아니라, 몸소 발로 뛰는 행정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을 위해 일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 놓고 다른 나라를 여행할 수 있고, 그들에게 우리나라가 우습게 보이지 않을수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얼굴은 그곳에서 일하시는 여러분들에 의해 인식되어지고 만들어집니다. 여러분들이 우리나라 국민을 위하고 보호하는 만큼 그들도 우리나라 국민들, 우리나라 여행자들을 우습게 보지 못하고 대우합니다. 그것을 마음깊이 새겨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