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05-08-31 13:18]
지난 11일 밤, 콜롬비아와 접경한 에콰도르 북부 만타 항구. 정원 15명의 작은 배에 무려 113명이 올라탔다. 고향에서 먹고살 길이 막막하자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모험을 건 중남미 서민들이었다. 그러나 이 배는 항해에 나선 지 하루 만에 콜롬비아 남서부 태평양에서 침몰했으며, 결국 9명만이 지나가던 어선에 의해 구조됐다.
오는 2006년 미 의회 중간선거에서 주요 쟁점의 하나가 불법이주자 문제다. 현재 미국에는 1,200만명의 불법이주자가 있으며, 보수세력과 공화당 성향의 언론은 더욱 강경한 이민정책을 촉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공화당의 막후 실력자이자 하원원내총무인 톰 딜레이 의원(텍사스주)이 불법이주자에 대한 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등 불법이민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텐트에 수용…교육받을 자격 없다”-
미국의 일간지 ‘휴스턴 크로니클’에 따르면 딜레이 의원은 8월 초, 텍사스주의 당 회합에서 “불법이주자의 적발·추방은 경찰이 맡아야 한다”면서 “연방직원의 임무는 구속된 불법이민을 위해 텐트라도 좋으니 수용소를 확보하는 일”이라고 발언했다. 심지어 그는 “불법이주자는 미국에서 교육을 받을 자격이 없다”면서 미국에서 태어난 이에 대해 자동적으로 시민권이 부여되는 현행제도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불법이주자 문제가 본래 출입관리국의 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딜레이의 ‘경찰 책임론’은 불법이주자에 대한 보수파의 강경자세를 대변하는 것이다. 이에 히스패닉계 지원단체는 “인종차별 발언이며 용인할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보수파의 주장은 언론의 강경 논조도 등에 업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5월 폭스뉴스는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3%가 불법이주자 문제에 대해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답변했다고 보도했다.
불법이민에 대해 강경자세를 고수해온 폭스뉴스의 보수적 평론가인 빌 오 레일리는 최근 ‘멕시코 성인의 20%가 불법입국의 수단을 이용해서라도 미국에 가길 원하고 있다’는 뷰 히스패닉 센터의 조사결과를 인용, “멕시코 성인의 40%가 기회가 있으면 미국에 올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근거로 오 레일리는 “이대로라면 미국은 멕시코인에 ‘점거’되고 만다”며 더욱 엄중한 국경감시를 촉구했다.
-이민정책 실효성 논란-
중남미 사람들이 미국으로 밀입국할 때는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를 중간 기착지로 이용한다. 이에 뉴멕시코주와 애리조나주는 국경을 완전히 차단하는 조치를 취하는 등 국경 경비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두 주는 불법 이주자들이 마약·매춘 등 범죄조직들과 결탁해 미국의 치안을 위협한다는 이유를 내세웠고 멕시코 정부는 강력히 반발했다.
두 주의 지사가 모두 ‘민주당’이지만 중간선거를 의식해 이민문제에 강경 자세를 취함으로써 보수표를 획득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화당의 제프 플레이크(애리조나주 6구역) 하원의원은 “지난 20년간 미국의 국경 통제 정책은 실패했다”며 최근 민주당 의원들과 이민정책 개정을 위해 손을 잡았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28일 보도했다.
1995년 더욱 강화된 ‘이민개혁통제법’이 실패한 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으며, 지난해 부시 대통령은 새 이민정책으로 ‘임시 외국인근로자 제도’를 제안했다. 미국 내 불법 이주자들이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해주는 조치이지만 공화당 내에서도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불법이주자들이 미국에서 차지하는 경제적 효과를 강조하는 측은 “2010년까지 저임금 서비스 산업을 중심으로 1천만개의 일자리가 빌 것”이라고 우려한다. 비즈니스위크 최신호는 “미국기업들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경제력이 커진 이들을 미개척 신규시장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기업들이 다양한 혜택을 제공함에 따라 불법이주자들을 보호하고 양산한다고 비판하는 국수적 보수주의자들은 “불법 이민이 미국의 자주권과 안보를 위협하며 영구 체류증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은 불법 이민을 부추길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양쪽 다 ‘(이민정책의) 현상유지가 더는 지속될 수 없으며,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부시 대통령은 중간선거를 의식해, 연내에 모종의 이민정책을 낼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