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보여드릴께 있어서 퍼왔습니다. 님들이 혹시 모르고 계시는 내용일것같아서...
진심으로 권고컨대 나와서 바깥세상을 좀 돌아보시길...
--------------------------------------------------------------------
중국 한겨레사회 어디까지 왔나?-광동편
민족의 래일 보여주는 광동 한겨레사회
▲ 자료-흑룡강신문사
조선족 6만여명 한국인 3만여명 2000년후부터 본격진출 한국과의 경제관계 량적팽창에서 질적협력관계로 변화 현재에 만족 미래에 락관... 민족문화 관련 아쉬움도 커
중국의 남쪽끝에서도 한겨레는 숨쉬고 있었다.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인 심수를 중심으로 주강삼각주 경제지대를 구성해 중국경제 주체로 떠오른 광동성에 진출한 중국조선족과 한국인이 만들어내는 한겨레사회는 활력이 넘쳤다.
이곳에 먼저 자리를 잡기 시작한 중국조선족들이 집거지를 이루기 시작해 민족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뒤이은 한국인들의 진출로 서로 인정하고 협력하는 자세로 상호발전을 해나가는 새로운 중국인 한겨레사회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상호 존중과 리해의 기초에서 형성되는 광동한겨레사회는 기생관계가 아니라 공생, 공영의 토대우에서 아직까지 활발한 교류와 협력은 아니지만 서로 인정하고 화합하는 플랫폼이 형성된만큼 향후 교류의 물고가 트여 점차 확대될것으로 보인다. 1992년 중한수교후 급성장을 이루는 중한교역과 한국인 대광동투자활성화에 따른 한국인의 대거진출 및 상응한 중국조선족의 동반진출이 붐을 이루며 광동성 한겨레사회도 성장을 거듭, 지난 80년대중반까지만 해도 열손가락으로 헤아리던 한겨레사회가 현재는 약 10만명에 육박하고있다. 초보적인 통계에 따르면 조선족이 약 6만여명, 한국인이 약 3만여명에 달해 무시할수 없는 군체로 성장, 이들은 지역경제에 기여하며 중한경제교류의 새장을 열어가고 있다.
광동 한겨레사회 형성과정 및 거주양상
광동 한겨레사회형성에 불씨를 살린것은 심수, 주해, 산두에 경제특구를 설립하면서 시작된 일본기업의 광동진출이였다. 지난 80년대후반부터 중국조선족은 일본어우세를 발판으로 심수, 광주, 동관, 혜주 등지 일본기업의 통역, 총무, 관리, 생산 등 요직에 속속 취직하면서 점차 세력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당초 일본어인재양성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한발 빨랐던 흑룡강성 계서지역(계동, 밀산) 조선족들을 주축으로 광동 한겨레사회의 모태가 형성되였다. 게다가 1992년 중한수교로 인한 한국기업의 광동진출로 한국인과 중국조선족이 대거 진출하면서 완구, 신발, 가방, 전자부품을 취급하는 제조회사와 서비스업소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 한겨레 경제체계의 구색을 갖추고 소규모의 코리아타운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심수심업실업유한공사 김재광총경리는 1982년당시 건축공정병으로 파견돼 심수개발에 참가, 후에 공정부대전체가 회사로 전환하면서 심수에 정착하게 됐는데 그때 사람들이 심수에 진출한 첫 조선족으로 알려지고있다. 물론 문화대혁명전에 광동지역에 배치받은 조선족도 여러명 있는것으로 알려지고있지만 이들은 대부분 현지사회에 조선족으로 알려지지 못하는 등 신분증까지도 한족으로 돼버렸다고 한다. 광동조선족련합회 최용균회장에 따르면 그가 1988년 할빈공업대학을 졸업하고 현지 모 국영기업에 배치받을 당시만해도 심수에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도 없었고 제대군인이나 대학생을 포함해서 조선족이 고작 몇십명에 불과했다. 광주스피드물류유한회사 김철룡대표에 따르면 광주지역은 심수지역에 비해 조선족이나 한국인진출이 더욱 늦은데 1993년 그가 광주에 진출할 당시만해도 한국업체나 조선족업체를 거의 찾아볼수 없었다. 1995년 광주-서울 직항로 개설, 2001년 8월 주광주한국총령사관 설립 등을 계기로 2000년대에 들어서서 최근 4~5년간 조선족과 한국인이 기하급수로 늘어나 현재 전반 광동지역에 한국인 약 3만여명, 조선족 약 6만여명이 상주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심수에 한국인 1만5천 명, 조선족 3만명, 광주에 조선족 1만여명, 한국인 8000여명, 동관에 조선족 8000여명, 한국인 4천여명이 있는것으로 밝혀졌다. 광주 백운구 강패로 운천취정아파트단지에서 명월민박을 경영하고있는 윤덕화, 박수자씨(흑룡강성 벌리현) 부부에 따르면 이 지역 주변의 아파트단지에서 아파트를 임대해 민박을 경영하거나 무허가사무실을 경영하고있는 조선족이나 한국인들도 20여가구에 달한다. 심수 보안구 도원거는 30여가구가 모여사는데 90%가 흑룡강성 계서지역출신으로 현지 한겨레사회에서 계서마을로 통하고있다. 현재 광주의 원경로, 광원신촌부근, 심수의 사정, 도원거, 화교성, 동해화원 등지에 10여가구에서 몇십가구씩 모여살고 한국인이나 조선족이 경영하는 식당, 식품점, 노래방 등 업소가 점차 늘면서 원시적인 코리아타운이 형성되였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이 광동전역에 흩어져 살고있으며 업종도 단일한 서비스업체위주로 자체조혈기능을 갖춘 코리아상권형성은 먼 후날의 얘기로만 통한다.
본지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월소득이 1만원이상인 한국인이 50%이상에 달했으며 조선족은 5000~1만원소득계층이 반수이상에 달하는것으로 집계됐다. 거주상황을 놓고 보면 한국대기업의 주재원이나 중소제조업체의 사주들은 대부분 아파트를 소유하고있는 반면 기타 물류, 류통분야에 종사하는 한국인들은 아파트를 임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였다. 조선족들의 경우 심수나 광주진출기간이 7~15년에 달하는 계층, 즉 35세이상은 거의가 할부형식을 리용해서라도 자체아파트를 보유하고있는것으로 드러나 비싼 아파트가격에도 불구하고 조선족의 거주조건이나 환경은 량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광동현지에서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자녀들은 대부분 국제학교나 주변지역학교에 다니는것으로 알려졌는데 심수의 경우 영어교육을 중시하고있는 리중, 백석주소학교에 다니는 한국인자녀들이 많았다. 조선족들의 경우 대부분 거주지와 가까운 한족학교에 다녀서 민족언어교육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조선족유지인사들에 따르면 현재 조선족유치원이나 학교설립을 운운하며 추진하고 있지만 가시화되려면 산넘어 산이여서 이런 상황이 상당기간 지속될것으로 보고있다.
한겨레단체 지역 사회의 구심점
광동지역에 한겨레사회가 급속히 팽창하면서 초기 기호나 취미생활에 따른 축구, 골프, 바둑, 낚시 등 각종 동호회에 국한되던 단체들이 발전하여 한국상회나 조선족련합회 같은 지역 한겨레사회의 구심점이 출현해 인기를 모으고 있다. 현재 심수, 광주, 동관, 혜주에 모두 한국상공회가 있어 이들을 주축으로 한국인사회의 화합과 단결이 이루어지고 있다. 심수 한국상공회 강희방회장에 따르면 심수한국상공회는 글로벌시대 중국내 한국인과 조선족동포사회의 상호교류, 협력을 추진해 좋은 평판을 얻고 있다. 광주 한국상공회 정현혁회장은 중한 량국간의 상호 보완적인 교역구조와 중국의 시장개방 확대 등에 힘입어 량국의 협력시장은 불가분의 관계라며 중국진출 한국기업의 창구가 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관 한국상공회 리한성회장은 광주, 향항, 주강삼각주의 경제특구 심수, 주해를 잇는 지리적 요충지에 위치한 동관에는 주로 한국 제조업체가 위주라며 기업인을 위한 홈페이지를 개설해 기업활동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상기의 한국상공회는 조직체계가 비교적 잘 돼 있고 회원사들도 많아 현지 정부에서도 특별히 중시하고 있는데 투자유치나 투자환경평가 등에서 많이 의뢰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선족들의 대거 진출로 인한 부작용으로 자질이 낮은 일부 조선족의 추태로 인해 조선족 범죄률증가, 이미지 추락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현지인들에게 알려지는 상황에서 이를 개변하기 위해 최용균, 김재광, 태백, 김룡수, 유성호, 김철룡, 남화섭, 최춘서 등 조선족엘리트들을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조직된 광동조선족련합회는 지난해 8월8일 정식 설립돼서부터 짧은 1년 사이에 민족사에 길이 남을 큰 일들을 해나가며 광동지역 조선족들의 대변인으로 부상했다. 지난해 10월1일부터 3일까지 국경절 련휴를 리용해 광동조선족 제1회 운동회를 열었는데 광동각지에서 5천명의 조선족들이 참가해 대성황을 이루었다. 올 1월 23일에는 또 제1회 광동 조선족문예공연행사도 성공적으로 치뤄 색안경을 끼고 회의적으로 바라보던 사람들도 감탄하며 따르게 되였고 정부의 인정을 받아 현재에는 각종 정부행사에 공식적으로 초대되고 있다. 광동조선족련합회의 사심없는 노력으로 광동지역 조선족들의 위상은 크게 높아졌고 새로운 민족형상을 수립했으며 련합회도 발전, 장대해져 광주, 혜주, 동관 등지에 분회를 설립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심수 남산구조선족로년협회 서재봉회장에 따르면 광동지역에는 자식을 따라 이주해온 로인들은 약 400~500명. 심수에만 로년협회가 3개나 된다. 로년협회활동실이 없는 상황에서 조선족로인들의 모임이나 행사는 주로 식당을 리용하는 형식이여서 경제적인 지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이런 실정에서 협회에서는 이를 의무로 간주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또한 민족전통문화계승, 자녀교육, 조선족취직, 결혼 등 문제까지도 고민하고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들은 올 들어 심수 금봉빌딩에 사무처를 세우고 전문인력 2명을 배치해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http//:www. gdclweb.com이란 협회 홈페이지를 개설해 정보와 자원을 공유하면서 조선족사회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현재 광동조선족련합회는 기업인들을 위한 단체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광동전역 조선족들의 대변인과 후원으로 거듭나고 있다.
한겨레사회 경제 실태 점검
광동성은 인구 8642만명, 면적 17만 8000평방킬로미터로 각각 중국전체의 5.8%와 1.85%에 불과하지만 경제적인 면에서 GDP 1위, 외자유치 1위, 대외교역 1위를 자랑하며 지난 10년간 년평균 10%이상의 고속성장을 이룩하며 가전, 통신기기, 완구, 시계, 신발 등 세계 최대규모 생산거점으로, 중국 최대의 물류, 류통의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다. 광동성이 중국 최초의 개방지역으로 대만, 향항, 오문을 비롯한 화교자본(전체자본의 60%이상)과 미국, 일본, 유럽 등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국기업들은 정치적, 지리적, 주관적 등 요인으로 산동반도, 료동반도의 진출은 활발했던 반면 이 지역의 교역이나 투자는 미미했다. 하여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과 광동성의 직교역 비중은 30%미만에 머물렀고 대부분이 향항을 우회한 간접교역방식이였다. 중한수교후 한국과 광동성간의 교역은 산업구조의 동질성으로 인해 가파른 상승세가 이어졌고 2000년대에 들어 광동성의 제대로 된 생산 및 수요기반을 활용해 중국 내수시장을 겨냥한 한국의 투자가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왔는데 한국의 대중국수출의 30%이상이 광동성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광주KOTRA(대한무역진흥공사)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말까지 한국의 대광동성수출은 132억1천만달러로 전년 동기대비 29.1% 증가, 이는 한국 대중국수출액 453억달러가운데 약 30%, 흑자규모 186억 달러가운데 51억1천만달러를 차지했다. 한국의 주요수출품목은 반도체, 철강, 석유화학제품, 전자통신부품, 비철금속 제품 등이며 광동성의 수출증가 및 내수 확대로 철강, IC전자부품, 화공원료 등 원,부자재수출이 지속 증가하고 있다. 교역규모가 큰데 비해 투자는 미미한 수준인데 현재 한국 대광동성 투자비중은 건수기준 3%, 금액기준 4%에 그쳐 산동, 료녕, 천진, 강소, 길림, 북경, 상해, 절강 다음순이다. 지금까지 광동성에 진출한 한국기업은 319개(순 투자기준), 총투자액은 3억8600만달러에 달해 광동성 외자가운데 7위를 차지한다. 투자품목도 대기업은 IT와 관련된 업종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중소기업은 봉제, 완구, 전자조립 등 단순로동집약형 산업에 치중되여 있다. 지역적으로는 주로 주강삼각주지역에 집중돼 있고 향항과 린접한 운송망 우점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OEM(오더에 의한 수동생산방식)수출형 기업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광동성의 산업구조의 특성을 살려 업종별로 특정지역에 집중돼 계렬화 내지 협업화를 이루고 있는 현상도 보이고 있다. 례를 들면 광주, 번우에는 화학원료, 소비재기업 , 심수, 혜주에는 통신기기, 반도체, 컴퓨터, 오디오기업, 동관에는 전기전자부품, 컴퓨터부품 완구제조기업, 불산, 강문에는 철강, 금속, 기계 등 기업이 위주로 포진해 있다. 한국 대기업중 광동성에 가장 많이 투자한 기업은 삼성그룹으로 심수, 동관, 혜주, 순덕 등지에 총 6개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현대, 포철, LG전자, LG화학 등이 진출해 있다. 현재 전자정보통신부품, 고급소비재 및 첨단 IT제품, 환경보호설비, TV홈쇼핑류통, 기반시설확충 관련설비 및 중장비분야의 투자가 유망품목으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전력난, 고임금난, 인력난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국조선족은 초기 광동지역 일본기업진출을 발단으로 중한수교후 한국업체의 대거 진출과 더불어 붐을 이루면서 점차 방대한 경제군체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첨단기술, 제조업, 서비스업을 포함해 현재 심수, 광주, 동관, 혜주 등에 조선족업체가 무려 2000여개로 추산, 그중 1000만원이상의 규모를 갖춘 업체가 200여 개에 달한다. 첨단기술분야에 중국조선족업체들이 많아 전체 조선족업체중 약 10%를 차지, 특히 휴대폰 배터리, 주변기기, 가전, 광전자, 신소재 등 분야를 포함해 점점 규모화되고 있다. 이들은 고학력, 고기술 소유자로서 석사학력 이상을 소유한 조선족엘리트가 주체를 형성, 남화섭총재가 이끄는 심수할루야전자유한회사와 최영균사장이 이끄는 심수승합테크놀로지유한회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자본금 340만달러, 자산 1100만달러에 달하는 심수할루야전자유한회사는 핸드폰부품, 통신기기소재판매, 개발을 선도하고 있는데 현재 그룹 년간매출액이 1억달러이상에 달하고 있다. 정밀전자화상시스템분야의 대표적 업체인 심수승합테크놀로지유한회사는 월매출액이 1천만원이상에 달하며 공급이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여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사이버네이션, 통신기기, 정밀기기, 미터 등 분야의 회사를 경영하는 중국조선족업체도 상당하지만 규모를 갖추고 내세울만한 업체는 거의 없다. 전자분야에 종사하는 조선족업체의 80%이상이 한국, 일본, 중국 대만에 의존하고 있다. 광동지역은 타지역과 달리 제조업이 발달한 지역으로 초기 일본, 한국업체에서 근무하다 독립해 가방, 완구 등 봉제업에 종사하여 성공한 조선족이 상당하다. 이밖에 사출, 금형업체와 식품가공 등에 종사하는 기업인도 일정한 비률을 차지, 대표적인 사례로북경대 출신 리학철씨가 이끄는 심수한융유한회사는 자체개발 브랜드김치인 상가김치를 광동지역은 물론 향항, 오문까지 대량 수출하고 있다. 광동조선족련합회 상무부회장인 최춘서씨가 이끄는 혜양금형공장도 탄탄한 실력으로 삼성, LG, 소니 등 대형회사들에 스피커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로 성장일로를 달리고 있다.
광동지역 조선족동포의 1차 산업으로 지목되는 서비스업체중 음식점, 노래방, 식품가게, 숙박업소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광동지역의 중국조선족음식업체 1인자인 김룡수씨(흑룡강 계동)가 이끄는 심수 이화원한식당은 자산가치가 1천만원이상, 2개의 분점을 두고 있으며 하루 매출액이 4만~5만원에 달한다. 10여년간 탄탄한 기반을 마련해가고 있는 광주의 고려식당도 광주지역의 으뜸가는 한식당으로 자리매김했다.
중국 최대의 물류, 류통의 집산지에 걸맞게 물류업체가 특별히 발달한 광동지역에서 물류분야에 활약하는 중국조선족들이 두드러진다. 작은 자본으로 인맥관계만 형성되면 창업할수 있는 분야여서 주로 젊은이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김철룡씨가 이끄는 스피드물류유한공사는 심수, 광주, 위해에 3개 지사를 두고 신용제일, 시간제일의 취지로 영업령역을 확장해 한달에 600~700건의 실적을 올리고 있다. 이외에도 상민물류, 동우월드 등을 포함해 광주전역에 약 40여개 조선족물류업체가 포진하고있다.
실력조선족기업체 사장들이 주축되여 설립된 광동조선족련합회의 역할로 조선족업체간의 과당경쟁, 악성경쟁을 피하고 업체간의 자원과 정보를 공유하며 방대한 조선족기업네트워크를 구축해 튼튼한 생존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한겨레사회 화합과 공생의 미래 밝다
광동 한겨레사회는 다른 지역과 달리 비교적 높은 자질을 소유한 한국인과 조선족이 만나서 자체의 커뮤니티를 확보하며 통합적인 커뮤니티를 지향하고 있어 비교적 유연하고 포용적이고 능동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
광동조선족련합회 최용균 회장은 아직도 약세군체로서의 조선족과 한국인의 협력 필요성을 들면서 상호 존중과 리해의 기초우에서 향후 협회간, 업체간의 활발한 교류와 협력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물론 아직도 풀어야 할 과제도 남아있지만 현재 동호회를 매개로 문화, 체육행사를 통해 원활한 접촉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에서 미래를 락관했다.
광동조선족련합회 상무부회장이며 비서장인 김룡수씨는 상호에 대한 비방과 질책에 앞서 우선 자기 문제점을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서로 상대방의 립장에서 문제를 생각하다보면 원망과 반목이 사라질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였다.
심수할루야전자유한공사 남화섭총재는 중국조선족들은 반드시 한국과의 교류와 협력이 있었기에 오늘날이 이루어졌다는것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한국인과 조선족과의 모순은 가치관과 사고방식에서 비롯된것으로서 형제간의 모순과 비슷하다며 미워도 다시 한번, 못해도 다시 한번 서로 관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계가 하나가 되는 마당에 편견을 버리고 공존, 공생, 공영의 길을 모색하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력설했다.
대기업에서 장기간 인사담당을 맡아온 리춘재(흑룡강 할빈시)씨는 한국기업에서 조선족을 채용할 때 고중졸업생도 대학졸업생이상의 대우를 해주는 사례를 들면서 조선족자체의 위치선정에 찾아볼 문제점도 많다며 실력과 자질을 키워 한국대기업의 문을 두드리는 조선족인재가 많아야 상호간 돈독한 신뢰관계를 구축할수 있을것이라고 말했다.
주광주 한국총령사관 남상욱총령사는 심수지역 조선족기업인들의 자질을 높이 평가하면서 한국기업의 현지정책에 기여한 조선족들의 역할에 대해 긍정했다. 향후 상호신뢰를 구축하여 한겨레사회의 번영에 일조할것을 희망했다. 광주KOTRA무역관 함정오 관장은 한국인과 조선족간에 존재하는 불협화음을 해소하기 위해서 우선 해야 할바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중국조선족은 우수성을 지닌 동포 군체로서 중국진출 한국인들에게 있어도 무형자산이라고 지적했다. 서로 선입견을 버리고 상호 리해를 앞세우고 믿음을 키우면서 발전에 불리한 요소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노력한다면 좋은 협력관계를 맺을수 있을것이라고 확신했다. 우선 한국인들도 선진국에서 왔다는 우월감으로 무턱대고 조선족을 비하하고 무시하는 자세를 바로잡아야 하고 조선족들도 동포기업에서 일한다는 주인공적 자태로 열심히 일한다면 신뢰를 얻고 응분의 대우를 받을수 있을것이라고 강조했다.
상기의 견해에서 볼수 있듯이 한국인과 조선족지성인들 사이에는 이미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로서 점차 광동 한겨레 사회전반으로 확산되는 추세이다. 현재 개인이나 단체를 막론하고 서로의 행사장에 얼굴을 보이고 초청하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으며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이르러 상호 의존, 협력하면서 한층 성숙된 커뮤니티로 발전, 장대해지고 있다.
흑룡강신문 본사 특별취재팀 09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