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論語) 중에서,
공자(孔子)는 이르기를............................(子曰)
군자는 두루두루하여 편파되지 않고,..........(君子 周而不比 )
소인은 편파되어 두루두루하지 못하니라.......(小人 比而不周)
(臺灣問題)
한중수교때 한국이 대만을 버린 것은 아니다.
이를 굳이 설명하자면 국제관계상 천명(天命)이다.
대만도 중국이다. 대만은 같은 중국어를 사용하고 있다. 대만은 중국의 일부이고
우리 정부도 한중수교 당시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점을 인정하였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만과 단교한 것이다. 이는 당시 대만도 한국의 고육지책을 양해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송(宋)나라가 금(金)과 대립중 송(宋)나라는 고려(高麗)에 파병(派兵)을 요청(要請)하였으나 고려(高麗)는 정중하게 파병요청을 사절(謝絶)하였다. 국경(國境)을 접한 고려는 굳이 金과 사단(事端)을 일으켜 전쟁하는 것은 무리(無理)였다. 후일 중국의 역사가들은 당시 불가피했던 고려의 태도를 나무라지 않았다.
대만문제(臺灣問題)도 마찬가지다. 동아시아 정세가 급변했는데 언제까지 대만문제로 한중수교(韓中修交)가 마냥 지연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 또한 천명(天命)이 아니겠는가?
송(宋)의 파병(派兵)요청(要請)에 대한 고려(高麗)의 사절(謝絶)을 놓고 후일 중국의 역사가들은 당시 불가피했던 고려의 태도를 나무라지 않았듯이................마찬가지로 어쩔 수없이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한 한국의 태도에 대해 후일의 역사가들도 대만을 버렸다고 나무라지 못할 것이다. 한중간 교역급증과 내외로부터의 한중수교(韓中修交) 여론 압력 비등으로 한중수교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이는 공자(孔子)가 말한 (君子 周而不比)에도 부합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