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광장ㆍ동방명주에서 바라보는 거대한 중국이 아닌
저 낮은 뒷골목에 있는 중국의 또 다른 진실.
세계의 공장이 되어가는 중국의 상처 깊은 속살을,
대약진운동ㆍ문화대혁명ㆍ개혁개방의 거대한 파도를 헤쳐온
중국 인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들여다본다!!”
책의 내용
1. 인터뷰와 논픽션 다큐멘타리를 전문으로 다루는 문화프로젝트 <퍼슨웹>이 첫 번째 번역서를 펴냈습니다.
원제가 <<중국저층방담록 中國底層放談錄>>인 이 책은 중국의 반체제 시인인 라오웨이가 13억 중국인의 대다수를 이루는 가진 것 없고 소박한 인민들을 인터뷰로 만나 기록한 책입니다.
이 책은 대만과 프랑스에서 번역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판금이 된 적 있으며, 이미 천안문 사태 때 감금되었던 라오웨이는 이 책으로 인해 다시 요주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2. 오늘날 중국은 무엇인가?
책은 중국 당국이 예민하게 반응할만큼 책은 공룡으로 변해가며 역사를 왜곡하고 한없이 오만해져가는 중국 스스로가 정리하지 못하는 중국 현대사의 아픈 진실을 가득 담고 있습니다.
공업화와 사회주의화를 위해 시도되었으나 정책 실패로 수없이 많은 인민이 굶어죽고 심지어 인육을 먹는 사태가 벌어졌던 대약진운동. 관료주의와 자본주의의 잔재에 대항하고자 붉은 정열로 시작했으나 정치적 광기로 변질되어 내전의 상황에까지 갔던 문화대혁명. 개혁개방이 낳은 모순과 억압적 정치체제에 항거하고자 나선 대학생과 젊은이들에게 끔찍한 탄압을 가했던 천안문 사태...
중국 당국이 결코 말하지 못할 역사를 이 책의 인민들은 눈물과 웃음으로 증언합니다. 소설보다 더 극적이고 황당하고 비극적인 운명을 그들은 겪으며 버텨냅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야말로 살아있는 허삼관들이며 아Q들입니다.
중국에는 언제나 깊고도 풍부한 ‘저층사상(底層思想)’ 있어왔다. 만약 이 이야기들을 소설로 쓴다면, 고리키의 자전적 3부작 소설이나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에 절대로 뒤지지 않을 작품이 될 것이다. 이야기들은 모두 후세에도 널리 전해져 한 시대에 대한 증언이 될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 작가들은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을 수치스러워 한다. - 저자 서문 가운데에서
3. 오늘날 중국의 눈부신 발전은 어두운 뒷골목도 수없이 많이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농촌 처녀를 인신매매해서 먹고 살아가면서도 전혀 죄책감이 없는 첸구이바오, 남자 친구를 남창으로 만들어버린 18살 짜리 미스 웨이, 산골에서 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뛰어난 시인이 되었지만 마약중독자가 되어버린 황허... 중국에서 신신인류(新新人類)라 부르는 이들은 모두 개혁개방이 만들어낸 새로운 인간들입니다. 우리가 알지 않으면 안되는 21세기 중국의 실상이 책에 들어있습니다.
4. 역사와 개인의 관계란 무엇일까요? 거대한 역사의 물결은 인간의 운명을 바꿔놓습니다. 역사가 개인들에게 저지르는 폭력과, 정치운동에 기꺼이 나서 역사라는 이름의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자 했던 인간들의 삶이 들어있습니다.
“저 낮은 곳에 엄연히 존재하는 보통, 혹은 그 이하의 사람들의 삶을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로 전달하는 책은 없었다. 비단 중국의 경우가 아니라 해도, 사실 살아있는 ‘서발턴 Subaltern’의 목소리를 듣는 이런 책은 흔치 않다. - 역자의 변 중에서”
책의 특징
1. 이 책은 35개의 팁, 230여개의 이르는 역주를 마련하여 중국 현대사의 사실(史實)과 시사용어를 설명했습니다. 중국에 대해 많은 지식이 없는 독자들도 책의 내용이 쉽고 재미있게 책을 읽어나갈 수 있게 했습니다.
2. 또한 ‘거대한 역사’와 ‘사소한’ 개인사를 대비시킨 중국 현대사 연표, 색인, 일러두기를 성실하게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책의 주무대가 된 사천성 성도 현지를 역자와 사진가가 직접 답사하여 찍은 생생한 사진 컷들이 실려 있습니다.
인상적인 장면들
개혁개방이 낳은 열여덟살 신신인류 미스 웨이, 열 다섯 나이에 ‘사회’로 나오다
“나 싫으면 팁 안 줘도 상관없어요. 난 원래 이랬어요. 80년대 애들은 모두 그래요. 몰라요? 아무도 형제자매가 없잖아요. 난 TV 앞에서 컸어요. 중학교 1년 다니고 때려치우고 바로 사회로 나왔죠. / 열다섯에 이발소 아가씨를 했어요. 남자들을 숱하게 상대했지만 별 일 없었어요. 거기 오는 남자들 여자애 몸 만지잖아요. 근데 정말! 만지는 것도 정도가 있지, 너무 심하잖아요. 징그러워서 때려치우고 디스코텍 댄서를 했죠. (...) 너무 쪼들려서, 열여섯 살 넘어서 동거 시작했죠. 둘이면 방값 덜 드니까. 난 장신저(張信哲) 노랠 좋아해요. 첫날밤을 그 사람 노랠 들으며 끝냈죠. 처음에 그 남자애가 내 방에 눌러 앉더니 안 가요. 마주보고 있으니까 걔가 꼴리나 봐요. 난 “풋!” 하고 웃고 말았죠. 갑자기 엄청 흥분해가지고 옷을 벗더니 확 달려들어요. 내 몸 위에 막 올라타더라고요. 할 수 있나요? - 1부 3. 열여덟살 신신인류 미스 ‘웨이’”
저우밍구이의 똥차, 문화대혁명 때 붉은 꽃을 걸고 수정주의와 투쟁하다
“옛날엔, 밤중에 똥을 훔치는 사람까지 있었지. 그러다가 거민위원회 당직에게 걸리면 감금되고 끌고 온 똥차도 압수당했지. (...) 똥 도둑들 얘기가 나오면, 다들 “수정주의와 투쟁하자”라는 마오주석 말을 인용했지. ‘똥 훔치는 것은 류샤오치처럼 남을 해치고 자기이익만 챙기는 거’라면서 말이야.
<똥오줌 좀 훔치는 거 가지고 사상이 어쩌고 하는 거, 좀 지나치군요.>
모든 게 국가의 재산이잖아? 예전엔 화학비료가 귀해서 농촌에서는 주로 자연비료를 쓰니까 똥은 보물이나 다름없지. 우리는 담당기관이니까, 퍼낸 똥의 양이 많고 질이 좋으면 상부의 지시에 따라 훙광공사에 보내지. 근데 이거 뽀다구 나는 일이었어. 훙광공사와 마오주석은 관계가 깊으니까 농업의 모범이 돼야 할 거 아냐? 농사지은 농작물은 당연히 가장 좋아야 했지. 풍작을 거두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매년 서로 격려하면서 ‘비료’도 보냈고, 똥차 앞에도 엄청 큰 붉은 꽃을 걸었지. 다른 기관이나 학교도 비료를 보냈는데, 훙광공사에 보내는 건 아니었어. 그 사람들의 ‘비료’는 도랑의 진흙이나 잡초가 태반이고 질도 한참 떨어져. 하지만 대단한 장관이었지.
- 2부 9. 공중변소 관리인 저우밍구이”
철거민 뤄웨사 아주머니의 가족사
뤄웨사 아주머니네는 그야말로 평범한 노동자 가족입니다. 그러나 이 가족의 운명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의 물결에 휩쓸립니다. 아주머니의 가족은 둘이 대약진운동의 후유증이 중국을 휩쓸 때 굶어죽고, 문혁 때는 가족들끼리 정치노선이 달라 4개 파로 나눠져 싸웁니다. 남편과 아내가, 그리고 처남이 각각 다른 조직에 들었던 거죠. 모두 모택동 주석에게 충성한다는 뜻은 한가지였습니다만.
“우리 식구는 모두 7명인데 61년도에 둘이 굶어죽었어. 그리고 다섯이 남았는데 문혁 때는 4개 파로 갈렸지. 나는 버스 안내양을 하고 있었는데 대세에 따라 정통 조반파인 ‘청두 노동자 혁명 조반병단’에 가입했어. 남편 류용강은 쓰촨면방직창 식당에서 일했는데 역시 대세를 따라 정통 보황파인 ‘산업군’에 가입했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는 별 하는 일이 없어서 자연히 관망파가 됐어. 동생은 노삼계 고등학생이었는데 ‘홍위병청두부대’에 가입했어. 분위기 장난 아니지?
모두가 마오주석을 보위한다는 생각은 마찬가지야. 하지만 서로 가족 중에 누군가 반란을 기도하고 있다고 생각했지. 예를 들어, 남편은 겨우 식당에서 밥이나 짓고 배운 것도 없는 인간이야. 정말 배고픈 게 절박하지 않았으면 나같이 괜찮은 여자가 그런 인간에게 시집갈 리 만무하지. 그 인간도 참 복도 없어. 맨날 지 마누라 눈치만 살피고 살았으니 말이야. 하지만 오랫동안 같이 살다 보니 서로 떼려야 뗄 수 없게 되어버렸지. 하지만 말이지. 문혁이 뭘 못 떼 놓겠어? 우리 남편 그 인간 완전 구닥다리에다 꼴통이야. 자기가 뭘 틀렸는지 알지도 못하고 헤매. 그래서 나하고 동생하고 그 인간을 쫓아내기로 했지. 그랬더니 그 인간 진짜 짐 싸들고 나가 버렸어!”
- 2부 8. 철거민 러웨샤 아주머니
다오링 영감,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 장교 시체를 화장하고 영웅 칭호를 얻다
시체 미용사 다오링 영감은 홍위병끼리 맞붙었던 문화대혁명 무장투쟁 시기에 사흘이 멀다하고 적기에 둘둘 말려 들어오는 어린 홍위병의 시신을 수습하고 화장해야 했습니다. 한 홍위병 장교는 입을 꽉 다물고 죽어서 어금니가 다 쪼개어진 채 죽어왔습니다.
“칫솔을 가지고 입 안을 긁어내는데, 구더기가 왕창 굴러 나오는 거야. 으윽! 혀가 썩어 버린 거지. 밖으로 후다닥 튀어 나가서 공기를 들이마시고 다시 돌아와서 꼼꼼히 이 청소를 해줬지. 그것도 그 입 안에 방부제를 조금씩 부어가면서 말이야. 이게 무슨 염습이야? 순전히 변소청소지.
오후 내내 하니까, 그 일그러진 얼굴이 비로소 미소를 띠기 시작하더라고. 홍위병들이 모두 감동해가지고는 붉은 완장을 채워주고는 다같이 “노동자계급에게 배우자!”라며 몇 번 구호를 외쳤어.”
- 2부 10. 시체미용사 장다오링 선생
황즈위안 선생, 제자로부터 한방 얻어 맞으며 밤문화 교육을 받다
시골 중학교의 성실한 교사였던 황즈위안은 90년대에는 인력거꾼으로 일하다가 우연히 옛 제자를 만납니다. 대장장이 서기의 아들이었던 그를 하도 뚱뚱해져서 알아보지도 못했는데 이 친구는 이제 나이트클럽 사장이 되어 잘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은사님께 보답하겠다면서 늙은 황선생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정말 사람 환장하게 만들데! (...) 이 친구 정색을 하더니, “교실에서는 스승과 제자지만 나오면 친구다. 이거 선생님이 전에 저희한테 가르쳐 주신 거잖습니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후, 선생님께서 늘 절 배려하셔서 선생님 침실에서 숙제하도록 해주셨잖아요? 오늘은 제가 반드시 선생님께 보답을 해야겠습니다.” (...) 잠시 있다, 아가씨 둘이 들어오더니 내 양쪽에 붙어서 술을 권하는 거야. 이 늙은이 얼굴이 수치심으로 확 붉어졌지. 그 친구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니까 바로 몸을 일으키더니 “천천히 하세요. 그럼 전 훨씬 더 예쁜 애 찾아서 데리고 오겠습니다. 오늘 선생님 연배 분들 세계관을 한번 확 바꿔 보십시오. 그럼.” 하고는 어디론가 나가버리는 거야.
엉겨 붙는 아가씨들을 어렵사리 물리치고 방을 빠져 나왔어. 근데 이게 뭐야? 복도 돌아가는 데 보니까 사람들이 둘러싸고 서 있는 거야. (...) 그 친구가 아가씨 하나를 두들겨 패고 있는 거야. 아가씨 머리채를 붙잡고 손 발 무릎 인정사정없이 몽둥이로 줘 패고 있더군. 아가씨는 맞아서 곤죽이 되고 얼굴이 피투성이인 채 온 몸을 벌벌 떨고 있는 거야. 옆에서 몇 명이서 말리는데 그 대장장이 아들놈이 어찌나 힘이 센지 어쩌지를 못해. 더 때리면 큰 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는 수 없이 나가서 말리다가, 어라 내가 그 친구 주먹을 한 방 먹어버렸네!
- 3부 17. 시골교사 황즈위안
전문가 추천의 변
교단에서 오랫동안 중국 현대사를 가르쳐왔지만 나의 목마름은 해갈되지 않았다. “그들의 실제 삶은 어떠했을까?”라는 물음은 역사학도가 으레 품는 가장 큰 의문이지만, 하물며 근대 이후 한 세기 동안 저 커다란 대륙에서 일어난 격동에 대해 단편밖에 알 수 없는 게 우리의 처지 아닌가! 이 책의 원고를 밤새워 단숨에 읽게 된 것은 바로 이런 목마름 때문이었다. 이 책은 개혁개방기의 중국을 밑바닥에서부터 떠받치면서 살아가는 중국 저층 사람들의 삶을 압축해 놓고 있다. 그들이 겪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현대사가 다양한 이들의 입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지는 것이다. 격동기를 살아가고 있는 중국인의 현재에 관심을 가진 모든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 윤혜영 (중국사,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한국 내의 중국 열풍은 식을 줄 모르고 그 세력을 더해간다. 그에 따라 자칭 타칭의 ‘중국전문가-중국통’도 넘쳐나고 있지만, 우리가 정말로 중국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중국의 참모습에 대한 이해는 중국 사람에 대한 이해로부터 비롯된다. 그들 중에는 모택동에서 호금도에 이르는 정치지도자도 있고, 개혁개방 이후 엄청난 부를 축적한 재벌과 성공한 기업가들도 있다. 그러나 1960~70년대 우리나라의 개발독재 시절에 박정희 대통령뿐 아니라 조세희의 수없는 ‘난쟁이’들이 있었던 것처럼, 이름 없는 중국 민중들의 모습이야말로 중국의 현재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 아닐까.
- 이성윤 (대우종합기계 심양중장비판매법인 총경리)
라오웨이(老威)
본명 랴오이우(廖亦武) 1958년 생
1970년대말부터 시를 짓기 시작하여 각종 문학상을 받았다. 89년 텐안문(天安門) 사건을 계기로 시 <대도살(大屠殺)>을 발표하고 텐안문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安魂>제작에 참여했다가 처음으로 체포되어 4년 형을 받는다. 1994년 출옥 후 고향인 청두(成都)의 찻집과 술집을 전전하며 악기를 연주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이후에도 공안당국에 몇 번 체포된다.
1995년에는 유명 지식인 12명과 함께 전국인민대표대회에 반부패 관련 건의를 한다. 1998년에는 중국 70년대 지하 시를 편한 <<沈淪的聖典-中國20世紀70年代地下詩歌遺照>>내고 베이징에서 또 구류 당한다. 1999년에 그 동안 한 인터뷰의 일부분을 익명으로 출판되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후, 책은 판금 당한다. 2001년 1월, 1990년~2001년 기간에 완성한 인터뷰를 기반으로 60여명의 인물을 대상으로 한 <<中國底層訪談錄(上/下)>>을 재출판하여 또다시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2001년 중국 유명 주간 신문 <<南方週末>>에 <<中國底層訪談錄>>관련 대담이 실린 후 당국에 의해 동 신문사 주편집 부편집 편집주임 편집부주임 등이 정직처분을 당하고 인사이동이 이뤄진다. 이후 이 책은 대만과 프랑스에서 출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