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의 역사는 곧 야만의 역사이기도 하다.(발터벤야민)
야만의 역사라고 함은
자아와 타자사이에 경계선을 긋고
자아라는 공동체와 반대되는 타자에 대하여 폭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의 역사이며 또한 순환적으로 반복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유대인학살과 아우슈비츠, 강제노동수용소, 매카시의 블랙스트와 레이건의 스타워즈,
쿠바에 대한 통상체제와 캄보디아에의 폭탄투하, 사라예보와 코소보, 예루살렘과 웨스트뱅크, 쌍둥이 빌딩과 아프가니스탄 ... 등등 그 예는 부시기수일것이다.
타자는 항상 악이고 악이기에 청상되어야만 할 대상인것이다.
타자를 청상함으로써 자아는 강건해지고
타차는 공격함으로써 "우리는 하나가 된다"는 이분법적인 논리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타자는 존재할가?
좀더 오픈된 시각으로 타자에 다가갈때 타자도 나와 같은 존재임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악마도 천사도 없다. 다만 우리는 끝없는 희생양을 요구할 뿐이다.
데일리차이나에서는 너무나 이분법적인 과거 냉전시대의 논리에 젖어있다.
중공을 공격함은 마치 자기자신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반증한다고 오인하고 있는 것이 아닐른지.
혹은 너무 시대역행적인 행각을 일삼는 구시대의 퇴적물은 아닐른지.
내가 나를 모르면서 어떻게 감히 타인을 논할 수 있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