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잘난 집안 자식인 김채곤(Robert.Kim . 열린우리당 김성곤의원의 형)은 미국의 공대를 마치고 NASA 에서 일하던 중 미해군의 ONI(해군정보국)으로 스카웃되어 들어간다. 그 후 김채곤은 아주 평범하게 살아간다.그러던 중 96년 한국 동해안에서 북한 잠수정 표류사태가 발생한다. 한국정부는 사태를 쌔빠지게 수습한 후 그 사건을 리뷰한다. 그 결론으로 한국군은 대잠정보가 없는거나 마찬가지였다는 거였다.
대잠정보는 P3-C라는 대잠초계기에 주로 의존하는데 한국군은 그 비행기가 10여대 밖에 안되어서 서해, 남해, 동해 전체를 커버하지 못한다(2005년 현재) 잘은 모르겠는데 그 비행기가 존나 비싼 모양이다. 이번 국방개혁 계획에 대잠초계기 늘리는 것도 있었던 것같다. 대략 50~60대는 되어야 삼해가 다 커버된단다.
대잠초계기는 SONAR라는 수중음파탐지 장치를 바닷물에 담궈서 잠수함,잠수정이 발생시키는 음파를 탐지하는 걸로 안다. 해군 함정이나 인공위성,수중이나 수면장치 이런 걸로는 대잠 감시가 안되는 모양이다. 당시 외교통상부는 주미대사관 해군 무관이던 백동일 대령에게 96년 잠수정 표류 당시의 동해안 대잠정보 수집을 명령한다.
김채곤과 평소 안면이 있던 백동일은 김채곤에게 푸념 섞인 하소연을 한다. '북한 잠수정이 표류를 하다가 동해안에 상륙하여 남한 전체에 난리가 났었는데 한국군은 대잠정보가 전무했다 미치겠다' ONI 컴퓨터 정보분석관이였던 김채곤은 그 정보를 찾아본다. 그런데 아~ 놀라워라. 그런 정보들은 고급정보가 아니였다. 영국 호주 등의 국가들에겐 일상적으로 제공되는 정보였던 것이다. 한미동맹은 개뻘이였던 것이다.
그 정보에 의하면 96년 그 당시 그 시점 동해안에 있었던 북한 잠수정은 2척이였는데 한 척은 제주도 근방까지 내려갔다고한다. 이 사실은 알고보면 별거 아니다. 한반도 근해 바닷속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 중 하나였다. 원래가 그런 것이다. 바다속에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한국, 북한 잠수정 잠수함들이 늘상 돌아다니고 서로들 뻔히 알고 지켜보고 그런 거다. 그 중 한국만 바다 속 사정을 모르고 사는 것이다. 흔히들 알다시피 한국군은 정보전력의 98%을 미군에 의존한다고 한다. 미국은 이걸로 한국을 틀어쥐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채곤과 백동일은 96 년 이전부터 교포사회에서 서로 아는 사이였고 자주 만나면서 소소한 정보들은 많이 제공했다고한다. FBI는 진작부터 두 사람을 감시했고 잠수정 관련 정보 제공도 감지했으나 묵인했다고한다. 그러던 중 한국해군 관계자들이 미국에 C4I를 구입하러간다. C4I 는 command control communication computer & information 의 약자로 군사용 컴퓨터의 통칭으로 보면된다. 여러가지 종류가 있고 성능 기능 용도 가격도 여러가지다. 용산기지 평택이전 협상 내용에도 나온다. 존나 비싸다.
하여간, 이 사실을 안 김채곤은 한국 해군들이 머물던 호텔로 찾아가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본다. 내용을 다 듣고난 김채곤은 분노한다. 가격도 졸라게 바가지고 성능도 불안정하고 customize 도 안되어있고 maintenance 조차 불확실한 것이였다. F-15 고물비행기 바가지 구매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되리라.
김채곤은 한국군 해군 구매실무자에게 제안한다. '몇년만 참아라 내가 곧 퇴직한다. 내가 퇴직한 후 한국에 가서 그거보다 더 나은 군사용컴퓨터 만드는 거 도와주겠다. 한국엔 훌륭한 IT 기술자가 많으니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하여 한국해군의 군사용 컴퓨터 구매는 무산되었다. 그런데 김채곤을 벌써부터 감시하던 FBI가 그 대화내용들을 감청한다.
마침내 김채곤은 FBI에 체포되어 이례적으로 검찰의 구형보다 더 긴 형을 선고받고 7년 넘게 감옥생활을 하고 출감 후에도 전자발찌를 찬 채 집안에서만 생활한다. 순전히 군사용 컴퓨터 구매건 때문이였다. 호구 잡고 엉터리 물건 졸라 비싸게 팔려는 순간에 고추가루를 뿌렸으니 미국 애들이 열받을 밖에...
김채곤은 한국내 사람들이 죽도록 갖고 싶어하는 미국 시민권자였고 퇴직하면 연금 받아가면서 편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였다. 백동일에게 소소한 정보들을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간첩혐의로 체포될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고 고민도 했었다고한다. 그는 퇴직을 얼마 안 남기고 있었다. 조국애 이런 거에 대해 몇 년만 눈 딱 감고 퇴직하면 편안한 노후가 보장되는 사람이였다. 김채곤이 감옥에 있는 동안 그의 부인은 그녀를 배려한 한인교회에서 청소를 하며 생계를 유지할 정도로 힘들었다. 감옥을 나온 지금도 직업도 연금도 없고 가진건 오직 집 한 채 뿐.
김채곤은 백동일을 만나면서 돈 한푼 받기는 커녕 한국으로 치면 김치찌개 된장찌개 먹으면서 그를 만났다. 마침내 보호관찰도 풀렸고 다음 달에 한국에 온다. 국가는 외교관계상 그에게 상을 주지 못한다. 국민들이 마음의 훈장을 주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