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에 떠도는 말 중에 하나가 "만일 사람을 잡아먹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성인(聖人)이다" 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말은 그만큼 식인문화가 널리
퍼져있었고 모든 중국인이 사람을 "즐겨" 먹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회분위기가 그런 상태
였기 때문에 "예"와 "도덕"이 강조되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런 사회분위기 하에서 유교가 발
달했습니다.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인 공자는 이 ‘해( )’를 즐겨서 해 없이는 식사를 안 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공자가 아끼던 제자 자로가 위나라의 신하로 있다가 왕위다툼에 휘말려 살해되고, 그의 시체는 잘게 토막내어져 해로 만들어지고 말았다. 이 해는 사자에 의해 공자의 식탁에까지 전해졌다. 이 일 후로 공자는 그렇게 좋아하던 해를 먹지 않았다.
중국 역사사회에서는 생존경쟁의 패자가 승자의 먹이로 식탁에 오르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리고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식인이 자행되기도 했다. 춘추전국시대의 유명한 제나라 환공은 미식가로도 유명했다. 그가 진미를 찾자 요리사인 역아(易牙)는 자기의 장남을 잡아서 삶아 바쳤다. 역아뿐 아니라 극한 상황에서는 자기 살을 베어내거나 아내나 자식을 잡아 주군을 대접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흔히 이런 경우는 충성으로 기려졌다
인육은 가끔 약용으로도 쓰였다. 이시진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인체 각 부위의 약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통념에다 ‘효’라는 유교 사상의 실행으로서, 병으로 죽어가는 부모에게 자신의 넓적다리살 등을 잘라서 봉양하는 일은 더욱 흔했다. 단, 이런 일이 진정한 효행인가 하는 정치적인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당시의 황제 뜻에 따라 어떤 시대의 사람들은 ‘효자’로 표창을 받았고, 다른 시대 사람들은 신체를 훼손한 ‘불효자‘로서 매를 맞은 후 귀양을 갔다.
수·당대에는 인육시장이 출현했고, 인육애호가가 열전(列傳)에 기록되기도 했다. 송 말기부터 원대에는 <철경록(輟耕錄)>이라 하여 인육 요리법을 자세히 적은 요리책까지 출판되었다. 원나라를 방문한 마르코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자신이 목격한 복주(福州)의 식인 풍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당나라 측천무후 시대를 전후하여 유례없이 인육이 넘쳐나서 다른 고기의 값이 폭락을 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지방에서 특별히 기록할 만한 것은 주민들이 그 어떤 불결한 것이라도 가리지 않고 먹는다는 사실이었다. 사람의 고기라도 병으로 죽은 것만 아니면 아무렇지 않게 먹는다. 횡사한 사람의 고기라면 무엇이건 즐겁고 맛있게 먹는다. 병사들은 잔인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머리 앞부분을 깎고 얼굴에 파란 표식을 하고 다니면서 창칼로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인 뒤, 제일 먼저 피를 빨아먹고 그 다음 인육을 먹는다. 이들은 틈만 나면 사람들을 죽여 그 피와 고기를 먹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중국의 식인 풍습은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등 유명한 중국 고대의 소설에도 잘 나타나 있다. <삼국지>의 경우, 정사로 기록된 진수의 삼국지에는 유비가 즐겨먹은 음식이 인육으로 만든 포였다고 하며, 여포가 죽은 후 그 고기를 죄인들에게 먹였다고 한다. 소설 <수호지>에서는 인육으로 고기만두를 만들어 파는 악한이 등장하고, <서유기>에서는 고승(高僧)의 고기가 불로장생의 영약이라 하여 삼장법사가 끊임없이 요괴들의 공격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인육의 판매를 금지하는 법이 송나라 때에 만들어졌지만, 명나라를 거쳐 청나라 말기에 이르기까지 인육은 시장에서 공공연히 매매되었다. 1918년, 중국 근대의 사상가 노신은 <광인일기(狂人日記)>에 식인의 피해망상증에 걸린 광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식인 풍습이 만연한 사회상을 폭로했다. 그는 또한 ‘국가는 사람이 사람을 먹는 역사사회‘라고 정의한 바 있다. 중국 5·4운동의 사상적 지도자 오우(吳虞, 1874∼1949)는 ‘유교 = 식인’이라 하며 강력히 유교를 비판했다. 식인풍습은 공산화된 중국에서 유교의 폐해 중 하나로 비판되었고, 최근에 이르러서야 점차 사라져갔다. 오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해 온, 유교문화의 종주국인 중국에서 식인 풍습이 꾸준히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역사의 단면이다
인육 시장은 청나라를 거쳐, 불과 몇십년전인 문화혁명 시대에도 존속했었는데, 아큐정전으로 유명한 중국의 대문호 루쉰(魯迅)은 그의 저서 "광인일기(狂人日記)"에서 중국의 식인 풍습을 거론하며 몇천년 동안이나 사람을 먹어온 자국의 역사를 한탄하고 있다.
루쉰은 '중국인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오랜기간의 식인풍습으로 인해 중국 사회에서 신의라는 것 자체가 없어졌다고 분개한다. 중국인들이 인의예지를 중요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러한 덕목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중국인들이 신의를 거론하는 때는 그들이 가장 궁지에 몰렸을 때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