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표기 능력 부족한 한글
한글의 문제점 아는 것이 참 한글사랑의 길
누구나 들어봤을 한 노래가사를 예로 들어보자.
"깊어가는 가을밤에 낯설은 타향에…"
이것을 맞춤법과 사리판단을 제대로 해서 쓰(書)면
"깊어가는 가을밤에 선 타향에…" 이다.
그러나 그냥 '선'으로 쓰면 같은 표기의 낱말들이 많기 때문에 혼동의 우려도 있을뿐더러 글의 느낌이 썩 와 닿지도 않는다. 이 정도의 경우는 '앞뒤 정황을 살펴서 짐작'하라는 단골메뉴도 통하지 않는다.
필자는 여기서 '설은'으로 표기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맞춤법은 제약이라기보다는 단어변별력을 분명히 하는 것이 더 우선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처음 만난 얼굴(낯)을 뜻하는 '낯선'(사람)을 사람이 아닌 모든 사물에 적용하여, '선(생소:生疎)'을 뜻할 때 '낯'을 아무 의미도 없이 일일이 붙이는 것은, 우리말이 얼마나 표기법의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장단음을 표기할 수 있어야 완전한 소리글자
비슷한 경우로 일전에 방송의 우리말 바로쓰기 코너에서 '날으는 우레매'는 '나는 우레매'로 써야 한다고 하는 것을 보았다. 이 경우 역시 그렇게 하면 혼동이 심하니 '날으는…'을 쓰는 것을 두둔하고 싶었다.
그러나 국어학자 김창진 교수(초당대)의 자문에 따르면, "나는 우레매"와 "나:는 우레매"는 발음을 정확히 하면 구별될 수 있는 것이다. 앞의 것은 짧게 말하는 것인데, "내가 우레매다"는 뜻이고 뒤의 것은 "날아가는 우레매"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사실 단어구분을 명분으로 맞춤법이 합리적 체계를 갖추지 않고 그때그때 임의로 바뀐다면 그 또한 언어의 후진성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렇듯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소리글자'라는 한글은 정작 우리말의 음표기를 정확하게 하지 못해 적지 않은 혼동과 불편을 주고 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이러한 혼동이 '드문' 것이고 또 당장 우리에게 어떤 치명적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라고 해서, 모두 그때그때 대충 넘어가기만 하며, 시정의 의욕을 보이는 유력한 움직임도 없는 것이다.
음절문자의 강점 활용해야 진정 '우수한 한글'
한글이 우리말은 물론 외래어 표기에도 우수하다고 하는 말은 많이 있어왔다. 그런데 이것 또한 세계 유일의 음절단위조합 소리글자인 한글의 장점을 살리는 전제에서나 타당한 것이다.
가령 '소프트웨어'는 다섯 음절을 차지하지만 실제단어의 음절은 두 음절에 불과하다. 한글의 강점을 살리려면 이러한 장황한 영어단어라도 두 음절 정도로 축약해서 표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일본어에서도 '소후도에아' 로 소리 나는 다섯 개의 음절문자로 표기한다. 그러나 그들은 한 개의 자소가 하나의 음절을 차지하므로 5개의 자소뿐이다. 무려 12개의 자소를 쓰는 '소프트웨어'보다는 훨씬 간편하다. 그렇다고 '소프트웨어'가 '소후도에아' 보다 원음에 가깝다는 보장도 없다.
외래어 표기에서 우리는 (단지 일본어에 없는 발음이라는 것 때문에?) '으' 모음을 선호해 왔다. 그러나 외래어를 비롯한 많은 경우 '으'는 모음이 아니라 단지 자음을 짧게 내뱉는 것뿐이다. 앞 음절의 받침으로 표기해도 충분한 것을 불필요한 '으' 모음을 붙이는 장황한 표기다.
음소단위 표기도 수용해야
이렇게, 한글의 세계적으로 으뜸가는 장점은 음절별로 소리를 적어 가독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글이 음절단위의 소리글자가 된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자어 음표기를 위해 비롯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국어는 본래부터 모든 단위 언어가 한 음절로 되어있다.
그러면 순우리말은 한글표기가 유리한 것인가? 몇몇 예를 들어보자. '아우르다'는 네 음절 같지만 로마자로 써보면 'aurda'이다 즉 두 음절 밖에는 안 된다. '탄다', '타고' 등과 같이 동사의 어간과 어미는 음절과 일치하지 않는다. '파르르', '사르르' 등의 의성어는 세 음절 같지만 사실은 'par', 'sar'등으로 표기될 수 있는 권설음에 가까운 것이다.
'짧은' 등도 'jalbn'과 같이 사실은 한 음절이나 마찬가지다. 이와 같이 우리말의 본래 음은 살펴보면 놀랍게도 영어 등에서 보는, 모음이 없는 자음만의 발음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우리말은 중국어처럼 음절단위가 아니라 영어의 소유격처럼 음소단위의 어소(語素)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말의 한글 표기는 항상 (한자어에서만 해당되는) 음절단위 표기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빛', '수탉' 등에서 나타나는 근거 없는(?) 된소리와 거센소리도, 영어의 소유격 /'s/를 연상시키는 사이시옷 'ㅅ'를 표기하면 쉽게 합리화 된다. 그러나 단지 편한 표기를 위하여 엄연히 있는 음가인 사이시옷을 표기 안하다보니 상당수 발음혼동이 생기는 것이다.
한글, 더 이상 신앙의 대상 아니다.
자식이나 사랑하는 아랫사람에겐 칭찬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따끔한 질책도 중요하다. 한글을 진정 사랑한다면 한글의 결점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한글의 완전성'을 '믿는' 분들에게는 거부감이 있는 표현이겠지만 여하튼간 한글을 우리민족과 영원히 함께하는 동반자로 삼고자 하는 마음에서는 그러한 것이다.
장단음 구분과 사이시옷 표기 등, 표기의 간편함을 위하여 간과하고 있는 한글의 우리말 표기기능을 어떻게 해서라도 개선해야 할 것이다.
2005-10-0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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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전용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한글의 본질과 한계 아는것이 참 한글사랑의 길
우리의 현대사에서 문자정책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문자의 본질을 정보과학적으로 따지지 못했던 것에 있지 않은가 하는 조심스런 의견을 개진해 본다.
물론 너도나도 정보화를 소리치고 있는 이 시대에 이르러서 아직 그 개념 자체가 먼 것으로만 여겨졌던 40~70년대의 상황을 탓하기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야말로 진정 정보화 시대에 걸맞는 우리의 문자관을 확립하여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문자는 애초에 인간의 말소리(言聲)를 기록하려고 시작하였다지만 실상 문명시대에 들어와서는 사고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이 내부의 사고를 표현하기 위한 말을 가짐으로써 문명사회의 첫발을 내딛었지만 그 말소리를 표현하던 문자는 이제 문명 사회에서는 말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사고의 표현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요즘에 일반에게도 자주 인용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개념이 있다.하도 디지털 시대, 디지털 통신 하니까 많은 사람들은 디지털(digital, 計數, 整數的)이란 것이 그냥 무작정 아날로그(analog, 連續, 無限定)보다 좋은 것이라고 여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보의 전달에 있어 아날로그는 이상적인 무한 정보의 형태이고 디지털은 현실적인 유한 정보를 나타낸다. 인간의 사고는 본디 아날로그한 것으로서 그 변이성은 무한하다.
반면에 문자는 어느 정도의 표본화율(Sampling Rate)을 갖는 디지털
정보이다. 그러므로 문자의 성능에 대한 평가는, 얼마나 본래의 아날로그 신호를 복원할 만큼의 변별력과 의미 대응력을 가지고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이제 표음 문자 혹은 표의 문자라는 기능보다는, 문자로 표현된 인간의 사고 정보의 변별력의 관점에서 한글의 성격을 냉철히 살펴야 한다.
한글 전용의 문제는 이미 사용의 편의성 여부를 따지는 단계는 지난 지 오래다. 지금 한글전용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인간의 합리적 판단을 넘어선 신앙적 힘으로서 자리하고 있다.
한편 한자 학습을 강조하는 박식한 한학자 분조차, '언젠가는 우리가 한글 전용을 하게 되겠지만 그 전까지는 한자를 배워야 한다' 는 말을 하기도 한다. 즉 한글 전용은 우리 민족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할 이상으로서, 마치 우리가 인생의 목표를 현생에서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 이상을 향해 정진해야하듯이, 우리 사회도 한글 전용이라는 목표를 향하여 모두들 끝없이 노력하며 나아가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이념, ideology)에 상당수가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필자가 단언할 것은 우리 민족에게 한글 전용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시간적 변수로 변화될 성질의 것도 아니어서, 한글 전용은, 도달하지는 않되 영원히 가까이 가는 무한수렴(convergence)의 대상도 될 수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인간 사회의 앞날의 방향에 대하여 사회적 명망가도 아닌 사람이 이렇게 단정적인 '예언'을 한다는 것은 당돌하고도 과분한 일임에 틀림없다. 설사 명망가라 할지라도 한 인간으로서 앞으로의 인간사회의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단정적인 예언을 한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거듭 말하건대 한글 전용은 우리 민족이, 아사자가 속출하는 미개국으로 변하지 않는 한 영원히 불가능하다. 흔히들 한글의 초중종성의 조합으로는 몇만 가지의 음을 표현할 수 있다고들 하며 이것을 가지고 종종 '한글의 무한한 표현력' 운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음절단위로 뭉친다는 전제하에서의 조합의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표현의 다양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지구상의 어느 문자 기호도 그 조합으로 무한히 다양한 형태를 취하지 못하는 것은 없다.
한글은 초중종성의 순서로 문자 기호가 조합이 되어야 한다. 초성이나 종성에 해당되는 자음은 한 두개의 기호로 제한되어 있고 모음 다음에는 반드시 종성 혹은 다음의 초성이 나와야한다. 이러한 제약이 있으므로 한글자모로서 조합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대폭 감소된다. 반면에 영어에서는 'beauty', 'night', 'knight','rite', 'right', 'source', 'sauce'등 과 같이 자음이나 모음이 얼마든지 연달아 배열되는 다양한 철자법으로 많은 단어의 시각적 변별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가령 10개의 기호가 있을 때 그 기호로 나타낼 수 있는 순열의 수는 10!이다. 그런데 이들 기호가 세 가지 부류로 나뉘어져서 그들이 서로 번갈아 배열되어야 한다는 규칙으로 순서에 제약을 가하면 만들어질 수 있는 경우의 수는 10!/3!이 된다. 즉 같은 개수의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의 수가 영어의 약 6분의 1로 줄어든다.
위에서 예로든 영어 단어를 한글로 옮겨 보자 '뷰티', '나이트', '나이트','라이트', '라이트', '소스', '소스' 등인데 이것은 다시 로마자로 옮기면 원래 있던 묵음자 등에 의한 낱말의 시각적 변별기능은 사라지고 만다. 즉 서로 다르게 표기되었던 많은 낱말들이 단순히 같은 표기로 합쳐지고 마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글의 맞춤법은 각 자소에 해당되는 로마자를 지정하기만 하면 로마자로 '완벽히' 표기할 수 있다. 한글은 우리말을 완벽히 표기할 수 있는 유일한 문자라는 분들에겐 대단히 죄송스러운 결론이지만 우리는 영어에서의 표기법만을 생각했기 때문이지 로마자에 의한 다른 언어의 표기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음을 인식하지 않고 있다.
'ㄱ'을 반드시 'g'로 표현해야만 할 필요가 없고 우리의 여러 가지 복모음은 얼마든지 'a','e','i','o','u'를 조합하여 만들 수 있다. 이렇게 한글의 문자 구성은 순열이 규칙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가능한 조합의 경우의 수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당연히 우리의 사고정보, 심지어는 장단음 등 표음 문자로서의 우리의 말소리 표현 기능도 상당히 제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치 수학을 공부하는 한 중학생이 '마주보는 두 평행선은 영원히 만날 수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과 같이, 한글 전용의 영원한 불가능성은 필자로서도 단언하기에 전혀 과분하지 않은 명제인 것이다. '한글전용을 계속 추진하다보면 언젠가는 이루어지겠지...' 라고 하는 것은 '평행선을 끝까지 따라가 보면 언젠가는 서로 만나겠지...' 하고 기대하는 것과도 같다.
2003-10-09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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