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왜 왔으며 왜 아직 구질구질하게 있는가?
여러분들이 궁금해 하시는걸 파계님께서 물어보시니 대답하지요.
금융대란때 가장 피해를 본 곳은 다름아닌 건설,제조업체란 것을 다들 아시리라 믿습니다.
싱윈도 한순간 가지고 있던 진성어음이 휴지조각으로 변하고…
8년을 동고동락하던 직원들에게 고발을 당하고나니 사람이 무섭고 사회가 무서워
한동안 근신하고 있던 차에 먼저 실패를 맛본 선배의 소개로 상해에 오게 된것이지요.
97년 당시 상해땅을 처음 밟았을때 기분이 어떠했는지 아시나요?
명현현상이라고 하나? 어릴적 세뇌받았던 뇌세포가 스스로 성장하여 강제주입된
상식에 반대되는 갈등이 나타나는 현상…
처음에 그랬습니다.상해의 발전상과 사람들의 생활방식…그들 삶의 행복지수등
탈북한 북한사람들이 한국와서 그러지요"그동안 속았습니다."
싱윈도 한번 말하고 싶었지요"어..속았네" 하고(시간이 지난 지금은 다시 속았네)
상해에서의 근무조건은 당시로선 파격적인 연봉과 권한이 함께 주어진 일이었지요.
무사히 계약기간을 마치고 나니 연장계약을 하자고 합디다.
하지만 싱윈은 연장계약 대신 독립을 원했지요.어차피 국내에서도 오랫동안
오너 생활을 해 왔기에 한부서의 자리를 맡고있는 것 보단 새로운 시장 도전을 해보겠다는
욕심이 더 컸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다가 무석(우시)를 시작으로 해서 다시 상해,소주 그리고 지금 북경에 자리하게
되었는데…
왜 중국에 왔는가에 대한 답변으론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군요.
시장이 있으니 찾아 온것이지요.시장이 보이길래 찾아온것이지요.
송충이가 솔잎을 먹으러 왔지…딴이유가 있겠습니까?
세상사 어느곳 위험이 없는곳이 있겠습니까 만…
싱윈은 근 9년동안 공안을 만나거나 파출소에 경찰서에 가볼일이 없었습니다.
남과 한번 싸워본 적도 없으며 술을 마시다 말썽부려 끌려가 본적도 없지요.
또한 그들에게서 폭행을 당한일도..신변에 위험을 당해본 일도 없었지요.
그 사회의 악이란 것을 경험한 사람은 단언하건데 스스로 행동을 되물어봐야 할것입니다.
글이란 것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어두운 면을 잘 보는 사람은 어두운곳에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 싸이트의 목적은 맹목적 반공이란걸 잘 알고있습니다.
싱윈은 그림을 잘 그렸습니다.어릴때 학교사생대회나 반공포스터 그리기,반공글짓기등
참가하여 상을 많이 탔습니다.그때 싱윈이 표현한 공산당은 어떤행태였는지..아마
싱윈세대는 다 알고도 남을것입니다.
맹목적으로 욕하고 세뇌하고 강요한다고 이념이 바뀌어지는것은 아니지요.
아시아에서 민중의힘(피플파워)가 가장 위력을 떨친 곳이 한국이고 그 한국민들이
똑같은 후진적 방식으로 상대의 국가와 국민을 욕해서야 되겠습니까?
개떼처럼 한국에서 중국으로 왔는지는 모르지만…
싱윈은 중국에서 한국인이 사형당했다고 했을땐 분노 했지요.오직이나 더러운 짓을
했으면 타국에서 사형을 당하고 오죽이나 국가가 못났으면 제국민 사형당하는것도
모르고있었을까요?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자국민이라고 무조건적으로 옹호해야 되는지는 스스로
물어보시길 바랍니다.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있다는 것을…
중국에서 오늘도 열심히 살고있는 한국사람들이 모인곳은 싱윈보다 독자들 여러분이
더 잘아시고 계실겁니다.
중국이란 나라는 한국의 60년대 후반과 현대의 생활상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국가입니다.
잘사는 곳이 있는가 하면 정말 똥꼬 찢어지게 못사는 곳도 많지요.
한국인들이 상주하고 생활하는곳은 작금의 한국과 그리 큰 차이가 있는곳이 아니지요.
왜 중국에 왔는냐에 대한 답변이 옆길로 새고 말았지만…
이러한 점을 싱윈은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흑백논리가 아닌 사실에 충실한 내용을 가지고 비판과 칭찬을 하시길 기대합니다.
진정 자국민을 사랑하고 걱정한다면…
30만이 넘는 한국인들의 신변에 위험을 줄수있는 극단적 발언이 얼마나 무책임한지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논리가 있는 비판과 비난을 해 주시길 바라마지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