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국이 일제해방을 맞아 우리 독자적사관을 구축하기 시작한지는 그리 오래지 않았다. 비로소 최근 재야학자들을 주축으로 식믹사관의 잘못된 이론과 학설을 깨부스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나아가 지나의 오랜 역사왜곡으로 비롯된 우리 역사의 굴절을 바로 펴나가는 일련의 일들이 진행되어가고 있다.
더불어 세계 인류학자와 고고학자들이 최근 깊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부분이 소위 지나족이 일컫는 동이문명권이다. 우리 민족의 순수한 표현은 배달국(구리국 환웅시대) 문명이라 할 수 있다. 이 배달문명(동이문명)은 아시아에서 가장 앞선 문명권이었음이 밝혀지고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우리 고대 한국인들이 인류에게 문명을 전달해준 최조의 민족이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낳고 있다. 이는 앞으로 더욱 많은 노력으로 밝혀내야 할 부분이다.
문제는 이 배달문명권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되물림한 민족이 바로 우리 한국인들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몽고와 만주족에게도 그 고대문명에 대한 기억이 어느정도 남아있겠지만 한국사회에 만큼 뚜렷하고 선명하게 남았있지를 못하고 있다. 학자들의 말로는 그 배달문명권 안의 여러 민족중에서 가장 엘리트 집단의 이동의 계보가 바로 한반도로 이어지고, 나아가 일본열도로 이어졌다고 한다.
인류 문명의 원뿌리가 고대배달민족에서 탄생하고(최소한 아시에서 만큼은 확실하다) 그 법통이 고조선으로 계승되었고 신흥세력으로 지나문명이 성장하면서 대결구도로 오다가 힘의 균형을 잃고 지나의 질서구도에 갇히기는 하였으나, 결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은 지나의 영향에 물들지 않고 문명히 살아숨시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인 것이다.
배달민족의 법통을 이은 우리 고대 한국인들이 건너간 일본열도에도 아름다운 문명이 탄생하였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 해외 학자들조차 일본의 문화는 고대 한국인들이 전해준 것이라고 믿고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일본인들이 그것을 아직도 부인하려하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기는 하지만, 점차로 인본인 학계에서도 미약하나마 일본은 한국에서 나온 가지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과거 일본 세력이 강성하여 한반도와 지나에게까지 미쳤다는 것은 가장 이질적인 두 민족의 충돌이라 볼 수 있다. 즉, 어렴풋이 배달문명이 남아있는 자긍심강한 일본인들이 세계의 중심이 되고자 일어난 사건이다. 그러나, 일본의 그것은 힘에만 의존된 덕이 없는 발기였던 것이다. 본시 적장자가 아닌 서자들이 그러한 것처럼 삐뚤어지고 강팍한 심성을 표출하였다고나 할까?
어떤자들은 아직도 우리 한국의 문화가 지나의 아류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다. 참으로 무식한 말이며, 사대주의에 잔재라 볼 수 있다. 외국인 조차 그런 말을 하지 않는데 하물며 한민족으로 자처하는 자들의 입에서 그런 말이 서슴없이 나오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아직도 우리 스스로를 자해하는, 일제가 심어놓은 망국병이 치유되지 못한 증거이리라. 우리는 지나의 유교보다 인도의 불교를 먼저 받아들였던 민족이다. 그것은 우리가 지나와 닮은 자들이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다. 지나로부터 불교를 전래받은 것은 사실이나 당시 지나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왕조는 동이족의 후예들이었던 것이다. 지나의 정체성은 피지배의 역사다. 동이족들의해 지배되어온 역사라는 것이다. 따라서 동이족드이 중원으로 진출하여 불교를 받아드리고 그것이 한반도로 전래되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였던 것이다. 그러나, 본시 한족들은 불교의 사상을 이해하기 힘겨운 존재들이었다. 불교의 사상과 한족들의 사고체계는 서로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문화가 지나 문화의 아류라고 하는 주장의 또 하나로 유교를 예로든다.
그러나 지나의 유교와 한국의 유교는 차원과 성질이 다른 것이다. 지나에서는 아예 사장되다 싶이한 주자학만을 선택하여 발전시킨 것이 조선의 유교인 것이다. 그 이유는 지나 한족과 한국인들은 서로가 그만큼 달랐기 때문이다.
최근 서구 종교사상의 유입을 보더라도 천주교는 전래되기보다 우리땅에서 자생하였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다. 더불어 개신교을 받아드리고 발전시키는 것에서도 세계 기독인들이 놀라와하고 있다. 반대로 지나에서 가장 탄압받은 사상이 기독교 사상이다. 그것은 서구의 유물에 대한 배타적 심성 때문이기는 하지만, 지나인들의 사고체계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지나의 유학은 유물론적에 가까운 사상이며, 지나인들의 사상에는 관념론이나 형이상학이 없다. 따라서, 절대적 존재의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은 주기보다 힘든 것이었다. 지나인들에게 유물론적 사상이 환영받고 번성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가히 물질적에 가까운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기독교를 서양의 유물이라 하여 배탁적으로 탄압한 적은 있으나 그것은 정치적인 의도였지 사상적 충돌은 결코 아니었다. 서학의 반동으로 탄생된 동학 역시 서학의 그것과 대동소이한 부분이 많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한민족은 지나인들과는 그 태생적으로 사상적으로 근본이 다른 존재이며 그것은 결코 지나 문화의 아류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단지 유교라는 정치사적 잣대로 형식적으로만 평가한다면 당연 지나의 아류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그 내면을 고찰하면 단번에 한민족은 지나의 아류가 아님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유교사상에서 한민족의 시각에서 보여지는 진정한 가치만을 선택하고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어떤 학자는 그 원인이 바로 모든 종교와 사상의 씨앗이 우리 배달민족에서 퍼져나간 증거라고 말한다. 세계의 퍼뜨린 종교와 사상들이 각지에서 발전되었고 다시 한민족 내부로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것은 자연의 섭리와도 같은 것이었다고 말한다. 불교도, 도교도, 유교도, 기독교도 본시 그 본질을 아는 한민족 안에서는 차별없이 받아들여졌으며 더욱 빛을 발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우리를 부를때 배달민족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하여 나는 너무도 감사한다. 그 수많은 역사적 질곡을 경험하면서, 짖밟혀 오면서도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배달민족이라고 말하며 우리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했음에 무한한 감동을 받는다. 그 아득하 옛날부터 우리는 고도의 사상과 종교의식으로 뭉쳐진 겨레의식을 소유한 문명인었다는 발언인 것이다.
이러한 각성이 지금 시작되었다. 더불어 시대적 사명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우리 경제가 일본과 거의 동일하거나 초월하는 시점이 온다면 그동안 우리가 우리 자신들에 대한 고찰과 연구의 성과가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그때쯤이면 일본 역시 우리 한국을 깔보거나 열등한 존재로만 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일본인들은 한국과 닮은 그들의 모습을 발견하려 할 것이고, 한국과 더불어 배달문명의 일원으로서의 자신들을 확인하려 들 것이다. 지금도 일본의 소수에서 그런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인들이 한국문학에 관심을 쏟고 있다. 그들은 그동안 흙속에 뭍혀진 보석을 캐내는 듯 한국문학을 발굴하여 번역하는데 여념이 없다. 무궁무진한 다양성과 역동적 힘을 발견하며 그들은 한국에 매료되어가고 있다.
배달문명의 부활은 예고되었다. 껍질을 깨고 나올 우리 모습이 어떠할지 나는 못내 궁금하기만 하다. 그때까지 내가 살아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비록 어렴풋이 우리의 내일이 보인다. 우리가 그토록 까마득한 그 옛날의 배달민족이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않고 살아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