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글과 마찬가지로 독백 형식의 글을 쓰려고 합니다. 글을 읽는 분 께서는 반말로 계속 쓰게 됨을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글 쓴 후에 꼬리말을 몇 개 읽어보니, 제가 빼먹은 거나 오해를 살만한 여지가 있는 부분이 있군요. 첫째, apo 아이디는 춘 리 아이디와는 동일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본인도 동일인이 아니라고 밝히셨지만, 실제 글을 읽어본 기억으로는 개인 신상에 대해 스스로 밝힌 부분이 같지 않은 것 같군요. 그리고, 춘 리 아이디는 욕설이 훨씬 심했습니다. 사용하는 단어를 가리지 않는 전방위 좌충우돌 쯤 됩니다. 싸움판에 불을 지르는 능력(?)이 탁월했다고 할까. 저야 그런 스타일을 매우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만...
추억----01 에 이어서 씁니다. (이하 반말, 양해하여 주세요)
앞의 춘 리와 소한민국의 싸움은 일방적인 춘 리의 난타로 끝났다. 춘 리의 논리력이 좋아서 라기 보다는 소한민국의 지식이 딸리므로 해서, 그리고 싸움에서 상대에게 말려들어간 결과였다고 본다. 당시 소한민국이 내세운 것이 뒤에 상당기간 동안 회자된
[중국에는 고기도 싸도, 과일도 싸다. 한국인이 중국와서 게걸스럽게 먹더라]
라는 그런 류의 문장이었는데, 이걸 중국이 잘 산다는 근거로 내놓았으니, 밀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춘 리는 그걸 약점으로 잡아서 두고 두고 써먹게 된다. 대충 이런 스토리고, 그 당시에 난무하는 욕설과 몇 인간의 장난질 때문에 여기 관리자가 그 당시 고생 꽤나 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런 글들이 현재는 남아있는게 별로 없다는 것을 밝혀둔다.
당시에 먹는 것 때문에, 그당시는 먹는 음식의 물가가 잘 산다는 근거가 될 수 있냐는 고민은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것이고, 또 여러사람이 지적했듯이 물가차이를 고려해야 판단이 가능한 것이지, 대충 말한다고 되는 문제는 아니다.
(일본에서 일식집 식사한 경험이 있는 분들이 이런 부분을 말했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 소한민국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중국 땅이 넓으니 산해진미가 많이 나고, 서민들도 풍부하게 먹고 산다는 것, 그리고 잘 사는데 먹는게 얼마나 중요하냐는 것, 서민들이 배불리 먹는 것이 중요하지 않냐는 것 등이다. 물론 이것은 내 주관적 해석이고, 소한민국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 조차도 실패했는데, 이는 글을 너무 간단히 쓴 뒤에, 바로 엄청난 반론에 시달린 탓이기도 하다.
여기서 파생된 문제, 중국 땅 넓다(누구나 안다)---> 땅 넓어서 뭐가? ----> 한국은 땅이 좁아 마음도 좁다(?) 라는 해괴한 발상으로, 뒤에 몇 몇 사람들이 한국을 비하하는 의미로 썼다. 만일 러시아와 캐나다 사람이 가장 특출나게 마음이 넓고, 유럽의 벨기에나 룩셈브루크 쯤 되는 나라 사람의 마음이 매우 좁다는 증거자료를 제시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을 시에는 언급할 가치도 없는 괘변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또 다른 파생문제, 즉 중국인이 공산주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반상식 중 하나. 공산당이 있으니까 이나마 다 밥먹고 사는 거야 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과거 역사를 보거나 다가올 미래를 경험할 사람들은 말 안해도 체험하겠지만, 공산당은 밥 생산하는 기계가 아니다. 서민들 한테서 밥 빼앗는 기계라면 비슷한 비유가 되겠군. 다만, 실험적인 반론이 불가능한게, 그 많은 인구를 단일국가에 가지고 있으면서, 공산주의 체제가 아닌 나라가 지구상에는 없다는 점은 있겠지. 그러니까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인데, 그럼 이렇게 말하면 된다. [인도를 봐라] 심지어 계급사회고(법적으로는 60년대 폐지됨) 정치가 부패해도 너희만큼은 먹고 살어.. 인구도 열라 많어, 라는 반론 정도는 가능하겠다.
어찌 되었건, 그런 폭풍과 글 삭제 등등이 지나가고, (대충 아이피 차단되었네 어쩌네 하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때가 벌써 이때 부터다. 욕은 쓰지말자. 안 그래도 관리자 물렁하다는 소리 나오는 판에 좀 자제해야 되지 않겠나?)
그야말로 다양성의 시대가 열렸다. (곁 가지 중 생각 안나는 것은 짤랐다. 뻬 먹은 것 알려주시면 글을 수정, 보충할 용의가 충분히 있음을 말씀 드린다. 사안에 따라 따로 주제를 잡아야 할 경우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이건 추억담이니까)
다양성의 시대에 어울리는 그 당시 주제를 찾아보자,
기억나는 아이디 중에 뭐가 있을까.
[김 생] 아이디가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디젤], [건필] 등도 있는데, 이 두 아이디는 검색을 통해 해당 글을 읽기 바란다. 논쟁속의 폭풍에서는 한 발짝 비켜가 있으니 일단 이 시리즈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다만, [김 생]에 대해서는 서술하려고 한다.
그리고, 중국통의 조언 연재 시작.
내가 알기로는 중국통 이라는 것이 원래 조선일보에 있는 까페 이름이다.(상당히 유명한 곳으로 알고 있는데, 몇 달전에 장난질 치는 인간들 때문에 실명제인지 등록제 인지로 바뀌었다. 지금은 활동이 어떤지 모르겠고.) 그래서, 거기에 있는 글을 인용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게 원래 연변통신에서 연재되었던 모양이다. 김선생 이라는 분은 거기에서 원래 활동을 하고 있었고. 어쨌거나 이 사이트에서는 연재물의 이름이 [중국통의 조언]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자유게시판의 아이디 [김 생]과 중국통 연재의 [김선생]을 혼동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 잠시 그 두사람의 차이점을 서술하자.
김선생 -- 한국인, 중국경제를 전공하였으며, 중국과 대만, 일본에 여러번 왕래한 경험이 있음. 현재 직장인 (철강 관련). 50대의 나이로 알려짐. 자유게시판에 사진 올라온 적 있음. 술을 매우 좋아함. 근래에 교통사고를 당했으나 현재 회복.
김 생 -- 재 중국 조선족. 한국에 온 적 없음. 게시판에 글 쓸 당시 직장을 나와 사업을 시작했다고 함. 나이는 30대로 추정. 본인 사진 포함한 사진 올렸다가 안전문제로 관리자가 삭제. 법륜대법(falundafa) 수련생(따라서 술, 담배 전혀 안함). 중국통의 조언을 지지함.
그 외에, 그 당시에 이 사이트 기사 중에 거의 엽기물에 가까운 기사들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크게 두세가지가 있다.
하나는 10대 소녀의 처형사진으로 알려진 것. 처형직전과 처형직후 머리통의 1/3이 없어진 사진. 또 하나는 지금도 가끔 사람들이 말하는 영아탕 사진(먹는 사진), 그리고 길거리에 버려진 태아의 시체사진이 있다. 한 가지를 더 꼽자면, 산 동물 가죽벗기는 동영상이 있는데, 확실히 원본 사진, 동영상 모두 워낙 충격적인 자료라 필히 19금 딱지를 붙여야 한다. (이 글 읽었다고, 해당자료 찾아 헤메지 마라. 정서에 이상이 생겨도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 충격으로 조금이라도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더 일어난다면 그래도 괜찮지만......)
일단, 내가 보기에 가장 흥미있게 보이는 아이디 [김 생]에 대해서 먼저 말하고자 한다.
중국통의 조언은 현재 진행중이므로, 시간의 흐름에 좀 맞추기 힘들어서 추억편 하나를 별도로 할애하여 따로 서술할 것이다. 여기에는 공산주의에 대한 관점과 아이디 홍길동에 대한 분석이 같이 들어간다. 이른바 물타기 전략과 그 실패와 성공까지 같이 분석할 예정임.
그리고, 위에 제시한 기사중에 가장 말이 많았던 것이 10대 소녀의 처형 사진인데, 여기서도 논란이 많이 되었지만, 대자보 라는 사이트의 란보라 라는 (조선족으로 추정, 아님 그냥 중국인이던가) 사람이 일본 극우주의자의 음모라는 소설같은 이야기를 기사로 써서 데일리 차이나를 크게 선전해 준 일이 있다. 여기에 대해서도 간단히 말할 예정. 음모론이 물타기 수법중에 아주 유력한 방법이라는 것을 먼저 말해둔다.
그럼 [김 생] 아이디에 대해 추억을 더듬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