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여름 남태평양의 참치잡이 어선 ‘페스카마호’에서 충격적인 선상반란 사건.
[엽기 실록]「살육의 배」페스카마 15호의 船上반란
1995년 조선족 선원 6명이 선상반란을 일으켜
한국인 선원 11명 (맹장수술로 거동을 못하는 19살의 실습생 1명 포함)
자신들의 선상반란에 동조하지 않은 조선족 1명
인도네시아 선원 3명을 살해한 기록입니다.
조선족 선원들 이 한국 선원들을 죽이자고 의견일치를 본 시간은 밤 9시. 한 시간 만에 범행계획이 세워진 것이다. 항해에 필요한 1등 항해사 李仁錫씨는 우선 살해 대상에서 제외됐고 첫 대상은 선장이었다.
계획을 세우고 나니 필요한 것은 흉기였다 . 참치잡이 어선에서 흉기를 구한다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조선족 李春勝은 선장 에게 폭행을 당한 후 자신의 침실에다 숨겨 놓았던 칼 두 자루를 꺼내와 한 자루는 崔錦浩에게 주었다. 白忠范도 갑판에 있는 창 고에서 칼 세 자루를 가져와 朴君男과 崔日奎에게 나눠주었다. 조선족 선원들은 한국 선원들이 잠든 틈을 타 선장부터 시작해 한 명씩 죽여나가기로 하고 일단 잠을 청했 다. 모두 잠든 다음 全在千이 한 명 한 명 불러내 죽이려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다음날인 8월2일 새벽 1시. 全在千은 李仁錫씨와 당직을 교대했다. 막상 한국선원들 을 죽이려고 하니 심정이 착잡했다. 1시30 분경 통신실에서 무선교신을 하던 선장이 全씨가 당직을 서고 있는 조타실에 들어왔 다. 선장 최기택씨는 全在千에게 『당직을 잘 서라』면서 『다른 배에서 연락이 오면 깨우라』고 했다. 全在千의 『잘 알겠다』 는 대답을 들으며 선장은 조타실 바로 뒤편 에 있는 자신의 침실로 향했다. 침실로 사 라지는 선장의 뒷모습을 보며 全在千은 인 간적인 연민에서 오는 갈등을 겪었다고 한 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들을 죽이지 않으면 결국은 내가 죽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일어난 갈등을 잠재웠다. 여기서 그만둔다 면 자신도 다른 조선족들에 의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런 갈등 속에서 어느새 새벽 두 시가 되 었다. 全在千은 「곧 죽어야 할」 선장을 빼고는 당직을 서느라 한국선원들 중 마지 막으로 잠든 李씨의 침실을 살폈다. 잠들어 있었다. 그는 다른 조선족 선원들을 깨웠 다. 朴君男과 崔日奎가 침실 중앙통로 사이 에 칼을 들고 숨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선장의 도주로를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李春勝, 崔錦浩, 白忠范 등은 선장을 살해한 현장인 조타실에 숨었다. 이제 全在千이 선장을 조타실로 유인만 해오면 살해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선박의 심장인 조타실과 침실 의 위치를 살펴보기로 하자. 배의 船首(선 수)를 기준으로 조타실의 후면 중앙에는 선 박을 縱(종)으로 관통하는 통로가 나온다. 조타실에서 내려서서 船尾(선미) 방향으로 진행하면 좌측으로는 海圖室(해도실), 항 해사 李仁錫씨와 全의 침실, 갑판장 강인호 씨와 인도네시아 선원 렛타가 사용하는 침 실, 기관사 박종승씨와 朴君男가 함께 쓰는 침실이 이어져 있다. 우측으로는 선장 최 기택씨의 단독 침실, 통신실, 崔錦浩·崔日奎·아삿·닉슨 등 4명이 사용하는 침실이 있다. 중앙통로로 이어지는 침실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면 선박을 횡단하는 길이 5.15m, 폭 60cm의 통로가 나온다. 이 통로를 통해 갑 판으로 나갈 수 있다. 중앙통로 건너편으로 는 기관실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고 건너편 의 좌측으로는 白忠范, 요크, 순다, 로비( 7월28일 下船)가 사용하는 침실이 있고, 계 단을 내려가면 우측에는 화장실과 목욕실이 있고 반대편으로는 계단 아래 기관실이 있 다. 그 중앙에 식탁 2개와 의자 4개가 비치 된 식당이 있고 우측에는 기관장 김신일씨 의 침실과 崔萬奉, 李春勝, 로사디, 레인 등의 침실이 있고 좌측에는 조리장과 조리 장 서장주, 조기장 김창열, 페리, 누차만 등이 사용하는 침실이 있다.
2일 새벽 3시 경. 조타실을 나온 全在千은 선장의 침실로 향했다. 全在千은 문을 열 고 『선장님 타선박에서 호출이 왔습니다』 고 말했다. 선장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全 씨는 맞은 편 海圖室로 들어가 허리를 숙이 고 해도를 보는 척했다. 선장이 조타실로 들어갔다. 全在千은 선장이 빠져나오지 못 하도록 재빨리 밖에서 조타실 문을 잠갔다. 조타실 내부. 조타실 안은 어두웠다. 빛이 있었다면 狂氣어린 6개의 눈동자에서 나오 는 빛이었을 것이다. 선장이 들어서는 순간 李春勝이 들고 있던 참치처리용 칼로 崔선 장의 복부를 찔렀다. 참치잡이 만큼이나 서 툰 동작이었지만 칼은 복부 깊숙이 박혔다 . 崔선장이 맥을 못추고 그 자리에서 고꾸 라졌다. 李春勝은 쓰러지는 崔선장의 목 뒤 를 재차 찔렀다.
조타실 안에 있던 白忠范과 崔錦浩도 참치 처리용 칼로 崔선장의 무릎과 복부를 잇따 라 찔렀다. 崔선장이 죽으며 남긴 말은 『 악』하는 외마디 비명뿐이었다. 밖에서 문 을 닫고 있던 全在千이 문을 열고 조타실로 들어왔다. 조타실 안에 있던 세 사람은 공 포를 잊으려는 듯 다시 칼을 치켜들고 있었 다. 조선족 선원들은 崔선장을 살해할 당시 극도의 공포감을 느꼈던 것 같다. 李春勝의 검찰에서의 고백.
『저는 그 당시 공포에 질려 있었던 상태였 고 선장을 바다로 던질 때도 저는 선장의 한쪽 다리만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 에 선장이 숨을 쉬면서 헐떡거렸는지 아니 면 완전히 숨을 멈춰버렸는지 여부를 모르 겠습니다』
이후에 벌어진 상황을 검찰 공소장은 이렇 게 적고 있다.
<…피해자를 살해하고 즉시 그곳에서 피고 인 전재천이 『됐다, 죽었으니 그만 바다에 내다 버려라』고 지시하자 피고인 최금호 , 백충범, 이춘승은 피해자의 전신을 잡고 조타실 우측 출입문으로 끌고 가고 조타실 밖에 있던 박군남 최일규도 조타실 안으로 들어와 합세하여 피해자를 조타실 우현 방 현대 밖 해상으로 던져서 사체를 유기하고…> 全在千이 탄원서에 쓴 상황묘사는 약간 다르다. <1~2분 가량 후 브리지(조타실)에서 선장이 『악』하고 소리치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브리지 문을 열었습니다. 해도실 등불이 비쳐 (조타실 내부가)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 선장이 넘어졌는데 이춘승이 칼을 들고 선장의 등을 또다시 찌르려 하였습니다. 나 는 나도 모르게 『여이』하고 소리가 나갔 습니다. 끔찍해서 그랬는지 불쌍해서 그랬 는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됐다. 죽었잖아. 빨리 처리하자. 1항사가 나오면 큰일이다』 하니 이 사람들이 모두 붙어 (사체를) 들고 우측 통로 문으로 나가는 것 으로 보았습니다>
全在千은 자신이 살해에서 사체 처리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쨌든 남태평양 바닷물 속 으로 선장의 사체를 버린, 全在千을 제외한 조선족 범인들은 바닷물로, 崔선장을 살해 하면서 손에 묻은 피를 씻는다. 그리고 첫 살인으로 인한 흥분이 가시기도 前에 그들 은 다음 살인을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 새벽 3시30분. 두 번째 살해 대상자로 지목 된 한국 선원은 갑판장 강인호씨였다. 선장 유인에서 살해 그리고 사체유기 후 2차 살 해 준비까지 30여 분 정도 걸린 셈이다.
殺意(살의)가 사라지는 것이 두려웠던 탓일 까. 조선족 선원들은 서둘러 崔선장의 피비 린내가 진동하는 조타실에서 곧바로 2차 살 해 준비에 들어간다. 全在千은 우선 1차 선 장 살해 후 흥분을 가누지 못하고 있는 李春勝에게는 잠시 쉬고 있으라고 했다. 李春勝의 狂氣가 오히려 같은 편을 해칠지도 모 른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李春勝은 崔선장을 죽이고 난 다음의 자신 의 심리 상태를 검찰조서에서 이렇게 밝히 고 있다.
『제 생각으로는 처음 사람을 죽이고 나니 까 갑자기 멍해지더니 미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전재천이는 저한테 말하기를 확실히 죽였으니까 나가서 쉬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두 번째 살인은 李春勝이 빠진 상태에서 진행된다. 조타실 안에는 崔錦浩 가 도끼를 들고 조타실 우측 문 곁에 붙어 서 있었고 그 곁에 칼을 든 崔日奎가 서 있었다. 白忠范은 갑판장이 도망을 칠 것에 대비 船尾 갑판에 배치됐고, 조타실 우측 후미에는 朴君男이 매복했다. 배치가 끝난 후 全在千은 갑판장의 침실로 갔다. 全在千은 잠든 갑판장을, 『선장이 조타실에서 부른다』며 깨웠다. 강인호 갑 판장이 『알았다』며 일어서는 것을 보고 全在千은 먼저 조타실로 갔다. 조타실에 들 어온 全在千은 『갑판장이 들어온다』고 조 타실에 매복해 있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살해 준비를 하라는 말이었다. 침실을 나온 강인호 갑판장은 중앙통로를 통하지 않고 우측 통로를 통해 조타실로 향 했다. 조타실 우측 출입문으로 들어오기 위 해 갑판장은 일곱 개의 철제 계단을 올라섰 다. 문을 열었다. 문이 채 열리기 전에 어 둠 속에서 갑판장의 머리를 향해 도끼 날이 날아왔다. 갑판장은 재빨리 문을 다시 닫 았다. 도끼날이 미처 닫히지 못한 문틈에 끼었다. 갑판장은 몸으로 문이 더 이상 열 리지 않도록 문을 밀면서 도끼의 날 부분을 손으로 잡았다. 조타실 안에서는 崔錦浩가 도끼 자루 부분을 잡고 있었다. 숨막히는 순간이었다.
全在千은 조타실 안 에서 곁에 있던 崔日奎에게 손짓으로 중앙 출입문을 통해 나간 후 우측 통로로 가서 도끼날을 잡고 버티고 있는 강인호 갑판장 을 칼로 찌르라고 지시했다. 崔日奎는 재빨 리 중앙 통로를 빠져나가 갑판장의 등 뒤로 갔다. 몸으로 출입문이 열리지 못하도록 버티면서 도끼 날을 잡고 온 신경을 조타실 안에 집중시키고 있던 갑판장은 崔日奎가 뒤로 다가서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강인호 갑판장의 등 뒤에 선 崔日奎의 참치 잡이용 칼이 갑판장의 엉덩이를 찔렀다. 불 의의 습격을 당한 갑판장이 잡고 있던 도끼 날을 놓으며 맥없이 철제 계단 밑으로 떨어 졌다. 문이 열리면서 崔錦浩가 도끼를 들고 나왔다. 그가 손에 들고 있던 도끼는 통로 밑으로 떨어진 갑판장의 목을 향해 내리 찍힌다. 어느새 조타실 우측 후미 부분에 있던 朴君男도 달려와 갑판장의 복부 부위 에 칼을 꽂는다. 그리고 崔선장을 그렇게 했던 것처럼 갑판장의 사체를 태평양 한가 운데로 내던진다.
李仁錫씨는 『崔錦浩씨의 도끼를 피한 후 갑판장이 재빨리 그 자리를 피했다면 사태 가 더 이상 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갑판장은 1m80cm에 가 까운 키에 몸무게가 130Kg이나 나가는 거구 였다고 한다. 맨주먹이라면 두 세명은 상대 할 수 있는 체력과 운동신경을 가졌기 때문 에 일단 그 자리를 피한 후 불의의 습격만 당하지 않았다면 거꾸로 범인들을 제압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李씨의 말.
『문제는 조선족 선원들이 집단적으로 船上 반란을 일으킨 것이라고 미처 생각을 못한 겁니다. 불만을 가진 한 두명이 그러는 것 이라고 판단했고 흉기만 빼앗으면 조타실 안에 있는 그 한 두명은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거지요. 그 자리만 피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겁니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조선족 범 인들이 세 번째 대상자로 지목한 한국선원 은 李仁錫씨였다. 다행히 조선족 선원들은 항해에 필요한 李씨는 살려두기로 한다. 다만 완전한 船上 장악을 위해서는 李씨를 자유롭게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새벽 4시. 조선족 선원들은 李仁錫씨를 결 박해 구금하기로 하고 행동에 들어갔다. 선 장과 갑판장을 죽이고 사체를 처리하는 데 한 시간 가량이 소요된 것이다. 全在千은 朴君男 등 조선족 船上반란 가담 자들이 모인 조타실에서 『다음은 1항사인 데 1항사는 죽이거나 상하게 해서는 안 된 다』고 말하고는 李씨의 침실로 갔다. 나머 지 범인들은 조타실에서 대기하고 있고 全在千은 갑판장을 살해할 때 했던 방법대로 『선장이 조타실에서 찾는다』며 李씨를 조타실로 유인한다.
처음에 李씨는 전날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 에 곧바로 일어날 수 없었다고 한다. 全在千이 재차 왔을 때 비로소 李씨는 일어날 수 있었다. 피곤하기는 했지만 李씨는 취침 중이라도 급한 일이나 의논할 일이 있을 때 선장이 찾는 것은 간혹 있는 일이므로 아 무 의심 없이 조타실로 향했다. 우측 출입문을 열고 조타실로 들어섰다. 선 장이 기다린다는 조타실은 너무 어두웠다. 불을 켜야겠다는 생각을 막 했을 때였다. 우악스런 팔이 그의 몸을 나꿔챘다. 누군 가 목에 줄을 걸었다. 뿌리쳤다. 다시 목을 조였다. 숨막힘을 느낄 겨를도 없이 얼굴 위로 연달아 억센 주먹이 날아왔다.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손이 뒤로 꺾이며 줄에 묶였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 게 물체의 움직임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 귀 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장과 갑판장은 지금 상어와 놀고 있다 . 반항하지 말고 순순히 따르라』全在千의 음성이었다. 全은 李씨의 입에다 청테이프를 붙였다. 李씨는 선장과 갑판장 이 상어와 놀고 있다는 全在千의 말에 그들 이 이미 죽었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 은 船上반란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조선족 선원들은 결박한 李씨를 끌어다가 船首에 있는 음료수 창고에 가뒀다. 그곳에 서 李씨는 오전 8시 30분 경까지 4시간 30 분 동안 갇혀 있었다. 그 사이에 한국인 선 원 7명을 죽인 「1차 죽음의 狂亂」은 계속 됐고, 결박에서 풀려났을 때 페스카마호에 는 그가 아는 한국 선원이 단 한 명도 없었다. 全씨는 탄원서에서 李仁錫씨 결박과 관련된 자신의 검찰진술을 번복하고 있다. 자신은 李씨에게 『선장과 갑판장이 상어와 놀고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다 음은 全씨의 탄원서 중 李씨 결박과 관련한 주장이다.
<같은 방법으로 중국인은 조타실에서 기다 리고 나는 침실에 가서 1항사(李仁錫)를 깨 웠습니다. 1항사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다시 들어가 『빨리 일어나요. 선장이 부릅니다』 하였습니다. 나는 海圖實에서 엎드려 海圖 보는 척했습니다.잠깐 후 1항 사는 나를 지나 조타실로 들어갔습니다. 나 는 뒤에서 문을 닫았습니다. 한 5분 가량 지난 후 조타실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어둠 속에서 1항사를 눕혀놓고 손을 묶고 있었습니다. 1항사는 『사람 살려라』하며 고함쳤습니다. 백충범씨는 수건으로 입을 막았습니다. 이때 1항사가 『수건으로 막 지 말고 테이프로 붙여라. 숨 좀 쉬게』하 여 나는 테이프를 찾아 입에 붙였습니다. 나는 『1항사! 우리를 원망하지 말라. 너희 들을 원망하라. 우리가 오죽하면 부모 형제 자식 두고 이 망망한 바다에 나왔겠는가. 우리가 손이 닳도록 빌고 용서를 청했을 때 받아주었으면 너희들도 우리들도 다 살 았잖아. 무엇 때문에 우리를 거지로 만들고 가족까지 못 살게 하나. 심지어 집에도 못 가게 경찰서까지…. 악한 놈들, 너희들의 죽음은 너희들이 만든 것이다. 1항사는 상 하지 않을테니 마음을 놓고 잠시 선수 창고 에 가 있어요』라고 말하며 나와 최일규, 박군남이 1항사를 데리고 음료수 창고에 가 두었습니다. 『선장과 갑판장은 상어와 논 다』는 말은 누구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소 리입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李씨는 『나는 분명히 선 장과 갑판장이 상어와 놀고 있다는 전재천 씨의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같은 날 4시20분 경. 조선족 선원들은 세 번째의 살인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 다. 대상은 기관사 박종승씨. 방법은 갑판 장 살해시와 동일. 살해를 위한 조선족 선 원들의 배치에는 약간의 변동이 있었다. 조 타실 안 대신 조타실 오른 쪽 앞으로 崔日奎, 崔錦浩, 朴君男이 숨어 있고, 李春勝은 죄측 통로에, 白忠范은 배의 오른쪽 끝머 리 부분에 숨어 있었다.
船尾 부분에 있는 기관실 당직자인 박종승 씨를 全在千이 조타실 부근으로 유인하기 위해 찾아갔을 때 그는 식당에서 라면을 끓 여 먹은 후 의자에 앉아 쉬고 있었다. 朴씨 는 殺意를 전혀 못 느꼈는지 全在千을 보고 는 『당직을 서고 있느냐』면서 앉으라고 권했다. 그 이전까지 全在千과 기관사 朴씨 와의 관계는 당직을 서면 서로 음식을 가져 다 주고 이야기를 나누는 등 인간적으로 가 깝게 지내는 사이였다.
그런 사이였기 때문에 全在千은 당시의 심 정을 「이제 곧 죽을 기관사를 보니 정말 가슴이 아팠다」고 탄원서에 적어놓고 있다 . 朴씨 곁에 앉은 全在千은 담배를 꺼내 불 을 붙여주며 『선장이 조타실에서 찾는다』 고 말했다. 朴씨는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고, 全在千은 『무슨 일인지 모른다』 고 답하곤 조타실로 향했다. 기관사도 곧바로 우측 통로를 따라 조타실 로 왔다. 조타실에서 朴씨가 올라오고 있는 것을 본 全在千은 창문을 두드려 밖에 매 복해 있는 조선족 선원들에게 朴씨가 오고 있음을 알렸다.
조타실 우측 문 앞에 도착한 朴씨는 출입문 을 잡아당겼다. 조선족 선원들이 조타실 바 깥에 매복하고 있었으므로 朴씨가 조타실 안으로 들어가면 살해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조타실 안에 있 던 全在千은 朴씨가 조타실로 들어오지 못 하게 문을 여는 순간 朴씨를 발로 차 계단 밑으로 떨어뜨렸다. 그와 동시에 朴君男이 달려와 朴씨의 가슴을 찔렀다. 뒤이어 매 복해 있던 다른 조선족 선원들도 달려들어 朴씨의 등, 엉덩이 부분 등을 찔렀다. 이때 피해자는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다 . 그러나 조선족 선원들은 애원하는 朴씨를 , 선장과 갑판장을 던진 그 자리에서 똑같 은 방법으로 바다를 향해 던졌다. 선장과 갑판장을 살해하고 바다에 던질 때와 차이 가 있다면 산 채로 던져졌다는 것이다. 李仁錫씨는 『그 해상은 상어가 많아 산 채 로 바다에 던져졌다 해도 생존율은 0%에 가 까운 곳』이라고 말했다.
살인 기술은 빨리도 숙련됐다. 조선족 선원 들의 네 번째 살인은 기관사 朴씨를 바다로 던져 살해한 지 20분 만에 시도된다. 이번 의 대상은 조기장 김창열씨. 박종승씨를 살 해할 때와 마찬가지로 조선족 선원들은 조 타실 바깥에 매복을 했다. 全在千은 관성처 럼 김창열씨의 침실로 향했다. 그리고 역시 습관처럼 『선장님이 조타실에서 찾으십니 다』고 말했다. 그리고 익숙한 몸놀림으로 조타실로 향했다. 金씨도 다른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별 의심 없이 조타실을 향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金씨는 조타 실로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고 우측 창문을 통해 조타실 안을 살폈다. 조타실 안을 살 피던 金씨는 조타실 우측에서 매복을 하고 있던 崔日奎 등의 조선족 선원을 발견한다 . 순간적으로 金씨는 배 後尾로 도망하기 위해 몸을 틀어 도망을 친다. 몇 걸음 안 가서 金씨는 崔日奎가 휘두른 칼에 왼쪽 갈 비뼈 부근을 찔리면서 쓰러졌다. 범인들은 쓰러진 후 더 이상 칼질을 하지 않았다. 대신 네 명이 동시에 달려들어 살아 있는 金씨를, 박종승씨를 그랬던 것처럼 번쩍 들 어올려 바다로 던졌다.
그러나 金씨는 바다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 는 방현대(조업이나 통행시 안전을 위해 설 치한 난간)를 붙잡고 매달렸다. 김창열씨는 방현대에 매달려 『이러면 안 돼 난 조기 장이다, 난 조기장이다』라고 외치며 살려 줄 것을 애원했다. 金씨의 애원에 대한 조 선족 선원들의 대답은 들고 있던 칼로 방현 대를 잡고 있는 金씨의 손등을 내려치고, 손가락을 젖히고 발로 차서 바닷물로 金씨 를 떨어뜨리는 짓이었다. 네 번째의 살인은 그렇게 끝났다.
다섯 번째의 살인은 새벽 5시에 시작됐다. 대상은 조리장 서장주씨. 全在千은 지금까 지와 같은 방법으로 조리장을 조타실 쪽으 로 유인했다. 서씨 역시 아무 의심 없이 조 타실로 들어섰다. 그 순간 全在千이 발로 서씨의 배를 찼지만 빗나갔다. 위험을 직감 한 서씨는 재빨리 船尾방향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서씨는 한국 선원들이 도망을 칠 것에 대비해 船尾에서 매복해 있던 白忠范 에게 걸려 그가 휘두르는 쇠파이프를 맞고 쓰러졌다. 황망중에 서씨는 조선족 선원들 에게 살려줄 것을 간청하지만 그 역시 산 채로 바다에 던져졌다.
여섯 번째로 살해당한 사람은 페스카마 15 호 승선 선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기관장 김신일씨였다. 시작 시간은 5시20분으로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全在千은 역시 앞서 와 같은 방법으로 기관장 金씨를 조타실 부 근으로 유인했다. 全在千은 우측 문으로 들 어오는 金씨의 복부를 발로 차 넘어뜨렸다 . 재빨리 일어난 金씨는 조리장 서씨가 그 랬던 것처럼 船尾로 도망을 쳤다. 도망을 치던 金씨는 船尾부분에 채 가기도 전에 우 측 통로에서 넘어진다. 조타실 부근에서 매 복을 하고 있던 조선족 선원들은 넘어져 있 는 金씨를 들어올려 역시 산 채로 바다에 던졌다. 칼이나 쇠파이프에 맞지 않아 놀란 것 빼고는 정신이 말짱했던 金씨가 『살려 달라』는 애원을 했음은 물론이고, 그 애원 을 조선족 선원들이 무시했음도 물론이다. 이 여섯 번째의 죽음은 또 한 명의 한국인 희생자를 만든다. 金씨는 바다에 던져져 떠내려가며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를 듣고 인도네시아 선원인 페리, 요크, 순다가 金 기관장의 살해장면을 목격하게 되었고, 인 도네시아 선원들이 살해장면을 목격했다는 사실을 조선족 선원들이 알게 된 것이다. 조선족 선원들은 예상치 못한 이 사태를 놓 고 긴급히 모여 대책을 숙의했다. 그때 나 온 해결책이 인도네시아 선원들도 한국인 선원을 살해토록 함으로써 공범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李仁錫씨를 제외하고는 남아 있는 한국인 선원이 없었다. 그러나 항해를 하려면 李씨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으 므로 李씨를 당장 죽일 수는 없었다. 그때 누군가가 『한국인 선원이 한 명 더 있다 』고 말했다.
실습생인 최동호(당시 19세)군을 말하는 것 이었다. 崔군은 원양어선 실습을 위해 동 원212호에 승선했다가 맹장염 때문에 조선 족 선원을 下船시키기 위해 사모아항으로 회항하는 페스카마호로 옮겨 탔다. 동원21 2호에서 페스카마호로 옮겨 탄 시간은 살인 의 狂風이 몰아치기 직전인 2일 0시30분이 었다. 선장 최기택씨가 죽기 불과 두 시간 반 전에 페스카마호에 승선했던 것이다. 따사로운 남태평양의 햇볕이 페스카마호 船上 위로 내리 쬐기 시작하던 8월2일 오전 6시에 가장 불행했던 일곱 번째 희생자의 죽음이 준비되기 시작했다. 조선족 선원들 은 먼저 살해장면을 목격한 인도네시아 선 원 세 명을 배 우측 통로로 불러냈다. 조선 족 선원들은 모두 손에 칼을 들고 있었다. 같은 시간 全在千은 최동호군의 침실로 가 서 『조타실에 주사를 맞으러 가자』고 깨 운 다음 조선족 선원과 인도네시아 선원 3 명이 있는 곳으로 崔군을 데려갔다. 그 장 면을 본 崔군은 체념한 듯했다. 양손으로 방현대를 잡고 멍하니 서 있었다. 조선족 선원들은 인도네시아 선원들에게 『 네고(선원들이 쓰는 말로 물건 등을 바다에 투하시 사용한다고 함), 네고』라면서 崔 군을 바다로 떨어뜨리라고 했다. 인도네시 아 선원들은 칼을 들고 위협하는 조선족들 의 지시를 거부할 수 없었다. 겁을 잔뜩 먹 은 인도네시아 선원 3명은 아무런 저항도 없고 말도 없는 崔군을 번쩍 들어올려 바다 로 던졌다. 崔군을 바다로 던지는 일에 동 원됐던 인도네시아 선원 순다는 검찰진술에 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바다에 떨어지기 전 실기사(최동호)는 두 주먹을 힘껏 쥐었고 막 떨어지기 직전에는 등을 핸드레일(방현대)에 기댄 상태에서 양손으로 핸드레일을 거머쥐고서 「아, 아 」라는 말을 하였고 별다른 저항은 없었습니다』
崔군의 죽음을 끝으로 한국인 선원을 대상 으로 한 페스카마 15호 船上에서의 1차 살 인광풍은 끝났다. 조선족과 인도네시아 선 원 등 4명을 대상으로 벌인 2차 살인 狂風 의 준비는 같은 날 아침 7시부터 시작됐다. 조선족들은 페스카마호에 계속 남아 조업에 참가하기로 한 조선족 崔萬奉씨와 인도네 시아 선원들을 제거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이를 위해 全在千이 船尾쪽 침실에서 잠을 자고 있는 인도네시아인들을 깨워 창고에 가서 미끼를 가져오라고 지시한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선원들은 나오지 않고 崔萬奉 씨만 밖으로 나왔다. 全在千은 선수갑판으로 갔다. 그곳에는 마침 인도네시아인 선원 루롭만, 로사디, 레타가 그곳에서 서성거리고 있었 다. 全在千은 자신을 따라 올라온 崔씨와 그들에게 미끼 50상자를 가져오라고 지시했 다. 全在千의 지시를 받은 崔씨와 인도네시 아 선원들은 미끼를 가져오기 위해 어창 준 비실로 들어갔다.
여기서 잠깐, 어창의 구조를 살펴보자. 조 타실 하부에는 길이 8.4m, 넓이 2.83m 공간 에 4개의 급냉실이 사방에 있으며 중앙에는 가로 1.13m, 세로 1.45m, 깊이 1m의 어창 준비실이 있고 사방 벽에는 냉동코일이 부 착돼 있다. 어창은 곧 냉동창고인 셈이다. 출입문은 철문으로 돼 있다. 조선족 선원들은 崔씨와 인도네시아 선원들 이 어창으로 들어가자 마자 문을 닫은 다음 잠가 버렸다. 그런 다음 잠금 장치가 혹시 열릴까 봐 잠금 장치를 밧줄로 단단히 묶 었다. 조선족 선원들은 평상시 어창 안의 온도가 영하 45도 정도라고 생각하고 하루 만 지나면 어창에 갇힌 선원들이 동사할 것 이라고 판단했다.
3일 밤 8시 경 全在千은 어창에 갇힌 선원 들이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朴君男을 데리고 창고 앞으로 가서 저울추로 문을 두 드려 보았다. 안에서도 똑같은 신호가 왔다 . 살아 있는 것이다. 냉동기가 가동되지 않 고 있었던 것이다. 이틀 후인 5일 저녁 8시 에 조선족들은 몽둥이를 들고 어창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1번 급냉실에서 죽창과 흉기가 튀어나오며 조선족 선원들을 공격 했다. 조선족 선원들은 잽싸게 그곳을 빠져 나와 다시 문을 잠갔다.
6일 저녁에도 全在千은 조선족 두 명을 데 리고 어창을 찾았다. 어창을 조금 열고 내 부 동태를 살필 때 崔씨가 『형님 살려 주 십시오. 인도네시아인들을 죽이라면 죽이고 무슨 일이든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고 외쳤다. 全在千은 『알았다』며 『지금은 밤이니까 날이 새면 풀어주겠다』고 말하 고는 다시 문을 닫았다.
조선족들은 다음날인 7일 저녁 8시 경에 몽 둥이를 들고 어창으로 갔다. 全在千이 문을 열고 들어가 崔씨를 먼저 밖으로 내보냈다 . 밖으로 나온 崔씨는 밖에서 기다리던 조 선족 선원들의 몽둥이에 맞고 쓰러졌다. 쓰 러진 崔씨는 곧바로 바다에 버려졌다. 다음 으로는 루롭만이 崔씨와 똑같은 방법으로 바다에 버려졌다. 뒤이어 나온 로사디와 레 타에게는 몽둥이질이 면제됐다. 너무 오래 굶어 이미 힘이 없었기 때문에 때리지 않 고도 손쉽게 바다로 던져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1, 2차에 걸친 狂亂의 살인극이 끝 난 것이다.
조선족 선원들은 한국 선원 7명을 살해하고 崔萬奉씨와 인도네시아 선원 3명을 어창에 가둔 후 대항할 세력을 일단 제거했다고 판단하고 오전 8시30분경 일등 항해사 李仁錫씨를 선수 창고에서 조타실로 끌고와 결 박을 풀어주었다. 나머지 인도네시아 선원 6명도 조타실로 불러 조선족 선원들의 지 시에 따를 것을 명령한다.
처음에 이들은 李씨에게 한국으로 밀항하겠 다며 한국으로의 항해를 지시했다. 그러나 얼마 후 조선족 선원들은 마음을 바꿔 일 본으로 뱃머리를 향하게 한다. 이러는 과정 에서 페스카마호는 외관상으로는 평온을 유 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선족들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 는 인도네시아 선원들과 조선족 선원들 간 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끊이지 않았다. 李仁錫씨 역시 조선족 선원들이 목적지에 도착 하면 사건 은폐를 위해 결국은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처음 며칠은 아랫배가 팽팽해질 정도로 오줌이 마려운데도 막상 오줌을 눌 수가 없 었습니다. 나오지를 않으니까요. 며칠 간을 그랬습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 짓눌려 있었던 거죠』 그래도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생존에의 의지 를 꺾어버릴 수는 없었다. 늘 기회를 기다 렸다. 마침 말은 안 통하지만 인도네시아 선원들도 李씨의 편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李씨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도네시아 선원 아삿에게 『스탠바이』라고 말하며 언 제든 준비를 조선족 선원을 제압할 하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船上반란이 일 어난 지 20여 일이 지났지만 단 한 번의 기 회도 오지 않았다. 조선족 선원들은 일본 밀항에 대비해 이미 4인용과 2인용 뗏목 2 척을 제작해놓고 있었다. 조선족 선원들이 6명만 탈 수 있게 뗏목을 제작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은 李씨와 인도네시아 선원들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늘은 李씨를 돕고 있었다. 배의 연료통은 좌우로 나뉘어 있었는데 공교롭게 도 한쪽의 연료만 계속 소비되고 있다는 것 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쪽이 연료만 소비할 때 짐으로라도 무게 균형을 맞춰주 지 않으면 배는 한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 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李씨는 살아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船上반란이 일어난 지 22일 째인 8월24일 오전 9시 경. 李씨는 배를 급회전시켰다. 짐을 한쪽으로 쏠리게 하기 위해서였다. 李 씨의 의도는 성공을 했다. 배가 우측으로 10도 가량 기울었기 때문이다. 배가 기울자 全在千은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인도네시아 와 조선족 선원 전부에게 어창에 들어가 짐 을 좌측으로 옮기라고 시켰다.
그 순간 李씨는 인도네시아 선원 아삿에게 어창에서 빨리 빠져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 아삿은 李씨의 뜻을 알아듣고 어창에 들 어가 있는 인도네시아 선원들에게 인도네시 아 말로 『빨리 나오라』고 했다. 조선족 선원들이 눈치채기 전 어창을 빠져나온 인 도네시아 선원들은 나오자마자 어창의 문을 잠갔다.
조선족 선원들이 뒤늦게 어창의 문이 잠긴 사실을 알아채고 소리를 치자 조타실에 있 던 全在千이 창고로 달려갔으나 李씨가 뒤 에서 몸을 잡고, 달려온 아삿이 全在千의 다리를 잡아 결박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 全在千은 조타실에서 묶인 채, 나머지 조선 족 선원들은 어창에 갇힌 채 다음날 아침 일본 해상 보안청의 순시선을 맞는다. 李仁錫씨의 기지가 船上반란이라는 무시무 시한 사건을 제압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아삿은 검찰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소에도 1항사가 저에게 영어로 스탠바 이라는 말을 하여 1항사가 중국 선원들을 제압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 고 저희들도 기회를 보고 있었습니다』 페스카마호 船上반란 사건은 절망적인 상황 에서도 생존에의 꿈을 놓지 않고 준비하면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교훈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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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여름 남태평양의 참치잡이 어선 ‘페스카마호’에서 충격적인 선상반란 사건이 일어났다. 중국동포 선원 6명이 한국인 선장 등 11명을 살해하고 수장해 버린 사건이었다. 페스카마호 사건은 살해수법과 피해규모도 끔찍했지만, 한편으론 중국동포 선원들에게 가해진 선상폭력의 실상에 치를 떨게 만들었다.
선상반란을 일으켰던 전재천(당시 38) 씨는 훗날 재판부에 보낸 탄원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은 우리를 ‘개’라 부릅니다. 매일 욕과 몽둥이, 쇠파이프 등으로 맞아 진저리가 나고, 눈칫밥을 먹으며 하루에 작업 21시간, 흐리멍덩한 정신상태로 있습니다….” “고기 한 마리 값보다 못한” 처우와 학대에 시달리던 조선족 선원들은 ‘하선 요청’마저 거부당하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한다. 하지만 범행의 대가는 냉혹했다. 한국의 법원은 “범행의 원인이 가혹한 선상폭력에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전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전씨를 뺀 나머지 피고인에겐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사형선고를 받던 순간 몸을 떨며 참으로 많은 눈물을 쏟았습니다. 나에겐 아직 채 이루지 못한 꿈과 행복이 남아 있고 해야 할 일도 너무나 많다고 생각하니 미련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죽는 것만이 유가족에게 위로가 되는 유일한 길임을 스스로 느끼며 혼자 마음 정리를 해 왔습니다.”
중국에서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0여년 동안 중학교 교사로 일했던 전재천 씨. 막내아들의 교통사고 치료비와 학자금 등을 감당하기 위해 한국의 원양어선에 올랐지만, 한 순간에 그의 삶은 낭떠러지로 추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