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금 숟가락 물고 태어나고 누구는 손가락 빨면서 태어나나? 그렇다. 자본주의의 소산인 빈곤은 대물림한다. 아담과 이브가 발가벗고 노닐 때에는 빈곤의 개념이 없었으나, 영국의 경제학자 T. R. 맬서스가 ‘인구론’에서 지적했듯이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느는 반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상황에서 식량배분의 불균형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며, 그게 고착돼 노동력 외에 다른 생산수단을 갖추지 못한 노동자들이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의식주(衣食住)가 아니라 식의주(食衣住), 굶어죽는 사람 없다는 지금도 먹고사는 게 문제다. 혹자는 절대적 빈곤보다는 상대적 빈곤이 더 큰 문제라고 침을 튀기지만 먹고싶은 것을 못 먹고 먹기 싫은 것을 억지로 소화시켜 최소한의 운동 에너지를 확보해야하는 사람들에게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19세기 중엽 독일의 통계학자 C. L. E. 엥겔이 벨기에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가계조사를 벌여 소비지출 중 식료품 비율로 빈곤을 측정하려고 덤벼들었던 것도 빈곤이라는 게 단순한 생존문제가 아닌 사회 구성원간의 비교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감안했기 때문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한국서 재미동포들을 ‘미국거지’라고 부른다지만 “미국선 거지도 쇠고기에 쌀밥을 먹는다”는 자랑이 아직은 유효할 듯 싶다. 한국 통계청이 국제노동기구(ILO)의 2003년 통계를 토대로 전세계 주요 34개국 식료품 가격을 비교한 결과 한국의 식료품값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쇠고기 ㎏당 43.67달러로 1위, 식용유 ℓ당 10.07달러로 1위, 감자 ㎏당 2.04달러로 2위, 사과 ㎏당 2.66달러로 3위, 우유 ℓ당 1.58달러로 4위.....쌀도 ㎏당 2.01달러로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들 중 최상위에 속한다. 서울 강남의 한 친척이 뉴욕에 놀러왔다가 홀세일 클럽 ‘코스트코’의 식품코너를 둘러보고는 “한국서는 매끼니 쇠고기 못 먹는데....”라고 말꼬리를 흐리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던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미 노동부 통계국이 집계하는 자료에서 엥겔계수를 뽑아보면 2000년 13.56%, 2001년 13.46%, 2002년 13.21%으로서 매년 낮아지고 있는데다가 극빈자들까지도 맛있는 육류나 과일 등을 마음껏 사먹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미국이야말로 살기 좋은 나라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거지’가 보기에는 한국은 아직도 배고픈 나라다. 2003년 현재 한국의 명목 국민소득은 5,764억 달러로 세계 11위, 1인당 국민소득(GNI)은 1만2,030 달러로 세계 49위,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지 10년이 다 돼가지만 국민들 대다수가 먹고싶은 음식 사먹을 때 부담을 느낀다면 빛 좋은 개살구, 식량정책이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2003년말 기준 농업인구는 353만여명으로서 전체 4792만여명 중 7.5%에 지나지 않는 바, 소수 농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다수 국민들로 하여금 쇠고기 쌀밥조차 제대로 못 먹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속담도 모르는 빵점 정치다. 먹거리 시장을 더 개방하여 식료품값을 대폭 낮춰야 한다. 식욕 하나라도 제대로 충족되면 길거리 막고 부자들에게 욕지거리 퍼붓는 사람들의 숫자가 확 줄어들 것이라고 믿는다.
입력일자: 2005.10.13 07:25 채 수 경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