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역사는 경계긋기의 역사이다.
경계는 자아와 타자 자아의 공동체와 타자의 공동체를 분간하게 해준다.
그러므로서 자아, 혹은 자아의 공동체의 순수성과 정체성이 생기게 된다.
타자가 없으면 자아가 존재하지 않듯이
자아가 없으면 타자란 개념도 없을것이다.
타자와 자아를 가르는 경계는 주로 경계선 긋기에서 나타난다.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민족적으로 등등
문제는 경계긋기에서 항상 타자를 희생양으로 삶아왔다는 것이다.
타자를 희생양으로 삶음으로써 한 공동체의 주체성과 정체성이 드러나고 정화되고 순화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타자가 존재함으로써 자아가 존재함으로
자아를 알기위해서는 타자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이다.
북이 존재함으로써 남이 존재할 것이다.
분단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의 현상태는 다르게 흘렀을 것이다.
과거 역사적으로 항상 북한을 악마로 몰아감으로써 남한의 민주성이 드러나고 자유성이 드러난다.
북은 악마도 천사도 아니다. 다만 자아와 좀 다른 어떤 타자 그 타자들의 공동체일뿐이다.
사실 북한주민들을 보면 전에 군사독재시잘 우리가 들던 그런 악마적인 존재는 아니지 않은가? 북한도 남한을 보는 시각이 마찬가지일것이다. 그렇게 북한당국자들이 선전했던대로 남한은 악당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었을 것이다.
한국과 연변 그 경계 긋기
연변은 항상 열등한 존재자로써 자아의 우월감을 확인시켜주는 그럼으로써
데일리차이나애용자들의 유대감과 정체성을 확인시켜준다.
타자와 투쟁하는 가운데서 말없는 공동체의식을 무의식간에 느낄것이다. 우리는 하나다.
연변과 북한이 존재하지 않으면 타자를 통한 자아확인이 불가능할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엄격한 이분법을 떠난 "탈영토화"한 시선으로 타자를 볼때
우리는 우리자신을 더 잘 알수 있지 않겠는가?
자아라는 개념도 항상 타자가 존재함으로써 확인할 수 있었을 진대
철저한 경계긋기는 왜곡된 자아관을 심어주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