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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자에서 어렵게 퍼온글
이름 : 지겨워
2005-10-27
'재중한인동포(조선족)와 한국인의 올바른 관계 조명' 김준봉님은 한국분으로서 현재(북경공업대학 건축과 교수/ 공학박사/석사도사) 들어가는 말 요즘 나라 안팍으로 온통 시끄럽다. 나라 안에서는 국가 보안법으로 전쟁터를 방불케하고 나라 밖으로 중국과의 고구려 역사 논쟁을 뜨겁다. 이제 지금은 곰곰히 중국과 우리와의 관계를  정검하고 중국의  200만 명에 달하는 우리 동포에 대하여 재조명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에 그들의 발생학적인 역사를 살펴보고 그들과 우리가 상생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한국과 중국은 이제 수교 12년을 넘겼다. 그러나 지금 비공식 통계지만 한국에 중국인이 30만 명이 살고 중국에 한국인이 30만 명 이상 장기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2000년대 중국 거주 한국인은 한선족(韓鮮族)이라고 부른다. 난 그냥 2000년대 조선족이라 부른다. 1900년대 한인동포(조선족)을 대비하면 당시 그들도 중국의 조선족이 되려고 오지 않았다. 지금 한국인도 조선족이 되려고 중국에 온 거는 아니나, 필경은 앞으로 지금의 중국에 있는 한국인도 중국의 또 다른 2000년대 조선족으로 살 것이다. 한국인이 이렇게 무섭게 중국에 정착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현재 중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200만 명에 달하는 조선족-조선족은 중국에서 13번째의 인구를 가진 소수민족이다-들 때문이다. 이들은 재미 교포나 재일동포와는 달리 지금은 3-4세대가 흘렀지만 아직도 한국 말을 할 수 있고 중국 정부로부터 차별도 받지 않는다. 정책상으로 보면 자녀문제 등으로 해서 차라리 우대를 받고 있다. 한족은 1가구 1자녀인데 소수 민족인 조선족은 1가구 2자녀이고 자녀를 낳으면 각종혜택을 준다. 중국 조선족을 같은 동포인 한민족으로 생각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엄연히 중국인인 외국인이다  이점을 간과 해서는 안 된다. 한민족이면 꼭 한국 사람일 수는 없다. 북한에 살면 북조선사람이요 러시아에 있으면 고려인 중국에 있으면 조선족 미국에 있으면 재미동포 일본에 있으면 재일동포 일 수 있다. 중국은 한국으로 놓고 보면 최대 수입국이자 최대 수출국이다. 아무래도 아편전쟁의 기억과 서구 열강들의 침탈을 기억하기 싫어하고 남경대학살의 장본인인 일본을  좋아할 리 없다. 그래도 한국은 중국에 조공을 바치던 우호의 나라이고 특히 북한과의 관계는 항미원조전쟁(6.25를 중국인이나 북한에서는 이렇게 부른다: ‘북한을 도와 미국에 대항해서 싸운 전쟁이란 뜻’이다)을 같이 참여한 혈맹의 나라이다. 중국과는 50년 의 수교 역사를 가진 미국을 제치고 불과 수교 12년 만에 최대의 교역국이 된 것은 중국과 한국과의 관계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한 5년만 빨리 중국과 수교했더라면 과연 우리는 벌써 IMF도 없이 국민소득 2만 불을 도달할 수 있었지 않을까…? 한국인과 조선족은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이다. 중국에서 우리 조선족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졸업 후 다들 중국 회사를 간다고 한다. 선배들한테 한국회사의 나쁜 소식을 많이 듣고 또 한국회사에 가면 자존심도 상하고 차별대우를 받는 곳이 싫어서 란다.. 그러나 막상 그들이 졸업하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대우가 좋은 한국 회사로 다들 간다. 허나 인간적 모멸감을 참지 못하거나 같은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느끼지 못한 채 한국회사를 그만두게 되고 다시는 한국회사를 가지 않겠노라고 맹세한다. 그러나 얼마 후 그를 만나면 여전히 또 한국 회사의 사원으로 다시 근무하고 있다. 한국회사도 마찬가지다. 조선족 직원은 믿지 못하겠고 금방 다른 데로 옮긴다고 다시는 안 쓰겠다고 하고 한족을 쓰다가도 다시 한국말과 정서가 그래도 통하는 조선족이  금방 궁해지거나 그래도 낫다 싶어 다시 조선족을 쓴다. 서로 욕하며 서로 공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지금 중국의 한민족은 조선족으로 불리고 있지만 중국을 구성하는 주요 민족이다. 우리는 중국에서 쓰는 말을 중국어라고 하지만 중국에서는 한어라고 한다 왜냐하면 중국어는 56개 민족의 언어가 다 중국어 이기 때문이다. 이러듯이 중국의 성립을 주도한 조선족은 중국 공민으로서 의리와 민족자존심으로 중국의 한족(漢族) 틈에서 생존한 저력이 있다. 자존심을 살려주며 상생하는 방안을 생각하라. 이중 언어와 이중 문화에 정통한 인력은 고급 인력인데 대부분의 조선족은 삼중언어와 문화를 체험한 고급 인력이다. 활용을 잘 하느냐 못하느냐는 전적으로 오너의 책임일 뿐이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최소한 한족( 漢族 )을 대하는 듯한 노력과 태도로만 접근하면 충분히 한족보다는 월등히 우수한 인력이다. 중국 한인동포(조선족) 역사 조선족이 오늘날 연변지역의 대부분을 일컫는 간도지역에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현재의 조선족 거주지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약 130여년 전이다. 1677년 청정부는 만주, 특히 연변지역을 선조 발상의 신성한 땅으로 보고 백두산과 압록강, 두만강 이북 500㎞2지구를 봉금구로 정하여 한족이나 그 밖의 비만주족이 유입하는 것을 금하였다. 그러나 조선조 후기(1860년대) 함경도 지방의 농민들은 10년간의 걸친 흉년으로 가난과 기아를 이기지 못하고 새로운 경작지를 찾아 비교적 사람이 살지 않으면서 땅이 비옥한 만주(간도) 지역으로 이주 하였다.처음에는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수확하러 오는 형태로 간헐적이었으나 , 차차 중국 청나라의 규제가 완화됨에 따라 조선족의 이주는 물론 다른 지방의 한족들 가운데 이곳으로 이주하는 사람의 수도 늘어났다. 청나라 정부는 1875년에 조선족의 정착을 관리하기 위하여 이민 관리처를 설치하였는데 이는 조선족의 본격적인 정착 이주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1860년에서 1940년에 이르는 약 반세기 동안 인구는 2배로 늘어났지만, 인구증가의 절반은 자연증가에 의한 것이므로, 만주로의 인구 이동규모는 별로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시기인 1910~1940년 사이의 조선족 인구의 증가는 엄청나다. 이 시기의 인구이동 규모는 이주의 기본 동기, 일본의 농업ㆍ노동 및 이주정책, 당시의 정치적 상황 등과 맞물려 변화를 보이게 된다. 그래서 이주시기별로 분류하여보면 첫째 시기는 19세기중엽부터 1909년까지의 자연경작이민시기로서 이 시기에는 주로 개별 흉년을 피해 경작이민에 의해 마을이 형성되었다. 대부분이 함경도로부터 이주해온 사람들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둘째시기는 자유망명이민으로  주로 정치적으로 일본의 압제를 피하고 자유를 위해 망명한 이민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한국 강점 직후(1910~1920년), 조선족의 만주로의 이주는 정치적인 이유와 경제적인 이유로 설명할 수 있는데, 정치적인 이주는 당시의 여러 가지 조건으로 보아 매우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였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일제의 토지조사 사업 실시 결과로 나타난 조선 농민의 소작화와 일본인 지주와 동양척식회사 등에 의해 전개된 조선 이 농민의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착취와 궁핍 때문이었다. 1920년대에는 인구증가율이 급격히 떨어지는데, 이의 원인은 1920년대 조선 이농민의 이동 목표지가 일본과 국내 도시로 바뀌었고, 그래서 만주로의 이주자는 이전에 비해 급격한 감소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시기는 1930년대 초반에서 해방이전까지의 강제개척이민시기로서 주로 일본의 집단이민정책에 의해 이주해온 사람들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30년대에 들어서는 전반기와 후반기가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만주사변이후 후반기에 인구가 급증하게 된다. 1931년 조선총독부는 만주의 침략과 조선의 파산 농민의 처리를 위하여 조선 농민을 대량으로 만주에 이주시킬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이 계획은 1932년 9ㆍ18 만주사변 이후 조선족이 항일과 반일의 선봉으로 간주되면서 치안 유지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이민이 제지되었다. 그리고 만주에서는 각종 치안조치와 함께 조선족에 대해 거주와 이동에 통제를 실시하는데, 즉 항일 무장투쟁 세력과의 연계를 끊기 위해 ‘집단부락’과 ‘안전농촌’을 만들게 된다. 이들 대부분이 한반도 남부지방을 기원지로 하며 출신지역별로 조선족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그들은 정착 당시 그들의 주거를 건축할만한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땅굴막» 혹은 출신지역의 민가와 유사한 형태의 집을 급조 하였으며 그래서 주거의 질은 매우 형편없었다고 한다. 그 후 1936년 만주의 치안이 안정됨에 따라 그 동안 침체되었던 만주의 농업발전을 위해 조선족 집단이주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그래서 1937년 처음으로 대규모적인 집단이주가 이루어졌고, 이 때부터 중국 동북지방의 조선족 인구는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즉 1930년대 후반기의 만주지방의 조선족 인구의 급증은 이와 같은 정책적 배경에 의해 설명된다. 그러나 조선족 대규모 유입의 근본적인 원인은 조선 농업의 파탄과 농민의 궁핍화였다. 따라서 이들 대부분은 이민 이라기보다는 고국에서 농토를 빼앗기고 소작농으로서 착취에 시달리다 못해 조국을 떠나 유랑하는 유민 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연변의 경우 집단 이주자들은 주로 인구가 적고 개발이 거의 되지 않았던 왕청과 안도에 배치되었고, 주로 조선의 남쪽 농업지역(특히 경사도)을 기원지로 하는 이들 후기 이민은 이미 조선족, 특히 함경도 출신으로 포화 상태인 간도보다는 다른 지역인 보다 북쪽 지방인 흑룡강성으로 향하게 된다. 또한 이 시기에는 철도가 개통되면서 연변과 조선, 연변과 그 외 중국 동북지방으로의 인구 이동이 더욱 빈번해지게 되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시작하면서 조선의 이민상황은 급변하게 되는데,즉 일본은 엄청난 조선의 노동력을 강제 동원하여 일본으로 파견한 것이다. 그 결과 만주로의 이주 규모는 크게 줄었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후 만주 조선족들은 대규모 조선으로 귀환하게 되는데, 해방 직후 만주에서 조선으로 귀환한 사람은 총 인구의 40%에 달하며, 귀환자의 비율은 이주의 역사가 비교적 오래된 간도 지방보다는 다른 만주지역에서 훨씬 더 높았다. 이는 이주의 역사가 짧은 지역에서는 아직 정착의 기반을 제대로 마련할 수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대규모로 조선족의 귀환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신 중국 성립(1949년) 당시 연변의 조선족 비율은 63.4%로 압도적으로 지역의 성격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한족의 인구유입은 계속되는데 반해 조선족은 한국동란 기간에 북한 지역으로 인구가 유출되고, 조선으로부터의 유입이 단절되면서 한족이 인구 비율은 점점 높아지게 된다. 위와 같이 중국에 사는 조선민족은 이주, 재이주, 재재이주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그 중 연변의 조선민족은 대부분 함경도지방출신으로서 두만강을 거쳐 육로로 이주해왔으며 조선족은 대부분이 조선족마을에서 생활하며 이민족과 함께 사는 경우에도 조선족은 일반적으로 특정지역에 모여 산다. 연길시와 같은 도시에서도 한족과 조선족의 거주지역은 확연히 구분된다. 이러한 조선족의 집거 현상이 민족의 동질성을 유지시키고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조선민족주거의 특징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출발부터가 일본이나 미국의 동포와는 다르게 중국에 올 때부터 고향을 생각하고 고향으로 언젠가는 돌아갈 꿈을 꾸고 이주하였기에 민족의 동질성을 잃지 않고 언젠가는 돌아갈 고향을 생각하며 조선 말과 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먼저 조선결혼 문화 습관 등 모든 면에서 조선민족 특유의 전통과 문화를 간직하고있다. 그래서 지금도 민가 답사를 위해 산골이나 깊은 농촌에 가면 중국어를 못하는 조선족 할아버지 할머니를 흔히 만날 수 있다. 중국의 조선민족은 고향을 그리다가 사무친 그리고 일제의 압제에 항거하기 위하여 황량한 만주벌판에 서전서숙등 민족학교를 세우고 우리의 뿌리를 지키기 위해 고향으로 갈 준비만하다가 중국에 남을 수밖에 없게 된 아직도 호적상으로 한국인으로 남아있는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고 부모들인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으로 간 우리의 선조들은 그곳 나라에 적응하려고 부단히 애써 그곳에서 동화하고 정착에 성공했고 경제적으로 선진국이 되어 금의환양 하였으나 불행하게도 중국의 우리민족은 6.25민족내부전쟁과 외세의 앞력으로 그려진 38선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그 땅에 살 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가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장황한 조선족 이주사에 대한 설명은 출발부터 중국의 우리 동포는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한민족이지만 북한사람도 아니고 미국이나 일본사람도 아니다. 엄연히 한국 사람이듯이 조선족은 분명 한민족으로 조선민족이나 그들은 엄연한 중국인이다. 한민족이면 무조건 다 한국사람이 될 수는 없다. 한민족이면서 북한 사람도 되고 러시아(고려)인도 되고 중국(조선)인이 될 수 있다.  대게의 중국의 우리 동포는 민족관이 일반적으로 우리 한국인보다 투철하지만 국가관은 더욱더 투철하다. 우리는 대게 민족관이나 국가관이 투철하기는 하지만 국가와 민족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엄연히 국가와 민족은 다른 것이다. 그래서 정치 공동제를 꿈꾸기 보다는 민족 공동체로서 경제공동체를 생각하고 꿈꾸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고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간단히 한국인과 중국 조선족과의 차이를 보고 서로간에 잘 적응하고 화합하는 방법을 적어 보겠다. 중국 교포가 한국인 회사에 잘 적응하는 방법 비결 1. 사장이 되려는 각오를 가지라 성공할 수 있는 요소는 적지만 실패할 수 있는 요인은 너무나 많다. 성공의 길이 보이지만 실패를 막을 길은 너무도 많고 또한 전혀 예측하기도 힘들거나 그 길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실패 요인의 90 % 이상은 창업자 본인이 마음의 준비를 철저히 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다. 사장이 되려면 직원식 사고방식을 철저히 버려야 한다. 직원은 항상 자기가 회사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회사가 자기를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생각한다. 직원식 사고는 항상 자기의 노력보다 더 많은 대가를 기대한다. 그러나 사장은 이러한 기대를 가져서는 안 된다. 사장은 고정된 휴식 시간이 없고 어떠한 복지도 없다. 어떠한 직무나 업무의 한계도 없다. 사장이 되려면 우선 직원식 사고부터 바꿔야만 한다. 일단 직원들이 사장과 동거동락하고 생사를 같이 할 만큼 단결하도록 만든다면 당신은 어떤 사업을 해도 성공할 것이다. 비결 2. 자기를 버리고 모욕을 참아야 한다 중국은 땅도 넓고 민족도 많고 다양하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있다. 하지만 한국은 땅도 좁고 한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다. 사람마다 성격이 틀리고 일하는 방식이 달라 결과도 달라진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가지려면 주변과 충돌을 일으키지 말아야 하고 폭 넓게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기의 성질을 죽이고 자존심을 접을 줄 모르면 감정이 상한 고객이 왜곡된 사실을 사방에 퍼뜨려 당신의 활동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사업을 잘하려면 좋은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고들 하지만 좋은 사람은 만나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만나는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비결 3.   10분 일찍 출근해서 10분 늦게 퇴근하라. 할 수만 있다면 사장보다 일찍 출근해서 사장보다 늦게 퇴근하라. 아주 쉬운 일인데 막상 지키려 하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근무한 만큼 월급을 받는다 생각하기 보다는 월급 받는 것 이상으로 근무하려는 마음가짐이면 필연코 인정 받아 성공할 수밖에 없다. 너무 이해 타산적으로 행동하고 생각하면 소탐대실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결국 큰 것을 노칠 수 밖에 없다. 좀 손해 보는 듯 하더라도 크게 생각하면 별거 아니다. 10분 일찍 출근하는 것이 10분을 손해 보는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비결 4. 잘못을 속히 시인하라. 안 되는 이유는 많다. 그러나 되는 방법도 그 이상 더 많다. 사회주의에서 오래 생활하면 자기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습관이 생기게 된다. 잘못을 시인하면 벌을 받게 되지만 합당한 이유가 있으면 벌이 면제되기 때문에 항상 이유를 잘 대하는 문화인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문화는 겸양의 유교 문화라서 아무리 잘못해도 용서를 먼저 빌면 거의 용서가 되는 문화이다. 중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정말 이해되기 힘든 문화이다. 비결5. 시킨 일은 항상 복창하라. 상사의 말을 확인하고 되묻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만약에 한국인이 조선족이 아닌 외국인을 데리고 있으면 일을 시킬 때 충분히 설명하고 조금 잘못한 일이 있어도 잘 못 알아 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간다 혹 야단을 치더라도 그 외국인은 내가 외국인이니까 잘 못 알아 들었나 보다 하고 이해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중국 동포인 경우는 그와는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한국 사장이 시키면 금방 알아듣는 것 같아  ‘네’하고만 대답하고 일 했다가는 그 일을 그르치기 일 수다. 그래서 더 오해가 생기는데 한국인은 금방 알아 듣는다고 하고선 엉뚱하게 일 처리 했다고 야단치고 우리동포는 기껏 일 시켜서 그대로 했더니 나중에 딴소리를 하네 하고 더 화가 나게 마련이다 일이 이쯤 되면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출발한 일자리도 금방 팽개치게 될 수 밖에 없다, 시키면 첫번에 알아 들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시키는 일을 다시 한번 확인하여 복창(반복하여 되묻기)하면 그 시행착오를 훨씬 더 줄일 수 있다. 비결 6. 서로 말이 통한다고 의사소통이 된다고 믿지 마라 한국어와 중국에서 쓰는 조선어는 엄연히 다르다. 문화도 다르고 언어적 습관과 관습도 다르다. 그래서 같은 언어도 다른 의미로 쓰인다. 예를 들면 우리는 거래를 흥정하다가 거절하기 미안하면 ‘그럼 생각해서 다음에 다시 봅시다’ 라고 완곡하게 거절을 표시하고 만다. 하지만 중국의 우리동포가 이 말을 들으면 거절로 듣지 않고 ‘생각해서 다시 꼭 보자’는 긍정의 의미로 듣게 되어 있다. 결국 돌아간 한국 사람은 중국에 다시 오지 않고 중국의 우리동포는 다시 온다는 말만 믿고 이것저것 다 준비하고 기다리다가 전화도 받지 않고 안 오는 한국 사람을 거짓말하는 사기꾼으로 밖에 볼 수 없게 된다. 물론 한국 사람은 그때 분명이 거절했다고 생각하고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조선족 상대방이 이 돌아온다고 하여 내내 기다렸다고 하면 깜짝 놀랄 뿐이다. 의미를 완전히 알 수 있을 때까지 다시 물어보는 습관을 기르자. 비결7. 칭찬하지 않아도 실망하지 말라. 한국사람은 일반 적으로 칭찬에 인색하다. 대게는 마음은 그렇지 않으나 표현을 잘 못한다는 얘기다. 중국 동포도 이면에서는 거의 마찬가지기 때문에 칭찬이 없다고 반드시 잘 못한 것은 아니다. 아무 말이 없으면 그게 곧 칭찬이라 생각하면 된다. 침묵은 칭찬이다.,,^^; 비결8 참으라. 참을 인자 세 개면 무슨 일이고 한다고 했다. 참고 묵묵히 일하면 반드시 빛을 볼 날이 돌아 온다. 직원들은 자기가 사장이 안보는 데서 하는 일들은 사장이 잘 모르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대개의 사장들은 직원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기 때문이다. 비결 9. 먼저 선물하고 먼저 감사하라. 상대방이 손을 뻗기 전에 먼저 손을 내밀어 자기의 뜻을 전해야 한다. 먼저 양보하고 먼저 인사하면 마음의 문은 반드시 열리게 되어있다. 중국은 땅도 넓고 마음도 넓은 대국이 아니던가? 비결 10. 노력, 그리고 또 노력 성실 또 성실 일에 있어 가장 큰 정직은 성실에서 출발한다. 노력과 성실은 값을 매기기전에 먼저 드러난다. 너무 이해 타산에 급급하지 말고 성실과 근면으로 상대방을 감화 시켜야 한다. 작은 이익에 급급하지 말고 큰 이익을 바라보자. 바둑에서도 ‘소탐대실’하면 결코 승부에서는 이길 수 없다. 작은 것에 눈이 어두워 큰 것을 놓지는 우를 범하지 말자. 생소한 외지에 가서 일하게 되면 반드시 자기지방보다 생소한 습관, 더 많은 규제, 더 비싼 원가, 더 무거운 압력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대외관계도 당연이 남보다 떨어진다. 따라서 생소한 타국에 가서 일을 하려면 부단히 노력하고 또 노력하여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많은 어려움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다 보면 어느새 성공의 가도를 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 외의 다른 외국인에 비해 한민족으로 더 우호적이고 더 경쟁력이 있지 않은가? 한국인이 조선족과 잘 화합하여 일을 하려면... 어느 사업이나 성공한 뒤에는 그 원인이 있다. 외국의 기업들이 중국에 들어가면 외국기업이라는 것 만으로 불평등한 취급 받는 데다 자국과는 다른 사업 환경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중국인들끼리는 저렴하게 거래를 해도 외국인한테는 더 비싸야 된다는 사고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외국인은 자기들보다 돈도 많고 잘살기에 당연이 좀더 내야 자기네들 한테는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곳이다. 예를 들면 똑 같은 제품도 자국민들 보다 외국인이 가면 더 비싸게 팔고, 똑같이 일하는 노동자도 외국회사에 가면 돈을 더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인이 원가를 알고 있다 하더라도  현지인을 내 세우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 같은 제품을 가지고 내국인에게 받는 금액과 외국인에게 파는 금액이 달라야 상대적으로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말 우리생각 같으면 분통터지는 일이지만 중국에서 정가나 원가의 개념은 외국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대부분의 중국제품은 권장 소비자 가격이 표시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지역과 환경에 따라  같은 제품이라도 가격이 달라야 된다고 생각하지 같은 물건이면 같은 가격으로 생각하는 것을 더 이상스럽게 생각한다 비결 1. 중국 직원의 사고를 파악하라. 자기나라에서는 교육환경이나 생활 배경이 비슷하여 사장이 직원들의 생각을 비교적 쉽게 예측, 판단하고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각 지역마다 교육, 생활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사고 방식도 사람마다 크게 다르다. 따라서 사장은 직원들의 심리 파악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중국에서의 출신 지역의 상황은 외국으로 따지면 어느 국가의 출신의 사람을 선택하느냐 만큼에 버금가는 차이가 있다. 같은 중국인이지만 전혀 다른 나라사람처럼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중국의 발전하는 도시 대부분은 중국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기 때문에 저마다 차이가 심하다. 따라서 내 생각과 업무 스타일을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직원들의 사고 논리와 업무 능력을 충분히 이해하고 일을 시켜야 한다. 이렇게 하지 못하면 제풀에 지쳐 쓰러지고 말게 된다. 비결 2. 중국 직원을 앞세우라 예를 들면 중국 본토인들이 운영하는 점포도 많다. 그러나 본토인들도 외국인인 우리와  똑같은 직원관리 문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중국에서 사업하는 사장들은 이러한 직원관리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전 직원을 한 지역 사람들만 채용하는 방법을 쓰는 경우가 있다. 한 지역 사람들만 써서 내부의 분파 갈등을 없애고 단결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물론 직업의 성격상 가능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는 정말 어려운 얘기다 또는 중국 현지인을 이용하여 현지인을 관리하도록 한다. 현지인 중에서 설득력과 공신력이 우수한 사람을 골라 리더로 내세워 현지인들을 관리하도록 한다. 사장은 리더만 상대하면 되므로 불필요한 어려움 들을 피해 나갈 수 있다. 중국에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방식이다. 그러나 현지인에게 모든 것을 맡겨 현지인이 모든 것을 처리하면 결국 현지인의 회사가 되는 딜램마를 안고 있다. 따라서 현지인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항상 히든 카드로 가지고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비결 3. 우리 동포와 눈높이를 맞추라… 중국 동포는 우리 민족이나 결국은 중국인이다. 중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우리가 한국을 사랑하듯이 중국 국가를 사랑하는 애국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고향은 한국이 아니라 연변이고 흑룡강이고 심양이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어 생각한다면 그들은 분명 당신을 아버지처럼 따를 것이다. 그들은 아무리 한국이 좋다고 우리가 얘기해도 결국은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어있다. 우리가 고향을 좋아하고 그리는 것처럼 그즐도 그들의 고향을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것이다. 비결 4 중국의 문화를 이해하라. 중국인은 좋은 물건은 감춰두고 나쁜 물건을 전시한다. 단골손님이 오면 좋은 물건을 속에서 꺼내어 보여준다. 한국은 이와는 반대라고 할 수 있다. 좋은 물건만 보이고 나쁜 물건을 슬그머니 놓고 오기도 한다. 중국 상인들 중국에서는 정말 에누리 없는 장사는 없는 것 같다.  흥정을 좋아하고 흥정을 또한 즐긴다. 중국 문화를 이해하고 나아가서는 그것에 푹 빠져 즐기는 자세로 일한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리라 생각한다. 중국인들의 명함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거의 이력서를 방불케 할 만큼 명함의 내용이 복잡하다. 중국은 나라도 넓고 사람도 많기 때문에 서로를 알려면 그냥 이름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기에 명함으로 기본적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다. 한국은 명함이 복잡하면 그와는 반대로 이름만 요란하고 실속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경우와는 사뭇 다르다.  중국에서는 명함이 간단하면 그야말로 별로 하는 일없이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할 수 밖에 없다. 한국은 한두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중국은 여러 사람을 거쳐도 전혀 그 사람과 연결고리를 찾기가 쉽지않다. 그래서 물건을 사고 팔 때도 항상 오른손에 물건을 주면 왼손으로 돈을 직방 거래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중국은 어딜 가나 보증금 문화가 만연해있다. 호텔에 들더라도 하루방값만 가지고 있으면 하루를 잘 수 없다 최소한 이틀치를 보관(deposit)해야만 하루를 잘 수 잇다. 이는 문화가 그런 것이지 상대방을 믿고 못 믿고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한번 거래한 사람을 다시 안 보려 해도 또 만나게 되는 문화권이다. 워낙 바닥이 좁아 같은 분야면 언젠가 반드시 부딪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중국은 그와는 다르다. ‘저 친구와 평생 안보고 살꺼야!!’ 하고 그 자리를 뜨면 정말로 죽을 때 까지 그 친구와 안보고도 살 수 있는 나라이다. 우리 나라는 어디 그런가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나라이다. 비결 5. 너그러운 아량을 가져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고 했다. 아직 우리가 받는 처지가 아니고 주는 처지에 놓여 있음을 감사하자. 언젠가는 이전에 오랜 기간 그래왔듯이 중국에다 우리가 손 벌릴 때가 올 수도 있다. 있을 때 잘하라고 그러지 않았던가? 없는 사람 심정은 없어 봐야지 안다고 했다. 황량한 중국 땅에서 한족과 또 다른 여러 민족과 부대끼며 만주사변, 6.25, 문화혁명을 거치며 어렵게 살아온 그들을 형님이 아우를 대하듯 먼저 이해하자. 사실 조선족 중에서도 중국 사회에 잘 정착하고 중국의 지도자 급에 있는 조선족은 한국에 잘 오지 않는다. 사실 우리보다는 미국이나 유럽 일본 쪽이 훨씬 더 실속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 조선족의 10%정도만이 우리 한국 땅에 온다, 그들은 대개가 돈을 벌기 위해 중국에서는 평생 벌기 힘든 큰 돈을 빌려 청운의 꿈을 안고 우리 한국 땅에 찾아,온 어찌 보면 안쓰러운 우리의 자화상이고 형제고 이웃이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고, 미국이나 유럽에서 온 우리 동포를 대하듯 만 한다면 지금보다 문제는 반 이상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장에서 같이 부대끼다 보면 말처럼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가진 자가 스스로 넓은 마음으로 먼저 이해하고 손 내밀 때 비로소 갖지 않은 자도 나아올 여지가 생긴다. 비결 6 장기적으로 투자하라. 아무리 같은 민족이라 하더라도 중국의 우리 동포는 먼 이국 땅에서 살다 온 국적이 다른 엄연한 타국인이다. 쉽게 친해지거나 처음부터 깊이 마음이 열리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생각이다. 처음에는 말이 통하는 듯하나 대개가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차이를 느끼게 되는 것이 보통이고 당연한 거다. 국가와 이념이 다른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사실 같은 게 이상한 거다. 외국인을 대하듯 진솔하고 꾸준히 그들을 대한다면 그들은 반드시 같은 민족의 장점을 살려 낼 것이다, 필자가 아는 한국의 마이다스라는 기업도 장기적으로 조선족을 발굴하여 투자하고 그들을 한국 직원 이상으로 대하고 대우해준 결과 북경의 지사에서 첫해부터 높은 이윤을 남기는 쾌거를 이루고 있다. 충분히 오랜 기간 교육하고 배려해준 결과이다. 말이 통한다고 해서 적게 투자해서 빠른 기간에 많은 이득을 한꺼번에 이루려는 발상을 버리자. 비결 7 먼저 우리 동포를 돈 벌게 해주자. 그러면 자연히 돈을 벌게 해준 만큼 이상으로 되돌아 온다. 그들을 혹사시켜서 돈을 벌려고 하면 할수록 돈 버는 일과는 멀어진다. 그들이 먼저 돈을 벌지 않으면 내 주머니에도 돈이 쌓이지 않음을 명심하자. 비결 8 자존심을 심하게 상하게 하는 말을 삼가자. 우리 옛날 속담에도  ‘말 한마디로 천냥 빛을 갚는 다’고 하지 않았던가?. 북한 사람이나 한국에 온 중국 동포들이나 마지막 남은 거는 자존심이다. 우리 무심코 내 뱉은 말이 그들의 가슴에 비수로 꽂힌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들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은 정말로 가진 자 답지 못한 소인배적인 행동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들의 어려움과 시름을 씻은듯이 날려 보낼 것이다. 비결 9 그들의 강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 중국의 우리 동포는 다문화, 다언어권에 익숙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래서 대부분 기본적으로 중국어 와 한국어, 일본어등 2-3개 국어는 능통하다. 이 얼마나 고급 인력인가? 그리고 대부분 부지런 하고 총명하며 굳은 일도 묵묵히 처리해나가는 커다란 장점이 있다. 이러한 장점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면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은 당연하다. 비결 10. 왠만하면 용서하고 믿어주자. 우리가 다 장발짠의 너그러운 신부까지는 못되더라도 한국에 편법으로 머무르는 약점을 이용하는 밀고자는 되지 말자.  우리는 생활의 문제이지만 그들은 생존의 문제를 안고 한국에 왔다. 사실 필자 본인도 중국에 10년 넘게 있으면서도 이것들을 온전히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형님된 심정으로 그들을 너그러이 본다면 굳이 못할 일도 아니다. 이제부터는 심기 일전하여 위의 열 가지를 지켜보도록 다짐하자. 그러면 미래는 반드시 열려있다. 동북아 민족 공동체의 꿈은 여기서부터 시작하여 이루어 지는 것이다. 중국의 미래 그리고 한국 한국과 중국을 비교할 경우 재미있는 현상이 하나 있다. 중국인들은 한국인을 볼 때 똑똑하고 부지런하고, 좋은 환경에 살고 있다고 평가하고 우호적으로 본다. 그렇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실상 나라로도 안 친다. "왁" 하고 기침만 하면 없어질 나라로 본다. 하지만 한국이 중국을 보는 시각은 반대다. 중국인은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이고 사기 치고 어쩌고저쩌고 얘기를 한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이 훨씬 실제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거다. 한국에 가면 중국에 다녀온 사람들이 중국에 대한 자기 인상을 한마디씩 던지며 확인을 구하는 사람들을 대한다. ‘중국 사람들은 지저분하지 않느냐’ ‘중국에서는 한국 돈이 통하더라’ ‘중국제 물건은 싸기만 하고 쓸만한 게 없더라’ 등이 한국인들로부터 자주 듣는 ‘중국 인상’이다. 이런 얘기를 듣다 보면 그 저변에 깔린 우리의 ‘국민소득(GNP) 차별주의’(1인당 소득이 낮은 나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우월감)를 엿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저개발 지역이나 관광지의 저소득층 중국인들을 만나보곤 중국인 전체가 지저분하다고 평한다거나 한국인들이 대부분인 관광지의 중국 상인이 한국 돈을 받는 것을 보고 중국에서는 한국 돈이 통용된다고 지레짐작하는 태도 속에는 중국에 대한 우월감이 숨어 있다. 상해나 심천등 발달한 남방의 도시를 보라 이미 그들은 우리를 앞질러 있다. 예를 하나 들자면 중국은 비디오 문화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사느냐? 그들은 CD밖에 없다. DVD나 VCD 등. 비디오 테이프 문화가 들어가기 전에 CD가 들어간다. 비디오는 CD에 비하면 아주 불편하다고 할 수 있다. 조작도 불편하고 들고 다니기 무겁고. 비디오 쓰는 사람이 없고, 시장 자체가 없다. 경제가 발전하면 따라간다고 하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다. 달리는 열차에 올라타는 것과 같다. 그만큼 빠르다. CD 문화도 그렇듯 휴대폰 문화도 마찬가지다. 우리 나라 휴대폰이 500만 대 할 때 중국은 100만 대밖에 안 되었다. 우리가 1,000만 대 할 때 200만 대, 2,000만 대 할 때도 500만 대였다. 그런데 우리가 3,000만 대일 때 그들이 1억 5천 만 대를 돌파했고, 우리가 3천5백 만 대 할 때 중국은 2억 대에 이르렀다. 그리고 중국의 시골엔 유선 전화기가 없다. 휴대폰밖에 안 쓰니까. 그들은 우리보다 인공위성을 훨씬 많이 쓴다. 중국은 청나라 말기부터 근세까지 약 150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세계 경제대국의 자리를 지켜 온 나라다. 13억 인구의 중국은 최근 10여년 사이 옛날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듯 고속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중국이 저임금 노동력을 이용해 싸구려 제품만 생산하는 줄로 인식하고 있지만 이미 중국 기업들은 자체 브랜드로 미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머지않아 저가 브랜드뿐 아니라 고급 브랜드로도 한국 시장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기술력이 우리보다 한참 뒤진다고 생각했던 중국이 얼마 전 자체 기술로 개발한 유인 우주선을 띄우는 것은 이제 놀랄 일이 아니다. 우리는 과거 중국을 우러러봤으나 지금은 무시한다. 이제 그들이 강대국이 되면 또다시 눈치를 보는 악순환을 계속할 것인가.? 중국 성장의 잠재력은 가히 가공할 만하다. 가장 경쟁력이 있다는 것은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것이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보다 경쟁력이 없어야 하는데, 경쟁력이 없는 부분에서는 자본주의를 다 도입한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래도 하드웨어가 먼저 구축되어야 한다. 하드웨어를 구축하는 가장 기본적인 게 건물과 땅이다. 우리 나라는 도로를 내려면 땅을 매입해서 길을 내는데, 땅 매입비가 90퍼센트고 공사비는 고작 10퍼센트다. 그러나 중국은 거꾸로다. 땅 매입비가 10퍼센트고, 공사비가 90퍼센트다. 그러니까 중국은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우리보다 10분의 1밖에 안 들어간다. 그나마도 우리 나라는 데모하고, 땅 안 팔고 그러는데, 중국은 땅이 모두 국가 소유다. 그럴 문제가 없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다. LG 같은 경우도 중국에서 공장을 하고 있지만, 중국인들은 LG를 한국 제품이 아닌, 중국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중국 사람이, 중국 땅에서, 중국 재료를 가지고, 중국 자본으로 생산하는데, 그게 중국 제품이지 한국 제품이겠는가. LG의 자본 비율도 중국이 50퍼센트 넘게 차지하고 있다. "메이드 인 차이나"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한다. 우리 나라에 들어오는 "메이든 인 차이나"가 나쁘다고들 얘기하는데, 싼 거니까 그렇게 얘기할 수 있지 않는가. 싼 거는 상품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중국에서는 싼 것도 상품 가치가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싼 걸 쓰지 비싼 걸 쓰겠는가. 맺는 말 중국과 한국은 지정학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이다. 중국은 큰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우리가 경제적으로 조금 더 잘 산다고 우리가 우월하다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나와 상대의 진면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려는 태도요,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남의 것을 존중하려는 자세다. 중국과 중국 동포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꾸 우리 잣대로 중국을 보려는 습관은 빨리 버려야 한다. 우리 자 가지고는 중국을 잴 수가 없다. 중국의 자 혹은 일반적인 자로 봐야 하는데, 한국 사람들이 항상 바깥을 볼 때 우리의 잣대로만 본다. 중국은 그렇게 보면 안 된다. 꽃게에 납이 들어갔다, 중국인은 목욕도 안 한다더라 하는 것은 중국을 전혀 모르는 시각이다. 우리 나라도 외제차를 두 대 정도 가지면 부자라고 하는데, 약 2∼3퍼센트 정도 된다고 본다. 중국도 그런 사람들이 많지는 않은데, 3퍼센트 정도 된다고 한다. 4,500만 명이다. 우리 나라 인구보다 많은 사람이 부를 독점하고 있다. 중국의 인구에 대해, 땅에 대해 시각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중국 사람과 교류하면서 이상하게 생각을 하기 때문에 실속이 없다. 중국 사람 중에서도 깨끗하고, 합리적이고, 명석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다. 중국에 있는 조선족도 한국에 있는 조선족과는 달리 중국을 이끌어가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과 중국에서 온 우리 동포들에 대한 애정을 새롭게 하여 그들과 교류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하기를 기대한다. China-corean.com은 이러한 일을 솔선해서 하는 단체이고 연변의 두레마을이나 연변과학기술대학 그리고 많은 해외 동포들을 위한 단체들이 그 일을 해나가고 있다. 우리 모두 그들의 일에 동참하기를 기대한다.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중국에 1주일 왔다가 간 한국인은 중국 박사, 1년을 산 사람은 중국 석사, 2년을 산 사람은 중국 학사라는 말이 있다. 짧은 중국 방문을 통해 얻은 단편적인 지식으로 중국에 대해 통달했다는 식의 분석을 쏟아내는 한국 사람이 많아지면서 생겨난 말이다. 백두산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와서 기분으로 하는 이런 피상적인 분석과 ‘우물 안 개구리’ 식의 평가가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내 것에 대해 똑바로 알고 남의 것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으로 그들을 알아가야만 세계무대에서 우리가 무시당하지 않고 존중 받을 수 있다. 우리 대한민국에 대한 사랑이 중국동포나 다른 외국 노동자들의 나라와 그 문화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질 때, 비로서 그들도 우리를 존중하고 우리와 함께 지구촌을 더 복된 삶의 터전으로 만드는데 서로가 힘을 합할 것이다.(북경공업대학 건축과 교수) ....................................................................... 김준봉박사님의 까페 cafe.daum.net/urbanandliving    218.27.♡.4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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