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둥이 낳은 황선 “애낳은 것도 빨갱이 되더라”
“일부러 만삭으로 북한에 가 애를 낳은 것이 아니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인간의 탄생과 생명까지도 왜곡된 시선을 보는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낙관적으로 보이겠습니까.”
철책선 너머 평양에서 남한 국적을 가진 ‘통일둥이’를 낳았지만 수배 중인 남편에게 아기의 얼굴조차 보여 줄 수 없는 황 선씨. 통일운동에 뛰어 든 부부의 아이러니한 삶은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남측의 단면을 보여준다.
만삭의 몸으로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러 방북했다가 지난 10일 평양에서 둘째 아이를 낳은 황 씨는 25일 남북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당당하게 판문점을 통해 입국했다.
황 씨는 28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통일운동에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고 말문을 연 후 “평양을 다녀오면서 길지 않은 내 운동 경력을 돌아보며 통일이 급진전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소회를 밝혔다.
통일연대 대변인으로 활동 중인 그는 1998년 한총련 대표로 방북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감생활을 했다. 지난 해 2월 결혼한 남편 윤기진씨는 97년 한총련 의장 당시 지명수배 된 이래 현재 범청학련 남측본부 의장으로 활동하면서도 수배생활을 하고 있다.
3대를 갈라 놓은 국보법, 수배중인 남편 아기 얼굴도 못봐
“서울·평양의 아이, 남북을 이은 자식인데도 정작 아빠의 얼굴도 못 보고 음성도 듣지 못했습니다. 큰 딸 이름이 ‘민’인데 둘째에겐 통일의 뜻이 담긴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요.”
당장 남편과 상의해서 아기의 이름을 짓고 싶지만 이들 부부에게 허락된 시간은 10분이 전부였다. 황 씨는 “돌아와서 남편을 잠깐 봤다. 딸의 얼굴도 보지 못한 그에게 이름을 짓자는 말을 하기엔 10분은 너무 짧았고 안부를 확인하기에도 부족했다”며 잠시 말을 잇지 않았다.
이처럼 안타까운 순간이 일상이 돼버린 황 씨이기에 시부모, 남편, 아이에 이르기까지 3대째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든 국보법이 뼈 속까지 사무친다.
황 씨는 본보에 ‘통일전쟁’ 칼럼을 기고한 강정구 교수를 거론, “평양에 올라가기 전 소환여부가 논란이었는데 검찰총장이 사퇴하는 등 최근 정국의 핵이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며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한나라당이 초보적인 자유조차 보장하지 않는 이 법을 유지하기 위해서 꼬투리를 만드는 데 급급한 것이 현실이다”고 말했다.
답답한 현실이지만 그럴수록 그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출산 예정일을 일주일을 남겨 둔 만삭의 몸으로 방북한 것은 시부모와 함께 ‘아리랑’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시부모님의 명단을 올린 후 나중에 결심을 하고 따라 나선 것입니다. 아리랑을 보면 통일에 대한 낙관이 생긴다고 들었거든요. 시부모가 직접 북에 가서 공연을 보면 통일 운동을 하고 있는 남편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황 씨는 “남편의 부재 아닌 부재로 인한 가족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며 “의사가 일주일 여유가 있다고 해 출발하기 이틀 전에 결정했다. 사람들이 농담처럼 “갔다가 진통하면 어떻게 해?”라고 물으면 “낳으면 되지”라고 말했다”고 방북 전 심경을 전했다.
생사를 넘나 든 출산, 북-극진한 관심, 남-환영 속 가슴아픈 왜곡도
황 씨가 평양에서 아기를 낳은 것은 지난 10일. 그는 아리랑 공연 관람 도중 진통이 와 ‘평양산원’으로 옮겨졌으나 10~20분만 늦었더라도 산모와 아이가 위험했던 급박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어려운 수술을 거쳐 무사히 아이를 출산한 황 씨에 대해 븍측은 당초 1박 2일인 관광 일정을 2주간 더 연장해 주면서 산후 조리에 각별한 신경을 썼다.
황 씨는 “돌아와 가족들에게 들으니 ‘북에서 낳았으니 거기서 살지 그랬느냐’ ‘일부러 만삭에 북으로 간 것 아니냐’는 비난이 있었다고 한다”며 “누가 뭐라해도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 상황에서 나와 아이의 목숨을 살려 준 북측 사람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왜곡된 시선에 대해 “인간의 생명과 탄생을 의도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출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일 것”이라며 “이마저도 비틀어 보는 그들에 대해 ‘인간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착잡한 심정을 밝혔다.
그렇게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어떤 통일을 낙관적으로 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 황 씨는 “북측에선 아기가 아리랑 공연 중 태어나 ‘윤아리’라는 이름이 지어졌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고 짧은 말로 긴 여운을 남겼다.
아기가 평양 고향도 가고 아빠와 함께 있는 세상오길
“빨리 통일이 돼야죠. 우리 애가 서울·평양 아기인데 고향에 자주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평양산원에도 아이를 가족처럼 돌봐준 분들이 많은데 자주 인사드리고 인연을 맺을 수 있게 남북의 문이 활짝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애 아빠도 함께 있었으면….”
황 씨의 소망은 소박하면서도 크다. 그의 간절한 소망은 이어졌다. 북측엔 직장마다 탁아소와 수유실이 있어 엄마들의 손 소독부터 수유시간까지 관리해 준다고 전한 그는 “최대한 모유 수유가 보장된다. 출산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선 이런 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황 씨는 “남북한 제도적 차이를 말한 것”이라며 “한나라당은 또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비난할 지 모르겠다”고 한 마디 덧붙였다.
신아령 (ararshin@dailyseop.com)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