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그럴듯 하게 말하는데 그것은 님들의 편의에 따라서 역사를 재구성하였을뿐이죠.
역사란것은 워낙 소멸되고 남겨진 것이니깐. 그것을 재구성하여야 스토리가 형성되고 일관된 논리가 형성되고 그럼으로써 엄밀학으로써 역사학이 성립되죠.
요는 그 꼴라주화로 남은 역사사실을 어떻게 꿔맞추는가가 문제겠죠.
그 꿰 맞추는 과정에서 역사가와 시대징후가 반영되겠죠.
님들의 역사사실을 말하는 가운데서 공자르 왜곡하듯이 말입니다.
공자는 은나라 전통을 지극히 싫어하였죠, 요는 은나라는 주신형이란 이유때문이죠.
주신형이란 비이성주의란 이야기죠.
공자는 "주공제악" 을 계승함을 자부로 여기었고 이성을 중시하였죠.
극기복례가 의미하는 바가 그것이죠.
공자는 비주신형, 즉 이성중심을 추구하였죠.
공자를 기점으로하여 중국은 문명사회에 진입하였다고 하죠. 즉 귀신이나 잡신에게 제를 올리던 방식이 인간의 조상제로 바꾸기 시작하였죠. 공자는 주나라의 주공이 편찬한 주나라의 전통을 지극히 따랐고 은나라의 전통을 비하하였고 버리였죠. 아울러 중국은 주나라 전통에 기원을 두고 있죠.
한민족은 정이 많고 먹고 놀기 좋아하는 쾌락형민족이죠.또한 토템문화가 굉장히 발달한 민족이죠.
아마 은나라의 어느종족하고 밀접한 연계가 있지 않았나 싶네요.
그리고 동이고 어찌고 하는데
공자시대는 장강이북과 장강이남으로 동과 북을 나누었죠.
그때는 모두 도보로 이동하였기에 님들처럼 생각하는 것처럼 한 종족의 활동반경을 그렇게 넓지 않답니다. 공자가 동이를 이야기하는 것은 님들이 생각하는 곳을 지칭하는게 아니죠.
한민족은 역사의 근원을 논함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너무 자기합리화하죠.
중국에서 수입한 문화는 최소한, 극 최소화시키고
일본에 수출한 문화는 최대한, 극최대화시키죠.
공자는 엄밀히 중국인이고 한민족은 그 시대에 아무런 현자도 출현시키지 못했죠.
사실은 어디까지 사실임을 인정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