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충격입니다
[퍼온글]
제목
이게 사실이면 충격입니다
이런 것도 조사를 해야하는데...!
...김기삼, “DJ비자금은 6천억~1조원”...
이라니 어마어마하군요.
한국 정치역사상 최대 비자금 같습니다.
조사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슨상님 신도들
전직 대통령들 항상 비난 하던데
특히 박정희 대통령 비난 많이 하던데...!
김대중 슨상님 대통령은 비난도 않돼고
조사도 않돼고 ..과연 신의 반열에 들어서긴 선건가~!?
한국에서 생전에 자기 이름으로 뭐한 인물...
이승만...김대중....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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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불법도청폭로 김기삼이 밝히는 DJ의 노벨상공작
작성자 cenws2008 (작성자의 다른글) 조회수 19 추천수 0 입력시간 2005.11.08 2:40
불법도청폭로 김기삼이 밝히는 DJ의 노벨상공작
뉴스제목: ‘도청 테이프’ 불똥 DJ정부로 번지나
국민 여러분께 드립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 가면 뒤에 가려진 김대중 정권의 잔악(醜惡)하고 위선(僞善)적인 본모습을 국민 여러분들에게 알리고자 합니다.
지난 5년간, 김대중 정권이 민족(民族)과 역사(歷史) 앞에 저지른, 지울 수 없는 범죄행위(犯罪行爲)를 저의 양심을 걸고 여러분에게 밝힙니다.
김대중이 '그토록 어처구니없는 대북 정책을, 그토록 오랜 동안 일관되게 잘못 추진한' 근본 이유는
노벨상에 대한 지독한 노욕(老慾) 때문이었습니다.
김대중은 노벨상을 수상할 목적으로, 국가정보원을 동원하여 해외 공작을 진행하는 한편,
북한의 김정일에게는 약 2조원에 달하는 뇌물을 제공하였습니다.
먼저, 김대중 정권이 국정원을 동원하여 벌인 노벨상 공작에 대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김대중의 노벨상에 대한 병적인 집착은, 지난번 최규선 게이트의 녹취록과 노벨상 공작 보고서에 잘 나타나 있는 바와 같습니다.
최규선이 공개한 '블루카펫 프로젝트'의 내용을 분석해 보면,
그 보고서가 실지로 거의 그대로 실행된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규선과 김대중의 노벨상 공작을 전담한 김한X이라는 인물은
둘 다 유종근 전 지사와 가까운 사이로, 이미 이전에 함께 이 일을 추진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대중의 노골적인 노벨상 욕심은, 그의 첫 인사에서도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1998년 2월, 김대중은 초대 의전비서관으로 권영민 주 노르웨이 대사를 내정했다가, 일주일만에 교체하는 해프닝을 벌였습니다.
김대중은 노벨상을 겨냥하고 권영민 대사를 의전수석에 내정했으나,
그가 대사 재임중 DJ의 노벨상 수상을 방해한 사실이 확인되자 곧바로 낙마시킨 것입니다.
국정원이 노벨 평화상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꽤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국정원 해외조사국(1국) 동구과 북구팀의 주 임무는 노벨상에 관한 업무입니다.
문민정부 시절에도 YS의 노벨상 수상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지만,
수상 가능성이 낮았기 때문에 DJ의 수상 저지에 주력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의 초대 국정원장이었던 이종찬씨는, 부임 초부터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 공작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지난번 일요신문에 밝힌 바와 같이,
이 원장은 YS 정권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활동했던 최종X 말레이시아 공사를 소환, 조사하였습니다.
최종X 공사는 지난 1995년, 노벨상 활동을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최모 주 노르웨이 대사를 소환 조치하기까지 했었던 인물입니다.
이 일로 인해 한국과 노르웨이는 한때 불편한 외교관계를 가지기도 했었습니다.
1998년 8월, 이종찬 원장은 비서실 산하에 대외협력보좌관이라는 부서를 신설하고,
김대중의 공보비서 출신인 김한X이라는 인물을 특별 채용하였습니다.
김한X은 이 원장에게 직보(直報)하면서 비밀리에 여러 가지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지난번 최규선 게이트에서 마이클 잭슨 공연 유치와 관련하여
국정원의 K박사로 거론되었던 자가 바로 김한X입니다.
그는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초청, 휴전선에서 평화의 음악회 개최를 추진했는가 하면,
마이클 잭슨의 서울 공연에도 깊이 관여하였습니다.
또한 김대중의 햇볕정책과 민주 투사로서의 인생역정, 외환위기 극복 등을 홍보하기 위해
여러 책자를 발간하고 국제적인 세미나를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스웨덴과 노르웨이 현지에서는
김대중의 인생역정을 미화(美化)한 김대중 전기(傳記)를 공금을 들여 북구어로 번역해 발간하기도 하였습니다.
국정원의 스웨덴 파견관 이병X(정규 11기) 참사는,
1999년 초 계급정년으로 옷을 벗게 되자 이러한 비리를 폭로하겠다며 소란을 부린 적도 있습니다.
그는 또한 김대중의 국제적인 신인도를 높이기 위해 넬슨 만델라를 방한 초청하려 했으나,
만델라가 거액을 요구하는 바람에 불발로 그치기도 했습니다.
그는 1999년 초, 북구와 유럽에 출장을 갔다오기도 하는 등 정열적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나, 국정원에서의 그의 활동은 오래가지 못하고 중단되었습니다.
1999년 5월 말, 이종찬 원장이 갑자기 옷을 벗었기 때문입니다.
후임 천용택 원장은 어떤 연유인지, 김한X의 노벨상 공작 활동에 거부감을 표시하면서,
부임 일주일만에 김한X을 퇴사시켰습니다.
아태민주지도자회의(FDL)로 돌아간 김한X은 사업을 계속 진행한 결과,
1999년 7월, 김대중에게 필라델피아 자유의 메달을 안겼습니다.
그리고 약 5개월 후, 김한X은 1999년 12월, 청와대 제1부속실장으로 파격적으로 영전되어
현재까지 김대중을 최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김한정이란 인물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는 김대중의 최측근 심복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KINDS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하여, 몇 가지를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일보 2002년 8. 26일 기사에 의하면,
김한X은 김홍업에게 면회를 가서 필요한 물품을 전달해 준다고 합니다.
한국일보 2002. 2. 25자 기사에 의하면,
김한X은 한화갑 고문에게 전화를 걸어 박지원 특보의 재기용에 대해 설명했다고 합니다.
중앙일보 2002. 1. 25자 기사에 의하면, 김한X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자유롭게 의사를 개진하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월간중앙 2000. 3월호 기사에 의하면, 박지원씨가 박선숙 공보비서와 함께, 김한X을 가장 아낀다고 합니다.
이희호는 김한X을 가르켜 "내 배에서 안 나았지만, 내 아들"이라고 말할 정도로 각별한 신임을 표시한다고 합니다.
김한X은 경남 마산(창원)출신으로, 서울의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2년 서울대 국제경제학과에 입학하였습니다.
대학 재학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적이 있으며, 1980년대 후반부터 1992년 대선까지 김대중의 공보비서로 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계속해서, 2000년도에 김한X이 청와대 제1부속실장으로 재임하면서
벌인 노벨상 공작의 주요 내용을 설명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김한정은 박경태 주 노르웨이 대사, 김남X 주 노르웨이 국정원 파견관,
그리고 국정원 1국 동구과 북구팀 박노X 팀장에게 직접 지시하면서 일을 진행하였습니다.
김한정은 이 공작의 일환으로 노벨위 부위원장이자 5인 심사위원회의 일원인
노르웨이의 스톨셋 주교를 비밀리에 방한 초청하기도 하였습니다.
스톨셋 주교는 김대중의 노벨상 시상식에서 안내를 맡은 사람입니다.
또한 김한X은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동티모르의 라모스 호르타 주교에게 거액을 제공하고
김대중의 노벨상 추천장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라모스 호르타 주교는 김대중의 노벨상 시상식에 초대된 사람입니다.
김대중이 그동안 동티모르에 경제적인 지원과 더불어 상록수 부대를 파견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표시한 연유도
노벨상을 받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한 것입니다.
한편, 김한X은 노르웨이와 남아공에 해외 홍보관을 신설, 파견하여 현지에서 해외홍보 주력하기도 했습니다.
노르웨이에 홍보관을 파견한 이유는 불문가지(不問可知)일터이지만,
남아공에 홍보관을 신설한 이유는 만델라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난 5년간, 이 정권이 "홍보공화국"이라고 비아냥을 받을 정도로 해외 홍보에 치중한 이유도 바로 노벨상 때문인 것입니다.
지난 2000년 8월, 김한X은
노벨상 결정에 막후 영향력이 있는 보네비크 노르웨이 전 총리와 저명 음악인 등 3명을 극비리에 방한 초청하였습니다.
이들 노르웨이 총리 일행은 국정원 담당 직원에 의해, 비밀리에 제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장으로 안내되었습니다.
그들은 감격적인 남북 이산가족 상봉장면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 목격하고,
김대중을 예방한 후 노르웨이로 돌아갔습니다.
이들이 돌아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노르웨이의 인권상인 라프토상 수상 결정이 났고,
이어서 노벨상 수상 결정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보네비크 전 총리는 지난 2002년 1월, 두 번째로 노르웨이 총리가 된 후,
또 다시 방한하여 김대중의 극진한 환대를 받은 바 있습니다.
김한정의 이러한 공작활동을 보조한 자로 조준X란 인물도 소개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전 헌법재판관 조승형의 조카로,
김한X과 같은 시기에 이종찬 원장에 의해 특별 채용되어 대외협력보좌관실에서 함께 근무했습니다.
그는 김한X의 노벨상 공작을 보조하다,
2000년 8월 국정원을 퇴사하였으며, 현재는 아시아나 항공사에서 부기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2001년까지 김한X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청와대를 자주 사칭하다가 경찰청 조사과(사직동팀)의 내사를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국정원에서 노벨상 공작은 흔히 "S"공작으로 일컬어졌는데,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동구과 박노X 팀장과 김남X 노르웨이 파견관이 실무를 맡았습니다.
이러한 공작은 해외조사국(1국)의 최조X 국장(정규 6기, 외대)과, 이영X 국장(정규 9기, 육사 26기) 재임 기간 중에 주로 이루어 졌습니다.
공작을 지휘했던 최조X 국장과 이영X 국장은
그 후 각각 주 쿠웨이트 대사와 핀란드 대사로 영전되어 나갔습니다.
이영X 대사는 2001년 4월, 1국장에 부임한 지 8개월만에 해임되었기에,
특히 입을 막아야 할 필요가 더 컸을 지도 모릅니다.
참고로, YS 정권에서 안기부 출신이 대사로 영전되어 나간 것은
이병X 차장이 전 말레이시아 대사로 나간 것이 유일한 예입니다.
박노X 팀장(정규 17기)은 그 후 선배들을 제치고
선두주자로 동구과장으로 승진하였고, 현재는 서구과장으로 재임하고 있습니다.
지난 1998년, 김한X은 미국 뉴저지주의 럿거스 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하고
귀국할 당시 전세집도 구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래서,
이종찬 원장은 그를 국정원의 安家 아파트에서 살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너무나 이례적인 특별한 대우였습니다.
지금 김한X은 집을 몇 채나 장만했을 뿐만 아니라,
100억대 이상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청와대의 모든 돈줄을 그가 쥐고 있다고도 합니다.
이어서 김대중이 노벨상을 수상할 목적으로 저지른 민족에 대한 반역 행위를 계속 설명 드리겠습니다.
(이하의 내용은, 제가 신뢰할 수 있는 출처로부터 얻은 정보에 근거한 것이지만,
사실 여부를 모두 검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먼저 밝혀 둡니다.)
지난 1999년, 외환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한 김대중은 자신의 업적과 경륜을 해외에 적극 홍보하면서
노벨상 수상 분위기 조성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1999년 7월, 김대중은 수상자 11명 가운데 6명이 노벨상을 수상한 것으로 알려진
필라델피아 자유의 메달을 손에 넣으면서 본격적으로 노벨상 사냥에 나섰습니다.
김대중은 이제 남북관계에 어떤 획기적인 돌파구만 마련할 수 있다면,
노벨상을 목에 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입니다.
김대중과 김정일간의 은밀한 뇌물 뒷거래는 이러한 배경 아래 이루어 졌습니다.
지난 1999년 말, 온 세상이 새 천년의 기대에 한창 들떠 있을 즈음,
김대중과 김정일은 극비리에 뇌물 뒷거래 협상을 마무리지었습니다.
김대중이 북한에 제공하기로 한 뒷돈의 규모는 미화(美貨)로 15억 불입니다.
인류가 뇌물이라는 개념을 발견한 이후 최고의 뇌물 액수이자,
앞으로 영원히 깨어지지 않을 기록일 것입니다.
현대에서 이 뒷돈을 대었습니다.
지난 번 한나라당 엄호성 의원이 제기한 현대상선의 4,000억 원은 이 돈의 일부분일 것입니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현대상선 대출금 일부가 정상회담 선금(先金)으로 건너갔고,
대부분의 뇌물 잔금은 2000년 9월에서 12월 사이에 전달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난 2000년 3월과 6월에 벌어졌던 현대의 왕자의 난은,
정주영이 이 돈을 대기 위해 그룹 전체의 지배권을 장악하려는 시도였을 것입니다.
이 돈은 1,000만원권 수표 형태로 국정원에 넘겨졌고,
국정원은 주로 외교행낭을 이용하여 독일·프랑스 등 6개 지부를 통해 이돈을 해외로 빼돌렸습니다.
행낭의 책임자는 처음에는 최조X 1국장이었다가,
2000년 9월경부터는 박경X 단장으로 바뀌었고,
실무자는 고강X 사무관이었습니다.
박경X 단장(11기, 목포 문태고)은
2001년 4월, 이 정권에서 최단기간 내에 국장으로 승진하여 주위를 놀라게 했던 인물입니다.
박지원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알려져 있는 그는,
국장이 된지 2년이 다 되가는 지금도 승진필요 최소 연한을 채우지 못해 2급으로 있다고 합니다.
박국장의 이례적인 승진은 당시 시사저널에 기사화 되기도 했습니다.
고강X 사무관(목포 문태고)도 그 후 팀장으로 승진하였습니다.
행낭 담당자가 승진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해외로 빠져나간 이 돈은 현지에서 주로 유로화로 환전되어 북쪽으로 전달되고,
이 수표는 다시 국내로 반입되어 국내에서 현금화되었다고 합니다.
해외에서 유로화로 환전하는 일과, 수표를 재반입하는 작업에는
우리나라의 유로화 책임자가 관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 유로화 책임자는 한국계 유럽(프랑스 ?) 국적을 가진 40대의 여인으로,
하이얏트 호텔에서 장기 투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김대중, 정주영, 김정일이 직접 관여했을 것이며,
이들은 각각 김한정, 김정남, 정몽헌을 대리인으로 내세웠을 것입니다.
박지원, 임동원, 이기호 등 지금까지 김대중 옆을 지키고 있는 인사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이 일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청와대를 떠났다가도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김대중은 대북 커넥션에 관련이 있는 인사는 배신하지 못하도록 끝까지 그의 주위에 묶어두고 있는 것입니다.
김대중의 분신(分身)인 김한X 제1부속실장과 김정일의 아들인 김정남은
이 일을 협의하기 위해 일본 등지에서 여러 차례 극비 접촉을 하였을 것입니다.
김한X과 김정남은 2000년 4월 10일 경, 남북정상회담 발표를 전후하여
일본에서 만나 남북 뒷거래 협상을 최종 마무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이들은 2000년 10월과 12월, 노벨상 수상을 전후하여 일본에서 만나,
노벨상 단독 수상 문제 등을 협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난 2001년 5월 초, 김정남이 일본에 밀입국하다 체포되었을 당시에도,
김한X과 김정남은 일본에서 접촉하기로 약속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2000년 들어, 김대중과 김정일은 뒷돈 거래 협상을 대충 일단락 지으면서,
각본대로 본격적인 국내외 분위기 조성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김대중은 1999년 12월 말, 부임한 지 6개월 밖에 안된 천용택을 경질하고,
임동원을 국정원장 자리에 앉혔습니다.
여담입니다만, 당시 천용택은 자기 부인(김아미)이 옷로비 사건에 연루된 것을 무마시키려고
검찰 출입기자 몇 명을 국정원에 초대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는 DJ의 대선자금 등 민감한 정보를 누설하는 촌극을 벌인 데다,
DJ를 "김대중이가..."라고 부른 게 일주일 후에 밝혀져 불경죄(不敬罪)로 잘린 것입니다.
천용택은 제가 겪어 본 국정원장 중 가장 자질이 저열한 자였습니다.
그는 김대업 의인(義人)(?)에게 5억 원을 주고 매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0년 1월, 김대중은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하고,
총선 후 제1당이 되고 나면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하겠다고 처음으로 운을 떼었습니다.
2000년 2월, 김대중은 일본 도쿄방송(TBS)과의 특별 인터뷰에서
김정일을 "식견(識見) 있는 지도자"라고 치켜세워 세상을 어리둥절하게 했습니다.
2000년 3월, 독일 방문한 자리에서는
대규모의 대북 경제지원을 주 내용으로 하는 충격적인 '베를린 선언'을 발표하였습니다.
당시 이러한 발표는 미국과 사전교감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클린턴 대통령과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결렬한 분노를 샀었습니다.
이러한 국·내외 분위기 조성 작업과 함께,
김대중과 김정일은 2000년 1월부터 중국 등지에서 남·북간 비밀회담을 추진하였습니다.
남쪽에서는 임동원 국정원장이 회담을 주도했고,
김보X 전략국장이 실무를 맡았으며, 서X 경협1과장이 심부름을 하였습니다.
김보X 전략국장과 서X 과장은 남북정상회담 후,
각각 신설된 3차장과 남북회담조정관(이사관)으로 승진하여 지금도 현직에 있습니다.
북쪽에서는 김용순 대남비서가 주도하고,
임동옥(춘길) 아태 제1부위원장이 실무를 맡고, 권민(호웅) 참사가 심부름을 하였습니다.
남북은 각각 박지원과 송호경을 얼굴마담으로 기용하였습니다.
지난 2000년 4·13 총선 직전, 김대중은 극적으로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발표했습니다.
당초 남북은 일요일 오후에 발표하기로 합의하였으나,
김대중은 홍보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월요일 아침으로 발표시점을 늦추기도 했습니다.
김대중 정권이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한 의도는 자명합니다.
단기적으로는 4·13 총선에서 민주당을 제 1당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고,
중기적으로는 노벨 평화상을 겨냥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보다 장기적으로는 대북 관계 개선을 지렛대로 삼아 호남당의 한계를 탈피하고,
궁극적으로는 정계개편을 획책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단기와 장기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노벨 평화상을 받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회칠한 가면 뒤에 숨겨진,
인자한 김대중의 악마적인 모습에 대해 믿지 않으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적과 싸우기 위한 전략물자를 수송해야 할 국정원의 행낭이
적의 군자금을 보급하는 통로로 이용되었다는 사실도 믿기 어려우실 줄 압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김정일은 김대중의 뇌물을 받아, 고폭(高爆)장치 등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핵심 물자를
파기스탄, 카자흐스탄, 프랑스 등지에서 구입했습니다.
김정일은 또한 이 돈으로 카자흐로부터 40대의 신예 미그기를 도입하였고,
러시아로부터 잠수함과 탱크 등 첨단무기를 구입하였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지난 서해교전시 장열하게 전사한 우리 해군 장병들의 명복을 빕니다.)
최근 벌어진 몇 가지 일은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북한이 작년부터 달러화 유통을 금지시키고, 유로화로 결제수단을 변경할 수 있었던 것도
뇌물로 받은 유로화 덕택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북한은 그동안 약세를 면치 못하던 유로화에 대해(2000. 8월, 30%절하) 우리보다도 훨씬 더 지대한 관심을 표명해 왔습니다.
2000년도에 북한에 넘겨진 15억불 상당의 유로화는, 지금 현재의 환율로는 20억불 가치로 평가 절상되어 있습니다.
최근 현대에 지원한 34조 원의 공적자금 중에서, 현재 2조원이 회수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합니다.
현대상선은 주력 알짜배기 업종인 자동차 운반선 사업을 15억불에 매각하였습니다.
김대중이 북한에 송금하기로 한 금액과 이러한 액수가 일치하는 것을 그냥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김대중은 국민의 혈세(血稅)로 이루어진 공적자금을 현대에 지원하면서
현대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아 챙긴 것입니다.
김대중은 리베이트의 일부를 자신의 호주머니에 넣었겠지만,
상당부분을 북한에 뇌물(賂物)로 바치는 데 사용한 것입니다.
현대는 정부로부터 공적자금을 받아 북한에 지원하고,
북한으로부터 금강산과 개성공단 독점사업권을 대가(代價)로 받은 것입니다.
북한은 현금을 받아 챙기고 위장평화 생색을 내줌으로써, 김대중이 노벨상을 받도록 도왔던 것입니다.
북한의 대남 일꾼들이 한결같이 "현대는 절대로 망하게 하지 않겠다"고 외치고 있는 배경에는
이러한 커넥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대중이 대마불사(大馬不死) 대우그룹을 해체한 것과,
김정일이 "김우중이 가장 악질적이다"라고 언급한 것은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북한의 소위 대화일꾼들이 우리의 경제원조에 대해 고마워하기는커녕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가 더 많이 주었다."고 강변하는 이유도 다름이 아닐 것입니다.
김대중이 목에 건 자랑스런 노벨상은 실로 북한 동포들의 피눈물과 절규,
그리고 우리 국민들의 혈세(血稅)가 어루러져 응결된 결정체(結晶體)인 것입니다.
지금 김대중은 잔설(殘雪)같이 남아 있는 권력을 동원하여
자신의 과거 추악한 범죄흔적을 지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을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잠시 속일 수는 있을 것입니다.
몇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이지는 못할 것입니다.
저는 지난 2년여간 찬바람 부는 현실 속에서 어렵게나마 국가정보원 직원의 명예를 걸고
외롭게 이러한 일들을 추적하여 왔습니다.
비록 저는 이 모든 일들을 모두 검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했지만,
제가 얻은 정보가 진실(眞實)에 가깝다고 확신합니다.
예전에 어느 분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외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깨어 있는 민족이라야 자유(自由)와 번영(繁榮)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습니다.
앞으로 실체적(實體的) 진실(眞實)을 확인하는 작업은 국민 여러분들께 맡깁니다.
감사합니다.
2002년 5월, 전직 안기부 직원 김기환 드림
정보공개에 부쳐,
사랑하는 國家情報院 동료, 선·후배 여러분!
저는 오늘 전직 직원으로서, 우리가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保安을 위배하는 일을 저지르기로 결심했습니다.
保安을 지키는 일보다는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욱 우선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2년여 전, 회사를 나온 저는 이 정권의 위선의 가면을 벗겨내기 위해
혼자서 많은 煩悶의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제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사실들을 알아 낼 수 있었고,
이제 국민들과 함께 이 정보를 공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오늘 저는 이러한 저의 결심에 대해 여러분의 이해를 구합니다.
國家情報院 동료, 선·후배 여러분,
저는 지난 5년간 여러분들이 당한,
그리고 앞으로 5년간 더 당할지도 모를, 말할 수 없는 처절한 고통을 너무나도 잘 이해합니다.
2년여 전, 저는 "무릎꿇고 사느니 차라리 서서 죽겠다"며 퇴사를 결심했지만,
그러한 선택이 과연 올바른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확신이 없습니다.
저는 비통한 마음을 참고 인내하며 살아가는 여러분들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머지 않아 인고의 세월을 참고 온 보람이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민족의 운명은 여러분들의 어깨 위에 달려 있습니다.
용기를 가지시고 끝까지 살아남아 민족의 반역자들을 처단하시기 바랍니다.
저의 이 글로 인해 실명이 거론된 분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염치없지만 양해 있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차 발표/ 김기환은 이런 사람
저는 오늘 글을 올렸던 전직 국정원 직원입니다.
여러 게시판에서 저에 대해서 잘못된 정보가 올라왔기에 정정드립니다.
제가 저의 신원을 정확히 밝히지 않아 초래된 일인지라 사과부터 드립니다.
실명은 사실 제가 국정원에서 사용하던 가명입니다. 저의 본명은 끝글자가 다릅니다.
저의 가명은 제가 어릴 때 불리우던 이름입니다.
저는 경상남도 모 시골에서 자랐고, 1984년도에 서울법대에 진학하여,
1993년도에 졸업했습니다. 학교를 오래 다닌 건 공부를 잘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1993년도에 안기부에 입사하여, 그동안 대공정책실, 해외조사실(1국), 국제정책실, 비서실, 전략실 등
국정원의 여러 부서에서 일하다, 2000년 10월 퇴사하였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저는 국정원 간부출신이 아니라 그냥 일반 직원이었습니다.
제가 글을 발표한 이유는, 이미 밝혔듯이,
국민들에게 정확한 판단자료를 제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도 제가 쓴 내용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아마도 역사는 진리를 비껴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 여러분들의 현명하신 판단을 다시 한 번 촉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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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r.netizen.news.yahoo.com/discuss/view.html?bbscode=1&sort_field=BBS.idx,BBS.idx_main,BBS.idx_sub&sort_order=&sort_default=Y&show_reply=Y&search_word=&search_field=&search_period=all&search_form=&act=&_sqlonmaster=0&columnist=&no=145729&page=1
제목 김기삼, “DJ비자금은 6천억~1조원” [2]
작성자 cenws2008 (작성자의 다른글) 조회수 46 추천수 1 입력시간 2005.11.08 2:42
김기삼, “DJ비자금은 6천억~1조원” [2]
212575 | 2005-08-11
추천 : 1 | 조회 : 42 | 스크랩 : 0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ㅅㅣ팔 역적놈 지금 대한민국 국군은 기름이 부족하여 훈련중단하고 있는마당에 처죽일 역적놈 같으니라구
반드시 역사와 국민에게 준엄한 심판을 지금 받아야 합니다
안그러면 이런것도 혼란을 틈타 유아무아될것이니 지금 적절한 시기입니다
그리고 디제이 비자금 국고 환수 국민추진위원회도 만들어야 한다
아울려 광주시민들의 피에 대한 댓가도 착복할 가능성이 높다
국가의 돈도 착복하는데 그들의 돈도착복하지말라는 법은 없기에 이에 대한 조사도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의 명운을 걸고 이 수사는 필히 해야 한다 사건의 진위여부를 국민들은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이것이 바로 올바른 과거사 청산및 정리와 청소 작업이 되어야 한 다
대북 송금한것도 국가 반역죄에 해당하거늘
디제이비자금 스위스 은행에다가 국고 탈취사건에 대한 협조 요청을 해야한다
스위스 은행 검은돈에 눈물의 “안녕”
세계 부호들의 금고로 불리던 스위스 은행이 비틀거리고 있다.
갑부들의 돈 보따리를 불러들이던 ‘비밀보장’ 제도가 ‘검은 돈’ 추적의 요구에 밀려 흔들리는 데다,
싱가포르와 같은 강력한 경쟁상대가 나타나 스위스 은행의 전통적 지위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 은행들이 관리하는 세계의 개인자산은 모두 1조2천억달러로,
전체 시장의 최대 3분의 1, 최소 4분의 1에 해당한다.
스위스 은행의 매력 포인트는 〈은행비밀법〉에 있다.
몇년 전만 해도 스위스 은행에 숨긴 검은 돈을 찾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400여 은행을 일일이 조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 나치에 희생당한 유대인들의 예치금 내역을 공개하라는 유대인 사회의 압력에 굴복해
스위스은행협회가 모든 휴면계좌를 전산망에 등록한 이후, 계좌추적은 매우 수월해졌다.
필리핀의 전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비밀계좌 환수와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의 돈세탁 사건,
라이베리아 찰스 테일러 대통령의 예치자금에 대한 동결 등이 변화한 환경을 대변한다.
이에 반해 싱가포르는 아직도 익명계좌를 허용하고 있어 일부 검은 돈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김기삼, “DJ비자금은 6천억~1조원”
전 국정원 직원 김기삼씨 “DJ, (구좌이체 등) 친필 싸인이 필요해 스위스 방문했다”
"북에 건냈다는 5억달러중 5천만달러는 리베이트"주장
김의중 기자 zerg@frontier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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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안기부의 불법 도청팀인 ‘미림’팀의 실체를 밝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전 안기부 직원인 김기삼씨가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해외비자금에 대해 폭로했다.
이미 몇 차례 DJ와 관련된 비리들을 폭로한 바 있는 김씨는
본지를 통해 DJ의 해외비자금과 관련된 추가사항을 알려왔다.
김씨는 현재 미국에 체류중이다.
"DJ 스위스 방문, 친필 싸인 필요해서 간 것"
김씨는 “DJ는 국민의 혈세를 가로채 스위스, 홍콩 등지에 분산 예치했고,
비자금의 규모는 최소 6천억원에서 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김씨는 DJ가 작년 5월18일 스위스를 방문한 것은
단순히 세계보건기구(WHO) 총회 개막식 연설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그의 스위스 방문은 비자금과 관련이 있다”며
“구좌이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계좌의 상속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친필 싸인이 필요했기 때문에 스위스를 방문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김씨는 “DJ의 유럽여행 경비를 정부 예산으로 지원한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인 동시에,
아직도 DJ의 사기행각에 철저히 놀아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씨는 DJ가 작년 4월 말경에 상해를 방문하려 한 것도
홍콩에 있는 그의 비자금 구좌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북한최고위층, DJ가 북한에 15억달러 주기로 합의했다고 밝혀”
김씨는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 DJ가 2억달러 이상의 리베이트를 챙겼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김씨는 이와 관련해 이미 “지난 99년 12월 DJ가 김정일에게 15억달러를 주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김씨는 “북한의 최고위층으로부터 직접 이런 내용을 전해들은 사람으로부터 정보를 받았다”며
“나는 그 출처가 북한의 최고위층과 접촉한다는 사실을 그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김씨는 “그런데 실제로 북으로 건너간 돈은 15억달러보다 좀 더 되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으나 3억달러 씩 한 차례 내지, 두 차례 더 간 것으로 추정되며,
아마도 노벨상 단독 수상이나 김정일의 방한약속 실행에 대한 대가로 지불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김씨는 또 DJ측이 북으로 5억달러를 보냈다고 시인한 것과 관련해서는
“사건 이후 특검에서는 4억5천만 달러밖에 밝혀내지 못했는데, 그렇다면 5천만달러(10%)는 어디로 사라졌겠냐”고 의문을 표했다.
즉, DJ가 10%를 리베이트로 챙겼다는 것이다.
“정몽헌 부회장이 권노갑 의원에게 준 3천만 달러는 DJ 스위스계좌로 들어갔을 것”
김씨는 이어 “현대상선 미주지부에서도 북으로 3억달러를 보냈다고 알려졌고,
정몽헌 전 현대그룹 부회장은 죽기 직전 권노갑 전 민주당 의원에게 3천만 달러를 바쳤다고 실토했지만
그 3천만 달러는 권 전 의원이 받은 것이 아니라 3억달러의 리베이트(10%)로
DJ의 스위스 계좌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김씨는 “DJ는 또한 국내 굴지의 방산업체인 한국화약으로부터 수백억원을 뇌물로 받고,
대한생명을 특혜 분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한화의 사주인 김승연씨가 소유하고 있던 모 신문이 지난 5년간 DJ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한 것은
이러한 커넥션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김씨는 “이 일과 관련해 김모 당시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돈 심부름을 했다는 얘기를
한나라당 모 의원으로부터 두 차례나 들었다”고 밝히면서
“그 의원은 한화 비서실 관계자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지난 2002년 10월 언론에 보도가 나가자
신건 전 국정원장은 국정원의 감청부서인 ‘과학안보국’을 긴급 해체했다고 김씨는 전했다. (계속)
입력 : 2005년 08월 04일 11:07:10 / 수정 : 2005년 08월 04일 11:5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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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ws2008: 고 박정희 대왕님이 기다리고 계시는데 아직도 세상의 탐욕에 미련 이 많은지 죽을날도 다가오네요 그 날이 대한민국 경축의 날이다 (11/08 15:04)
jds3925: 나라는 빚더미에서 허우적거리는데 슨상님 개인구좌에 은닉해놓고 천년만년 살모양이죠. 마귀할배가 되어서요... (11/08 1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