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 글은 데일리차이나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이디 [국가보안법]에 관한 내용이 아님을 밝힙니다. 말 그대로 국가보안법에 대해 쓰는 글입니다. 이하 반말...양해해 주세요.
국가보안법은 공산당에 대응하기 위한 하나의 낡은 방식을 상징한다. 물론, 나름의 효과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법이라는 방법에 있어서는 졸렬함을 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존재는 아주 작지만 그 의의가 있는데, 한 번 그것을 생각해 본다.
대략 작년 한해동안 폐지냐 존치냐 말이 많았던 법이 국가보안법 이다. 한 4-5년 전 혹은 그 이전에 국가보안법에 대한 관심을 아주 약간 가졌던 적이 있다. 그당시 결론은 이런 쓰레기 법은 존재가치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고, 이런 법안을 신주단지 모시는 것 처럼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 경멸, 혹은 분노에 가까운 감정이 일어나기도 했다.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을 얼마나 업신여기기에 아직도 이러한 법을 옹호하는가?] 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겠다. 세월이 지나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은 성급한 결론이었음을 인정하며 좀 더 신중한 자세로 관점을 바꾸었다고 보면 되겠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국가보안법 존재의 의의]이다.
만일, [국가보안법 폐지의 의의]에 관해 알고 싶다면, 그런 자료 모아놓은 단체가 여러군데 있을 것이다. 내용도 설득력있고, 한국사회 특히 독재정권의 인권탄압에 대한 생생한 사례와 함께 보안법의 폐부를 찌르는 주장이 많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폐지의 당위성을 뒷받침할만한 사례 및 자료 그리고 논리는 충분하다.
반면에, [국가보안법 존재의 의의]에 대해서는 제대로 말한 사람이나 자료를 본 적이 없다. 이른바 보안법 사수를 외치면서 국가 정체성의 수호를 외치는 인간들도 도데체 뭐가 국가 정체성인지 까마득하게 모른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아니면, 욕 먹을까봐 구호나 외치고 일부러 입을 다물 수도 있는데, 이 경우는 위선이라고 밖에 볼 수 없겠지. 여하튼......
국가보안법은 폐지론자의 주장대로 한국인의 사상을 제한하기 위한 법이다. (이를 빌미로 수 많은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 내기도 했는데, 이건 내가 말할 수 있는 주제는 아닌 것 같다. 그냥 생략한다.) 또한, 사상의 자유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법을 통한 인신구속, 즉 물리적이며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왜 하필 공산주의 찬양을 대상으로, 그정도로 특별히 사상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제한하고자 했을까?
먼저 생각을 해보자. 극단적인 폭력을 사용하는 독재정권이 처음 시작할 때, 가장 민주적인 방식인 투표를 통해서 정당한 방법으로 집권하여 그 다음에 일당독재로 변할 수 있을까?
답은 '가능하다' 이다. 이것은 단순한 논리게임이 아닌데, 왜냐하면 20세기 초반에 독일의 히틀러의 나찌정권이 바로 그 예이기 때문이다. 집권 후 투표를 통하여 집권당인 자신들을 제외한 나머지 당을 모두 불법화 시켰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민주제도를 통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서,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초반 정치세력화를 시도할 적에 그들이 사용한 선전술에 있다. 당시 미디어 기술의 발달로 보아 그 선전이라고 해봐야 거리연설이나 호외 또는 일종의 입소문 같은 것이었지만, 그 당시 사람들이 접하는 매체들이 전부 그러한 것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정보과잉의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뭐랄까, 사람들의 어떠한 주장에 대해 진지하게 들어주는 풍토가 (현재와 비교한다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당시 나찌의 선동술이 매우 뛰어났다고 볼 수 있다. 괴펠스라는 사람이 나찌 정권 당시 선동술의 1인자로 불렸다.
어쨌거나 그 역사가 지나가고, 공산주의 국가가 여러곳에 생기면서, 그들 국가의 통치방식이 있게 되는데, 그 중에 특기할 만한 것이 바로 언론을 통한 공산주의 사상의 선전이다. 각 나라의 법을 다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북한, 중국, 소련의 법에는 언론이 공산주의 사상을 전파하는 도구임을 법으로 명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소련은 해체되었지만, 아직 중국과 북한은 공산당의 지배가 유지되고 있으니, 그 법령이 현재도 유효할 것이다.
민주사회는 언론의 주요기능이 사회 병리현상에 대한 고발이나 비판 등이니, 공산당이 규정한 언론과는 아예 닮지도 않았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념으로 대치된 특히 남북한이 대치된 상황에서 이런 언론의 차이는 일종의 불균형을 만들기 쉽다.
간단히 말해, 한쪽의 언론은 사실여부에 관계없이 자신들의 사회를 선전하며 각 매체가 일사불란하게 한 가지의 관점을 고수한다. 다른 쪽은 사회비판 기능을 주로하며, 자신이 속한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친다. 이 둘을 아무 생각없이 같이 놓고 본다면, 어느 쪽 사회가 더 이상적으로 보이겠나? 당연히 전자에 속한 사회가 그렇게 보일 것이다. 너무 지나친 단순화라 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런 단순화가 지금 말하는 내용을 훼손할 만큼 단순하지는 않다.
수십년 동안 정보고립의 상태에서 일방적인 정보주입(달리 말하면 세뇌작업)을 통해 공산주의에 경도된 사람들이 꽤 있음을 여기 데일리차이나에서도 자주 볼 수 있지 않은가?
신문이나 방송은 그냥 기술적으로 차단하면 그만인데 (실제 남북한이 이제까지 그래온 것 처럼)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일부의 사람들은 느꼈다. 지금이야 정보를 몽땅 개방하면 북한은 바로 무너진다고 볼 수 있다. 현실적인 경제적인 격차 이외에도, 인권탄압의 정도가 그 북한정권을 인간으로써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처참하기 때문에...... 그런데, 대략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남북한의 현실이 지금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6.25 동란이 끝나고, 한국과 북한은 둘 다 폭격으로 인해서 거의 알거지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한국사회의 혼란은 엄청났고, 대략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힘으로 모든 것을 제압하는 형국이 된다. 그 즈음에 북한은 역시 김일성이 권력을 잡고, 남한에 비해서 물자나 경제가 우위에 있던 북한은 당시 천리마 운동의 성공으로 비약적으로 약진하게 된다.
즉, 70년대 초 까지는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았던 것이다. 일사불란한 사상의 통제, 그것을 선전하는 일관된 언론, 현실적인 경제의 우위... 전쟁은 결국 휴전으로 끝났고, 더 이상의 전쟁은 주변의 강대국의 힘겨루기로 보아서 더는 안되기 때문에, 이른바 소프트하게 상대를 붕괴시킬 준비를 하게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통일전선 전술인데, 어차피 남한은 공산당이 불법이니까 그리고, 전쟁을 통해 사람들이 공산당을 싫어하는 정도가 엄청났으므로, 무엇보다도 선전, 선동술을 남한에서 가동하는 조직을 구축하는 것이 순서로 보아 맞기도 하니까 그러한 작업을 하게 된다.
실제로 북한의 자신감과 한국의 필요성(?)이 맞붙어서 낸 성과가 70년대의 7.4 남북 공동성명이다. 이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 한가지를 찾자면 바로 [동상이몽] 이다.
한마디로, 자신을 상대에게 선전하여 우월성을 과시할 수 있다면, 반드시 체제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뭐 그런 것이다. 물론, 북한의 이런 계산은 완전한 착오로 끝났다. 한국 경제가 그렇게 발전할 줄, 또는 박정희 정권이 그토록 반공에 대한 정책이 완고할 줄 몰랐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시 돌아가서, 앞서의 선전책을 구축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보아 고정 간첩이 하는 일이 되겠지만, 정보수집 이외에 인위적인 여론형성, 불만세력 형성은 간첩 몇 십명이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렇기도 하거니와 직접 하다가 잡히면, 여론형성은 고사하고 반공정서만 열심히 높여주게 된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한국에 있는 사람을 포섭하여 그 사람들이 일종의 북한선전의 창구역할을 하도록 하는게 훨씬 편한 방법이다. 포섭 자체야 쉬울리 없겠지만서도.
이런 작업이 곳곳에서 성공하게 된다면, 특히 이른바 지식인 계층이 포섭된다면 한국 사회는 큰 교란이 오게 된다. 이는 단순히 북한체제의 선전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부조리 고발 등을 통한 불만의 확대, 이를 통하여 대안제시로써 슬쩍 북한의 그런체제를 끼워넣게 되는데, 이는 진실과 거짓을 적당히 섞어 놓은 방법을 취함으로써 상당히 사람을 미혹하게 된다.
이런 포섭된 사람들이 한국에서 태어났고, 언론의 자유를 이용하여 자신들을 선전하고, 지식인으로써 세련된 논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대면적으로 사람들을 접촉할 능력이 있다면, 이게 바로 통일전선전술이겠지. 문제는 제도적으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있고, 이들이 먹이감으로 삼는 사회의 부조리, 특히 정부나 정권의 문제가 많이 있다면, 이들의 목적이 무엇이든 혹은 주장의 궁극적인 모순을 꿰뚫어 보는 사람이 있다해도, 이런 선전술의 확대를 막기 아주 어려워진다. 더구나 북한 사회가 적어도 접하는 정보의 수준에서 꽤 괜찮다면 이는 나비가 태풍을 몰고오는 현상이 될 수도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사상면에서 부조리한 것을 꿰뚫고 그것을 거부하는 것과 현실적인 환경의 우위를 만드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지금은 사회환경상 그 두가지가 다 갖추어져 있다.
(따라서, 사용기한의 만료를 지적함으로써 보안법 폐기를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40여년 전이라면, 그런 환경은 아니었고, 오히려 전술적으로 그러한 선전술이 먹히기에 더 좋은 환경이었다.
여기서 대응방식은 [반공교육] 강화와 함께 [국가보안법] 적용이었다. 공산당과 유사한 방법을 써서 이른바 사상교육과 함께 법을 통한 엄격한 처벌을 적용한 것이다. 국가보안법의 원래 의미는 내 생각으로는 앞에서 서술한 그러한 선전술의 침투를 민주주의에서는 제도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으므로, 특별히 그러한 것을 제정한 것이다.
다시말해, 그 법의 배경은 남한이 북한에 비해 상대적 우위를 점했다고 할 수 없는 그런 시점에서 공권력을 이용한 일종의 폭력행위로써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고육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제일 앞에서 말한 내가 예전에 분노했던 이유는 보안법 피해자의 증언을 접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선전술에 국민이 쉽게 기만당할 것이라고 전제한 그 국가보안법의 유치함때문이었다. 국민의 수준을 그렇게 보고 있다고, TV에서 한두사람도 아니고 더군다나 무슨 정치인 등을 비롯한 한 자리씩 하는 사람이 그렇게 떠드니 너무도 기막혔던 것이다.
지금은 그런 폭력행위를 통한 자구책을 선전할 때가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 보다는 사상의 성숙함으로 현실을 꿰뚫어 보는 혜안으로 문제를 대해야 한다.
공산당의 인권탄압의 현실
공산주의 사상의 허구성과 그 역사에 나타난 폭력성
을 안으로 부터 인식해야 할 시점이라 볼 수 있다. 실제 그런 인식은 소련의 해체와 동구권의 공산당의 해체로 부터 이미 있어왔다. 지금은 오직 중국과 북한에만 공산당이 남아있고,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은 더욱 비참하며, 그 공산당이 완전해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인식의 난이도도 좀 더 높다.
그 인식의 난이도는 상당한데(특히 공산당에 경도된 사람일 수록) 이를 안으로부터 꿰뚫어 해체하는 작업을 한 자료가 있다. 특히 중국공산당에 관하여 그러한데
그 자료의 이름은
[중공산당에 대한 아홉가지의 평론] 또는 이를 줄여 [9평]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