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박통교 신자들이 많음에 놀라워 졸도 할뻔했다...
박통이 애국자라고 하기도 하고 경제성장의 경인차 역활을 했다고 우기시는 박통교 신자들을 위해서 오늘도 저는 ~
맨손으로 북경오리를 때려 잡고...
떡볶이를 철근 같이 씹어 먹으며 ...
달리는 마을 버스 2-1 에서 뛰어 내린 ...
나~ 소한이 애비님은 일에 지친 피곤한 몸으로 박통교의 실체를 알리고자 한다...ㅋㅋㅋㅋ
△ 김지하 시인 ⓒ 네이버 검색
"반공법 제4조의 상투적, 견강부회적, 무차별적, 모략적 적응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사상적, 정신적 성장과 발전을 빼앗아 온 최대의 질곡이며 우리 민중으로부터 '말의 자유'를 빼앗아 숨막히는 암흑과 침묵의 문화를 보급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부패특권의 압제권력을 유지해 온 최대의 억압의 무기이다. 나는 이에 대하여 자유의 이름으로 머리 끝부터 발끝가지 치떨리는 분노로 항의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개성의 허용,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온몸으로 요구한다. "
그야말로 박정희정권은 중앙정보부를 앞세워 인권유린의 구조화를 자행하여 한국사회 전체를 군사문화가 지배하는, 반민주적 독소로 가득찬 사회로 만든 원흉이다.
박정희 덕분에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할 국가기관들이 전부 인권유린의 도구로 전락하였고, 아직도 그 때문에 국민적 신뢰를 되찾지 못해서 고충을 겪는 것이다.
극악한 고문도 성행하였다. 물고문, 전기고문, 수면방해, 구타, 천장에 거꾸로 매달기, 손가락 사이에 볼펜을 넣어 비틀기, 겨울에 옷을 벗기고 찬물에 집어 넣기, 불이나 담배불로 지지기, 비녀꽂기, 통닭구이, 강간.윤간.기타 성고문, 물 속에 머리 처박기, 고춧가루물을 코에 붓기, 원산폭격, 빈대붙기, 칠성판에 묶고 구타하기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박사모?? 박정희의 전면적 이데올로기 공세에 흡수된 거냐? 살인적인 인권탄압의 실상을 모르는 거냐? 망각의 해악인가? 민주주의가 그렇게 불만인가? 뭐야, 도대체.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조용수 사장은 왜 죽었고, 황태성 사건의 진실은 무엇이고, 동백림 사건, 남민전 사건은 뭐야? 멧돼지는 어디로 갔나?
젊은 사람들이 왜 멀쩡히 있다가 감옥에서 옥사를 그렇게 많이 했는지 생각해 봐라.
영화 "실미도" 못 봤나?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무슨 부정선거 고발했다고 열차에서 떠밀어서 죽이지 않나, 노동자들 사이에서 노동운동하는 선교사에게 독약을 먹이질 않나, 대학교수를 잡아다가 창밖으로 집어 던지질 않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억울하게 공권력에 의해 희생당했다고 결정된 사안만 보더라도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박근혜가 저렇게 정치판에서 설쳐댈 수가 없는 거다.
이건 악마 중에도 대마왕이다, 대마왕. 베엘제불.... 악마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 박정희 향수라는 것은 결국 자기 가치파괴로 귀결될 게 뻔하다.
박근혜라는 여인도 불쌍한 여인이다. 박근혜 정도되는 사람이 이런 사건들의 진실에 대해 전혀 모르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자신의 부친이 저지른 죄업을 모른 척 하면서, 또는 두둔하면서 그 죄를 씻기 위해 용서를 빌기는커녕 가해자 편에 서서 또 다시 민주세력에게 상처를 가하고 있는데 이 또한 불행한 자기 가치파괴로 결론이 날 것 같다. 그러니까 박근혜도 박정희에 의해 빚어진 또 하나의 희생양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박정희는 불법적인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한 후, 탈취한 권력을 악용해 끊임없이 추악하게 정권 연장을 하면서 죽는 순간까지 최고권좌에 앉아 있었다.
물론 그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가문도 엄청나게 번성시켰다.
무슨 박정희가 검소하고, 역대 가장 청렴한 대통령이고, 친인척을 멀리했다는 소리들을 그렇게 하는데 다 좆*까는 소리다. 죽을 때까지 이 나라에서 천황으로 살았는데 무슨 소리하는 건가? 정수장학회 얘기는 듣지도 못했나?
그 문란했던 사생활을 보고도 검소하고 청렴하다는 얘기를 그렇게 자연스럽게 할 수 있나? 친인척을 멀리하기는 뭘 멀리해? 쓸 수 있는 사람은 다 끌어다 한 자리씩 줬다.
당시 박정희 친인척비리가 불가사의하게도 하나도 없었다는 얘기를 서슴지 않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있어도 잡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는 걸 몰라??
우선 박정희의 딸 박재옥부터 알아보자. 사람들이 박근혜가 큰 딸이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박재옥이다. 박재옥은 박정희의 첫째 부인 김호남이 낳은 딸이다. 박재옥은 한병기라는 사람과 결혼했다.
한병기는 1931년 평남 안주 출신이다. 홍익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집권을 하자마자 불과 30살의 나이에 별 경력도 없이 주뉴욕총영사관 영사가 되었다. 35살의 나이에 건설공제조합 이사장이 되기도 했다. 선주협회 회장을 지내고 박정희 시절 설악관광케이블카 회장이 되어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유엔대사, 캐나다대사를 역임하기도 하고, 공화당 총재특보를 지내기도 했다.
박정희가 죽자마자 권력에서 멀어졌다. DJP연대로 사촌 동서인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득세하자, 방송개혁위원회 위원, 국무총리 자문위원장이 되는 등, 조금 고개를 들었다.
이래도 박정희가 친인척을 멀리한 건가?
그 다음에 박정희의 형 박동희의 아들 박재홍을 보자. 그러니까 박정희는 박재홍의 작은 아버지다.
1941년 경북 구미 출신이다. 대구상고, 고려법대를 졸업하였다.
28살의 나이에 포항제철 행정실장이 됐고 32살의 나이에 동양철관 회장이 되었다. 이거 정상적인 건가??
민정당, 민자당에서 국회의원을 4번씩이나 해 먹었다. 그 후 자민련으로 갔다가 다시 한나라당으로 갔다가 국민회의로 건너오는 등 이상한 정치행각을 보여주었다.
또 박정희의 또 다른 형 박상희의 아들 박준홍을 보자.
1947년생이다. 경북 구미 출신이다. 계성고, 경희대 정외과, 미국 조지워싱턴대를 졸업하였다. 김종필의 부인 박영옥이 박준홍의 누나다.
불과 서른 살의 나이에 1급 관리관 정무조정실장이 되었다. 요거 요즘같은 대명천지에 가능한 얘긴가? 그러더니 32살 때 그 막강한 대한축구협회장이 되었다.
박정희 사망으로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어 방황하다가 매형 김종필이 만든 자민련에 들어가서 지금도 자민련 경북 구미갑 지구당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촌형인 박재홍과 맞붙기도 해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렇게 볼 때 박정희의 친인척 가운데 쓸만한 사람이 별로 없어서 안 썼을 뿐이지 쓸만한 사람은 다 갖다 썼다는 걸 알 수 있다.
박정희의 부인 육영수의 오빠, 그러니까 박근혜의 외삼촌인 육인수 같은 경우에도 학교 교사로 있다가 박정희가 쿠데타에 성공한 후에 승승장구하면서 5선 의원 씩이나 지낸 거 아닌가?
그 육인수의 사위 이석훈은 청주 MBC 사장을 지내고, 충청일보 사장을 거쳐서 현재 일신산업 회장이다.
김종필 같은 경우에도 박정희가 끔찍이 생각했던 형 박상희의 딸인 박영옥의 남편 아닌가?
박정희의 처조카 김종필이 이후락 등과 함께 80년 신군부에 의해서 부정축재한 재산이 환수조치됐는데 그 총 규모가 887억원이다. 25년 전에 887억원이면... 이건 계산이 불가능한 돈이다.
이래도 박정희가 깨끗하고 청렴한가? 그걸 몰라서 가만히 놔 둔 건가? 박정희 개인은 절대권력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굳이 축재할 필요가 없었을런지는 모르겠다.
박정희 덕이 아니라면 박근혜가 어떻게 정수장학회를 지배하고 있나? 정수장학회가 말이 장학회지, 그 규모가 1조 300억원에 이른다. MBC의 30%가 정수장학회 소유다. 부산일보도... 경향신문 사옥 부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