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의 최대 피해자는 중국인이라니까?
2004/09/02 03:18 | 역사와 철학
이번주 PD수첩을 보고 있으려니 칭기즈칸이 중국의 영웅이라는 중국인이 나오더라. 얼마나 웃었는지. 칭기즈칸이 중국인의 영웅이라니. 도대체 몽골인들이 중국인을 얼마나 죽였는지 알기나 하는가? 명나라가 괜히 쇄국정책을 채택했던 것이 아니다. 그때 몽골인들에 당한 것이 그토록 뼈에 사무치도록 공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나라는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몽골의 존재를 부담스러워하며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바얀이던가?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원나라의 실력자 가운데 한 사람이 원말 한창 일어나고 있던 반원 봉기에 대항하기 위해 이, 왕, 장, 유의 네 성을 쓰는 모든 중국인들 죽이자는 제안을 내놓은 적이 있었다. 이, 왕 , 장, 유의 네 성이라면 중국인이 가장 많이 쓰는 성이니 중국이 대부분을 죽여버려 아예 그 반항의 싹을 잘라버리자는 참으로 끔찍한 발상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실행은 되지 않았지만 참으로 살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금나라 정벌을 통해 그 재위기간에 이미 중국을 침략한 바 있던 칭기즈칸을 중국인의 영웅으로 섬긴다? 지배한다는 개념조차 없이 중국인과 그 토지를 정복하고 소유하려 하기만 했던 중국 역사상 가장 잔혹했던 정복자의 시조를 그들의 영웅으로 존경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일이다. 중화민족주의라고 하는데, 그 민족주의적 가치를 적용해보아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만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고구려를 침략하여 멸망시킨 중국 당태종 이세민을 민족의 영웅으로 섬기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고조선을 공격해 멸망시켰던 한무제 유철을 민족의 영웅으로 존경하라고 하면 어떤 반응들을 보일까? 임진왜란의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첨병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우리민족의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일본과 역사분쟁이라도 벌이게 된다면 과연 어떤 생각들을 하게 될까?
대충 중국인들이 칭기즈칸을 자신들의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외교적 분쟁까지 불사해가며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우리나라 근대화의 영웅으로 떠받들기 위해 일본정부와 그 소유권을 다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세계사적으로 보면 영웅일지도 모르지만 중국인 스스로에게 있어 학살자에 다름 아닌 칭기즈칸을 그 피해자라 할 수 있는 그들의 영웅으로 만든다는 것은 그처럼 웃기는 짓거리다.
나는 동북공정을 중국의 중화주의의 산물이라고 보지 않는다. 중국의 민족주의도 아니다. 그것은 중국 지배세력이 자신들의 권력을 독점적으로 또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술책이라고 본다. 중국인 스스로의 역사적 정체성이나 자부심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그들의 정권차원에서의 이익을 위해서 벌이고 있는 꽤나 거창한 정략적 책동이라고 여긴다. 중국의 일반 대중은 오히려 그 피해자들인 것이고.
만약 나에게 누군가 중국의 역사를 모두 우리 역사로 만들려 하는데 그 대신 양만춘과 을지문덕을 깎아내려야 한다고 한다면 먼저 그 턱주가리를 날려버릴 것이다. 누군가 일본을 우리가 완전히 소유하기 위해서는 이순신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먼저 맥주병으로 그 머리통을 부숴버리고 말 것이다. 중국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가 아니고, 일본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가 아닌데, 그 역사를 위해 우리의 역사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마땅히 그 혀를 뽑고 손가락을 부러뜨려 더이상 헛소리를 못하게 만들어버릴 것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아무리 영광된 역사가 좋아도 우리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우리의 역사와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역사를 가질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를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일부 진짜 제대로 미친 인간들이 아니라면 헛된 영광을 위해 우리 스스로의 진정한 역사와 그 자랑스러움을 잃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물며 중국인이라고 다를 리 없다.
중국 정부가 주도하는 일련의 역사왜곡 작업에 의해 피해를 보는 소수민족과 주변국 국민들을 모두 합하면 대략 3억명이 채 안된다. 반면 그 역사왜곡으로 인해 스스로의 역사를 잃고, 그 스스로의 영웅들을 잃어버리고, 그 스스로의 정체성마저 위협받게 될 중국 한족의 숫자는 얼추 12억명. 주변국 국민들보다, 소수민족들보다, 더 많은 중국인들 스스로가 그 피해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어처구니없다기보다는 차라리 우습꽝스럽기까지 하다.
지금 중국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제대로 된 가치지향 없는 실용주의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바르고 분명한 가치적 목적 없이 오로지 현실적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너무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역사와 그들 스스로의 정체성마저 부정해가며 권력을 추구하는 중국 위정자들과 그들에 부역하는 학자들의 모습에서, 흑묘백묘의 실용주의가 잘못 적용될 경우 어찌되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하여튼 현재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역사왜곡 작업을 보고 있으려면 화가 난다기보다는 먼저 웃음부터 나온다. 그 순진함이라니. 지금의 역사왜곡이 천년만년 갈 것이라 믿는 역사라고는 쥐뿔도 모르는 그 무지함과 어리석음이라니. 많이 배우고,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그것이 현명함의 전제는 될 수 없는 모양이다. 역시 바보는 가장 오래고 가장 효과적인 코미디의 소재다. 이렇게 지금도 실실 웃음이 지어지는 것을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