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대왕의 무덤과 호화로운 궁궐 임류각(臨流閣)은 산동성에 있다
(해설) 동성대왕의 무덤과 호화로운 궁궐 임류각(臨流閣)은 산동성에 있다
다음 내용은 최 진 선생님의
“다시쓰는 한/일고대사” 141 ~ 143페이지 내용이다
(대한교과서에서 1996년도에 발행)
최 진 선생님의 논문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해 보충자료로 올리는 것이다
중요 논점은
(1) 동성대왕이 산동성 “래주(來州, 지금의 연대烟台)에 임시수도를 정했다는 것과
(2) 래주에 임류각(臨流閣)이라는 호화로운 궁궐을 지었다는 사실
(3) 동성대왕의 무덤이 산동성에 있다는 사실이다
먼저 책내용을 소개한후 설명을 첨가토록 하겠다
사전에 양해를 고할 점은 이견이 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으므로 자료 제공차원에서
올리는 것이므로 단순 참고할 것을 권합니다
출처 : 최진 “다시쓰는 한/일고대사” 141 ~ 143페이지
(본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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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년부터 498년까지 10년 동안 무려 5회에 걸쳐 큰 전쟁을 치룬 위는,
이로써 제남/회수 지방을 완전히 백제/남제에 상실하고
국고가 탕진되어 재정이 파탄에 이르렀으며,
결국 태화 22년 7월 왕실과 궁중의 모든 경비를 절반으로 줄이고,
또 근위대의 1/3을 축소했다
[魏書 卷7 高祖紀下 太和22年紀 ‘后之私府 便可損半 六宮嬪御 五服男女 常恤恒供 亦令減半 在戎之親 三分省一]
다음 해 문제가 죽자 위는 급격히 국세가 약화되어 탁발씨의 사직이 534년에 종언을 고하게 된다.
그러나 이 백제/위 전쟁은 위나라만의 약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오랜 외국 정복전쟁은,
더구나 임금인 동성대왕이 백제의 수도 곰나루를 떠나 중국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에서는,
백제내부에서도 염전사상을 자라게 했다.
젊은 영웅 동성대왕은
당대의 중국 최강의 강국 위를 10년 동안 5회에 걸쳐 패퇴시키면서 자만감이 싹트고,
한반도의 서남지역보다는 중국대륙 내에서 왕업을 확장하고 싶은 유혹에 빠졌다.
그래서 그는
산동반도의 고도(古都) 래주(來州, 지금의 연대烟台)를 대륙통치를 위한 임시수도로 정하고,
500년(동성대왕 22년)에는
이 곳에 “임류각(臨流閣)”이라는 호화로운 새로운 궁궐을 지으니
높이가 5길이가 넘었으며,
또 궁 내에 연못을 파고 이상한 새들을 길렀으며,
아름다운 여인들에 취해 지냈다.
후기만한(곰나루마한), 전기백제의 두 왕국에 걸쳐 전통적 수도였던 곰나루의 입장에서는,
전기백제의 응신대왕이 왜로 망명(396년)한 이후
오랫동안 백제의 분방에 지나지 않던 십제왕실의 지배를 받아,
아신왕․전지왕․구이신왕․비유왕․개로왕 연간의 79년 동안 한성(위례성) 쪽의 지배를 받고,
곰나루는 단지 하나의 시골로 전락해 버렸다는 사실이 무척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그러다가 후기백제가 곰나루에 수도하면서(475년)
새로운 왕조의 수도로서 면목을 일신하고 있었고,
그 곳의 호족들도 옛날의 정치적 권위를 되찾고 있었는데,
갑자기 동성대왕의 중국정벌과 함께
대왕 자신이 곰나루를 떠나 오래도록 중국땅에 머무르면서
그 곳에 화려한 궁궐까지 짓고 돌아올 생각조차 하지 않자
곰나루는 졸지에 다시 시골도시로 전락할 운명을 밪게 되었다.
이로써 왕실과 멀리 떨어진 곰나루 호족들의 정치적 운명은 몰락이 명확해졌다.
곰나루의 토착호족들은 이에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먼저 상소문을 올려 임류각의 생활을 그만두도록 간하였다.
그러나 “삼국사기”는
동성대왕이 간신의 상소를 살펴보지도 않고, 또 간하는 자가 있을까 염려하여
대궐문을 닫아버렸다고 적고 있다.
일이 이렇게 되자 토착호족들은
위사좌평(衛士佐平) 겸 가림성주(加林城主) 백가(苩可)를 대표로 하여 동성대왕에게 보냈다.
그는 대왕에게 백제의 수도 곰나루로 돌아갈 것을 간청했다.
그러나
임류각의 호화로운 생활에 빠져 있던 동성대왕은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백가는 돌연 칼을 들어 동성대왕을 시해하고 만다.
이로써 중국대륙 내에 대식민지를 건설하려던 동북아의 영웅 동성대왕은
어이없게도 자신의 신하 칼을 맞고 불명예스런 최후를 맞이하였던 것이다.
이 때가 501년 12월의 일이다.
대왕의 나이 불과 37세요,
재위 23년 만이다.
동성대왕의 능은 중국 산동반도에 있다.
곰나루지역 정치세력의 조직적인 반란에 의해 시해되었으므로
시신도 곰나루로 돌아오지 못했던 것이다.
(인용 끝)
그러면 다음 사항을 알아보자
(1) 산동성 래주는 어디인가 ?
(2) 백제가 산동성에 도읍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 ?
(3) 본 홈페이지에서 주장하는 백제의 도읍지 소개
▒ 산동성 래주
▒ 산동성 래주 (칼라. 지형도)
▒ 본 홈페이지에서 추정하는 백제의 수도
과연 백제의 본토는 어디였으며
백강전투는 어디서 벌어진 것일까 ?
그 강성했던 대륙백제는 전부 어디로 갔는가 ?
제남시 박물관이 당초 "이족박물관" 이었는데 최근에 제남박물관으로 명칭을 개칭했다는
일월선인님의 말이 생각나는 하루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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