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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中文化] 공자가 노자에게 道를 얻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上)

편집부  |  20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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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SOH] 노자(老子)와 공자(孔子)는 2천여 년 역사의 긴 강을 가로 질러 뛰어넘는 옛 성인, 현자로서, 고대 중국의 사상 영역과 문화의 맥을 형성하는 정수 부분을 대표한다.


공자는 2천 5백년 전 노자에게 ‘예(禮)’에 대해 질문했는데, 이것은 중국의 역사상 심원한 영향을 끼친 문화적 성사다.


이는 『사기(史记)』,『여씨춘추(呂氏春秋)』,『예기(禮記)』, 『장자(莊子)』, 『수경주(水經注)』에 모두 기재되어 있고, 중국 한나라 시기의 예술(漢畵)에서 자주 보이는 역사적 주제이기도 한데, 그런 것이 발굴된 한나라 시대 벽화(漢畵像石壁畵)는 산동, 허난, 산시 등 여러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기원전 551년 노(魯)나라에서 태어났으며, 이름이 “구(丘)”인 공자는 어렸을 때부터 학문이 넓고 예의가 밝았다. 초(楚)나라 사람으로, 본명은 이이(李耳), 자가 담(聃)인 노자는 주(周) 나라의 도서관(守藏室) 관리 즉 장서 관리 담당 공무원을 한 적이 있으며, 생몰연대가 미상이나, 공자보다는 연상이다.


그들은 모두 주 왕조가 쇠퇴하고 예악(禮樂)이 붕괴하여 제후가 패권을 다투던 춘추시대 말기에 살았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공자는 청년, 중년에서 노년까지 여러 번 여러 곳에서 노자에게 가르침을 구하고, 또 그를 스승으로 존경했다.


그는 깨우침을 향한 노자의 인도와 지도로, 차츰 도가 들리기 시작했는데, 아울러 ‘도(道)’의 소중함과 ‘도(道)’의 듣기 어려움을 개탄하여 말했다. “나는 15살이 되어 학문에 뜻을 두었고... 오십에 천명을 알았으니”,....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다음에 발췌한 몇 단락 사료 중 기록은 공자가 예(禮)를 문의한 것부터 도(道)를 문의한 것 까지의 역사적 장면이다.


1. 공자가 장례를 돕고 예(禮)를 묻다


상례와 장례는 다섯 가지 예(禮) 중 하나인 흉례(凶禮)다.


주나라 경왕 10년, 즉 노나라 소공 7년(기원전 535년),『수경주(水經注)·위수(河水)』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주(周) 경왕 10년, 공자 17세에 주나라로 가서 노자를 만났다.”  『禮記·曾子問(예기·증자가 묻다)』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전에 나는 노자를 따라 항당(巷党: 노나라 지명)에서 장례를 도왔는데, 길에 이르자 일식(日蝕)이 있었다.”고 했다.


공자는 열일곱 살 때 항당에서 상례(喪禮)에 관해 노자에게 문의하고, 아울러 노자를 따라 모시며 장례를 주관하는 사람을 도왔는데, 당시 일식이 발생했다.


노자가 말하기를 “구(丘)는 영구(靈柩 관)를 멈추게 하여 길 오른쪽에 세우도록 하오. 곡하는 사람들이 울지 않게 하고 일식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장례를 치르겠네.”라고 하면서, 이것이 ‘예(禮)’라고 말했다.


공자는 이해가 되지 않아 장례가 끝나고 돌아온 후 노자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장례 도중에 운구를 멈추는 것은 주례(周禮: 중국 전국시대 문인이 편찬한 유가경전으로 모두 42권이며 중국 고대 정치 사회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함)에 맞지 않아, 고인이 편치 않습니다. 상여(喪輿)는 앞으로만 움직일 수 있을 뿐 뒤로 갈 수는 없으니까요. 일식 현상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르므로 마땅히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 좋았을 것입니다.”


노자가 말했다. “제후가 천자를 배알 하러 조정에 나갈 때 모두 해가 뜬 후에 길을 나서며, 해지기 전 휴식하오. 대부(大夫: 주나라 때 경(卿)의 아래 사(士)의 위인 벼슬아치 품계)들이 사신으로 가도 해 뜬 후 길을 나서며, 해지기 전에 머물 곳을 찾지요.


장례도 마찬가지요. 운구(절차에서)는 해 뜨기 전에 관을 묘지로 옮길 수 없소. 별을 이고 길 재촉하는 사람은 죄인과 부모상 당한 사람뿐이오. 일식 중 하늘이 밤처럼 어두울 때 하늘에 별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지요? 그러면 별을 이고 가는 것이 되지 않겠소?


다시 말하면, 군자는 예(禮)에 따라 행하므로 마땅히 다른 사람의 육친 장례(親患)를 불길한 지경에 처하도록 해서는 안 되는 것이오.”


2. 공자가 고대 예(禮)에 대하여 묻다


주나라 경왕 2년은 노나라 소공 24년(기원전 518년)으로, 주나라 천자의 수도였던 낙읍(오늘날의 뤄양)에 있었다. 이때 공자는 33세였고, 그의 학식이 크게 향상되어 다소 유명해짐에 따라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


공자는 주나라 예법(周醴)을 더 잘 알고 싶어 직접 주나라로 가서 노자에게 예(禮)를 묻기로 결정했다.


『사기(史記)』와『공자가어(孔子家語)』의 기록에 따르면, 공자가 남궁경숙(南宮敬叔)에게 말했다.


“내가 듣기로 노자(老聃)는 옛일도 넓게 알고, 지금 일도 모르는 것이 없으며, 도(道)를 좋아하고, 예악의 근원에 능통하며, 도덕의 귀추에도 밝다고 하니, 바로 나의 스승이라, 지금 곧 한번 가보려고 하오.” 


공자의 명을 받은 남궁경숙은 곧 노나라 군주를 찾아가 그와 공자가 주(周)나라에 가서 예를 배우게 해달라고 청했다.


노나라 군주는 허락하고 그에게 수레 한 대와 말 두 마리, 그리고 시종 한 명을 갖추어 주었다.


공자가 노자에게 물었다. “요즘 대도(大道)를 행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이 세상 군주에게 예(禮)를 바쳐 복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노자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 표면적인 도리를 논박하는 대로 흐르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다른데, 이런 두 사람은 오히려 (각자의) 도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이오.”라고 답했다.


공자가 노자에게 예(禮)에 대하여 묻자 노자가 말했다.


“당신이 말하는 예(禮), 그는 이미 뼈가 다 썩어지고 오직 그 말만이 남아 있을 뿐이오. 또 군자는 때를 만나면 수레를 몰고 관리가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다북쑥처럼 떠돌이 신세가 되오.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소.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깊숙이 숨겨 두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군자는 아름다운 덕을 지니고 있지만 겉보기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고 나는 들었소. 그대의 교만과 지나친 욕망, 위선적 표정과 끝없는 야심을 버리시오. 이러한 것들은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소. 내가 그대에게 할 말은 이것뿐이오.”


공자가 작별 인사를 할 때 노자는 배웅하며 말했다.


“내가 듣기로 부귀한 자는 사람을 보내면서 재물을 건네주고, 어질고 덕 있는 자는 사람과 작별할 때 좋은 말과 충고를 해준다고 했소. 내 비록 부귀하지는 못할지라도 어질다는 허명(虛名)은 있는지라, 인덕지례(仁德之醴)로 그대를 보내면서 한마디 말이나 드리겠소.


무릇 오늘날, 총명하고 깊이 파고드는 사람의 일신이 위태로워지는 까닭은 남을 비평하고 책망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고, 지식도 넓고 말도 잘 하면서 그 몸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남의 결점 들춰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오.


사람된 자로서 자신을 크게 하지 말고, 신하된 자로써 자신을 높이지 마시오. 군왕의 부름을 들으면 곧 섬길 수 있고, 쓰임새가 없으면 곧 물러나 보전하는 것이 신하 된 자의 절개라오.”


공자가 말했다. “저는 반드시 새겨서 깨우치도록 하겠습니다.”


공자가 주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오자 제자들이 물었다. “스승님은 노자를 만났습니까. 뵐 수 있으셨나요 ?”


공자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제자가 물었다. “노자는 어떠신지요?”


공자가 말했다. “나는 새가 잘 난다는 것을 알고, 물고기가 헤엄을 잘 친다는 것을 알며, 짐승이 잘 달린다는 것을 안다.  달리는 짐승은 그물을 쳐서 잡을 수 있고, 헤엄치는 물고기는 낚싯줄을 드리워 낚을 수 있고, 나는 새는 화살을 쏘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용이 어떻게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 위로 올라가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오늘 나는 노자를 만났는데,  마치 용과 같아 너무 심오한 나머지 헤아릴 수 없는 존재였다.”


공자는 노자가 너무 높아 따라잡을 수 없다고 느꼈다. 노자의 가르침을 따라서 조심스럽게 말하고 행동했으며, 다른 사람을 망녕되게 말하지 않았고, 자신의 지성과 지식을 뽐내지 않았으며. 본분을 지켰다. 점차 공자의 학설이 퍼져 제자 수가 거의 3천 명으로 늘어났다.


3. 공자가 인의(仁義)를 묻다


노자가 말하기를 “대도(大道)를 내려놓아야 인의(仁義)가 있다”고 했다. 고덕대도(高德大道)를 포기해야 비로소 인과 의가 나타나고 주도하여, 사람의 외재적 행위를 규범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기간 동안 공자는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뜻을 펼쳐, 주례(周禮)를 회복하고 인애(仁愛)를 행하며 인정(仁政)을 베풀었다. 『장자·내편(內編)』에는 “공자가 노자(老聃)를 보고 인의를 말했다”는 단락이 있다. 이에 대해 노자는 다음 문단과 같은 강론이 있다.


“날아오른 왕겨가 눈에 들어오면 세상이 뒤집힌 것처럼 느껴질 것이고, 모기에 물리면 밤새도록 잠을 잘 수 없을 것이오. 인의(仁義)는 인간 본성을 교란하고, 사람을 미혹하여 얼떨떨하게 합니다.


그대가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그 순박(淳朴)을 잃지 않게 하려면 마땅히 민속 풍습에 따라 자연스럽게 행하고,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라야 합니다. 도망자를 찾기 위해 북 치듯이 인의(仁義)를 소리 질러 팔고 떠벌려야 할 것이 뭐 있소.


백조는 매일 목욕할 필요가 없이 깃털은 자연적으로 희고, 까마귀는 매일 검은 색으로 물들일 필요가 없이 깃털은 자연적으로 검은색입니다. 까마귀의 검은 색과 백조의 흰색은 꾸밈없이 타고난 것이므로 논쟁의 여지가 없소.


명성은 (인의를 논하여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몸 밖의 그런 것이니 어차피 떠벌릴 가치가 없소. 샘물이 마르자 고기들이 육지에 모여 서로 습한 숨을 불어 물거품으로 적셔주고 있는 광경은 기특하다면 기특하다 할 것이오. 그러나 그런 잔재주를 부리는 것이 어찌 망망한 강이나 호수에서 서로 상대의 존재를 잊은 채 유유히 노니는 것만 하겠는가.” 


공자는 돌아온 후 3일 동안 침묵했다. 제자가 묻기를 “선생님께서는 노자를 만나셨습니다만, 그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하신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나는 진짜 용을 봤다! 용은 에너지를 합치면 하나의 체구를 이루고 분산시키면 아름다운 시문(華章)을 이루며, 구름을 타고 음양지간을 약동한다. 무심히 날며 만물의 근원인 음양을 따라 자기를 기르는 그것이 용이다. 나는 용과도 같은 노자를 만나 놀란 나머지 입이 크게 벌어진 채 거의 숨을 쉬지 못했는데, 그런 내가 어떻게 노자를 가르친단 말이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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