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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지학(古典之學)] 한자 속 선사시대 문명 (상편 1)

문화부  |  202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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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갑골문(甲骨文)이 가져온 변화

[SOH] 한자(漢字)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주역 (周易)》과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옛날 포희(庖犧)씨가 천하를 다스릴 때, 위로는 하늘의 상을 관찰하고 아래로는 땅의 법칙을 살폈다. 새와 짐승의 무늬와 땅의 적합성을 보고, 가까이는 자신에게서 취하고 멀리는 사물에서 취하여, 이에 팔괘를 만들어 신명(神明)의 덕에 통하게 했다. 황제(黃帝)의 사관인 창힐(倉頡)이 처음으로 문자를 만들었는데, 유형에 따라 상형을 하여 이를 문(文)이라 했다. 그 후 형(形)과 성(聲)이 서로 보완하여 이를 자(字)라고 했다.” 포희씨는 바로 복희(伏羲)씨로, 하늘의 모습을 우러러보고 땅의 이치를 굽어보며, 또 새와 짐승, 물고기, 벌레의 발자취를 관찰하여 팔괘를 발명했으며, 이로써 신명과 통할 수 있었다. 황제의 사관 창힐은 천지의 법칙을 본받아 사물의 서로 다른 유형에 따라 묘사하고 그려내어 문자를 발명했다.

시간이 오래되어 상고 시대의 정확한 역사 자료가 전해지지 않았고, 대대로 구전되어 오면서 ‘삼황오제’는 신화 속의 전설과 인물이 되었다. 특히 청말민초(청나라 말기, 민국 초기)에 서풍동점(西風東漸, 서양의 문화와 사상이 동양으로 점차 흘러들어옴)하면서 ‘의고(疑古, 옛것을 의심하다)’의 풍조로 인해 《이십사사(二十四史)》에서 서주(西周) 공화(共和) 원년 이전의 역사는 ‘위사(僞史)’, 즉 증명할 수 없는 역사로 불리게 됐다.

《이십사사》는 공인된 신사(信史)인데, 신사는 ‘문자로 기록된 신뢰할 수 있는 역사’로 정의할 수 있다. 기원전 841년의 서주 공화 원년을 분기점으로 하여 이후의 역사는 완전한 문자 기록이 있지만, 이전의 오제본기, 하본기, 은본기는 체계적인 문자 기록이 부족해 20세기 초에 ‘위사’라는 딱지가 붙었다.

1928년이 되어서야 중화민국 고고학원이 허난성에서 소둔(小屯) 은허(殷墟, 은나라의 수도)를 발굴했는데, 건축과 묘장 유적뿐만 아니라 대량의 상대(商代) 갑골 복사(卜辭) 문헌 자료도 있었다. 갑골문 기록을 더 깊이 연구한 결과, 역대 상왕(商王)의 연대, 월, 일과 점을 친 큰 사건이 《사기·은본기》의 서술과 기본적으로 일치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은허 갑골문의 발견은 《사기》가 채용한 역사 자료에 근거가 있음을 보여준다. 만약 《은본기》가 신뢰할 만하다면, 《은본기》 이전의 《하본기》를 의심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문자는 한 왕조의 실제 존재를 증명하는 핵심 정보다. 비록 아직 삼황오제와 하나라의 문자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상고 문물의 고고학적 발견이 늘어나면서, ‘의고’설이 주장하는 하나라와 삼황오제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설에 대해, 연구자들은 이미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볼테르가 《백과전서·역사》에서 말했듯이, “중국인들이 지구상의 모든 민족을 능가하게 만든 요소는, 그들의 법률이든, 풍속 습관이든, 또는 문인들이 그들 사이에서 사용하는 언어든, 4천 년 동안 한 번도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갑골문은 현재 보이는 가장 오래된 한자 서체로, 그중 한자가 4,500개 정도 있으며 2,000개가 해석되었다. 현재까지 발견된 갑골은 10만 개가 넘으며, 갑골에 새겨진 한자의 총수는 약 100만 자에 달한다. 이는 성숙하고 완전한 문자 체계로 《설문해자》의 ‘육서(六書)’가 갑골문에 이미 모두 갖추어져 있어, 이로써 한자의 기원이 갑골문 이전에 있으며, 더 이른 시기의 서사(書寫) 사용 역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설문해자》는 한자의 기원과 흐름을 기록한 저작으로, 9천여 한자를 수록했으며, 한자가 생겨난 본원을 추적했는데, 천상에서 지리까지, 기물(器物)에서 문화까지, 이 모든 것들을 포괄하여 《설문해자》가 모두 수록하고 해석했다.

《설문해자》는 소전(小篆)을 위주로 하며, 만약 고문(古文)과 주문(籀文)이 다르면 뒤에 열거했다. 하지만 동한 시대에는 상고 청동기 출토 수량이 적어서 종정명문(鐘鼎銘文)의 수량이 한정되어 있었다. 종정명문과 가까운 갑골문은 대략 3,300년 전 은상 시기에 사용되었는데, 허신(許愼)이 있었던 동한보다 1,500년 정도 이르며, 상형자를 위주로 하는 갑골문은 《설문해자》의 문자 기원 추적의 정확성을 입증했을 뿐만 아니라, 《설문해자》에 존재하는 일부 편차도 보완했다. 

《설문해자》와 갑골문을 결합하고 서로 검증하는 것은 이미 현재 세계에서 한자 석의(釋義)를 연구하는 통상적인 방법이 되었다.

2천여 년 전, 공자는 이렇게 탄식했다. “하나라의 예(禮)는 내가 말할 수 있으나, 기(杞)나라로는 증명하기에 부족하고, 은나라의 예는 내가 말할 수 있으나, 송(宋)나라로는 증명하기에 부족하다. 문헌이 부족해서이니, 충분하다면 내가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기나라는 하나라의 후예이고, 송나라는 은나라의 후예이다. 공자는 하·은 두 시대의 예는 비록 약간 말할 수 있지만, 문헌이 부족하여 검증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만약 충분한 문헌이 있다면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이래로 백년 동안, 갑골문이 때에 맞춰 나타났고, 100여만 자의 갑골문 자료는 후세 사람들이 하·상·주 삼대와 더 오래된 상고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창구가 되었다. 갑골문 연구는 이미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주목을 받는 학문이 되었다. (계속) / 明慧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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