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한자 속의 ‘삼황오제(三皇五帝)’
[SOH] (전 편에 이어) 문자로 기록된 역사가 ‘신사(信史)’라면, ‘신사’ 이전은 어떠할까? 문자 기록이 없는 시대는 일반적으로 ‘선사문명'(史前文明, prehistory)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삼황오제, 하나라, 상나라 반경이 은으로 천도하기 이전, 즉 갑골문이 출현하기 이전의 역사는 모두 선사문화 시기에 속한다.
《설문해자(說文解字·이하 설문)》에서 ‘황(皇)’에 대한 해석은 “크다는 뜻이다. 자(自)를 따른다. 자는 시작이다. 시황(始皇)은 삼황(三皇)을 말하니, 위대한 군주[大君]다”라고 되어 있다. 황제의 황 자는 특정한 의미가 있는데, 바로 ‘삼황’을 가리킨다. “시작이다”, “위대한 군주다”라는 것은, 삼황이 중화문명의 최초의 창시자임을 뜻하며, 일반적으로 삼황은 ‘복희씨, 여와씨, 신농씨’로 보지만, 다른 설도 있어 정론은 없으나, 복희씨는 각종 설에서 모두 인정하고 있다.
《예기·곡례(禮記·曲禮)》에는 복희가 혼례, 매파 등 일련의 혼인 제도를 제정하여 남녀 간의 관계가 더 이상 임의적이지 않게 되었고, 인륜도덕을 규범화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정이 있게 되자 사람들의 생활도 안배해야 했다. 복희는 사람들에게 그물 짜기와 고기잡이와 사냥을 가르쳤다. 《설문》에는 “망(網)은 포희가 새끼를 꼬아[結繩] 고기를 잡은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결승(結繩)이란 바로 그물을 짜는 것이다. 갈홍이 지은 《포박자》에서는 “태호(太昊)가 거미를 스승으로 삼아 그물을 짰다”라고 했다. 태호는 복희를 가리키는데, 거미가 그물을 치는 것에서 영감을 받아 새끼줄을 엮어 그물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았다.
삼황 중 각각의 성인은 서로 다른 사명이 있었다. 《설문》에는 “와(娲)는 상고의 신성한 여인으로 만물을 화육한 자이다”라고 되어 있다. 여와(女媧)는 상고 시대에 신력을 지닌 성인으로, 만물을 화육하고 천하의 어머니 됨의 법도를 보였다.
“황(簧)은 생(笙) 속의 황이다. 옛날에 여와가 황을 만들었다.” 《설문》에는 여와가 황이라는 악기를 발명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음악과 춤으로 천하 만물이 모두 교화되고 바르게 되어, 민덕을 도야하여 천하가 크게 다스려졌다.
신농이 백초를 맛보고, 밭을 갈고 땅을 파는 도구인 쟁기[耒耜]를 발명했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아는 이야기다. 《설문》에는 신농 씨의 성(姓)인 강(姜)에 대해 “강은 신농이 강수(姜水)에 거주하여 강을 성씨로 삼은 것이다”고 되어 있다.
《설문》은 신농이 거문고를 발명한 역사를 기록했다. “거문고는 신농이 만든 것으로, 붉은 실 다섯 줄을 써서 연습했고, 주나라 때 두 줄을 더했다.” 다섯 줄은 궁, 상, 각, 치, 우이며, 고금(古琴)은 “천지의 덕을 말하고, 신농의 화평함을 표현했으며”, 사람들의 정조(情操)를 도야했다.
이렇게 삼황은 인간의 윤리를 규범화하고 사람들에게 생활 기능을 전수하여 중화문명에 필요한 기초 조건을 다졌다.
신농씨의 후손은 이후 17대까지 이어졌는데, 모두를 염제(炎帝)라고 불렀으며, 마지막 대의 염제는 유망(榆罔)이라 했다. 유망 시기에 이르러 신농씨는 이미 쇠퇴했다. 이때 화하(華夏) 대지에는 중화문명의 큰 막을 여는 인문 시조가 탄생했는데, 바로 황제(黃帝)였다. 황제는 오제의 첫 번째이며, 황제 시기는 중국 5천년 역사의 시작이다. 중국인들이 흔히 ‘염황의 자손’이라고 하는 것은 염제와 황제가 우리 화하민족의 공동 시조라는 뜻이다.
《설문》에서 ‘제(帝)’에 대한 해석은 “제(諦)이다. 천하를 다스리는 호칭[王天下之號]이다”라고 되어 있다. 제는 심시(審視), 심찰(審察)의 뜻이며, ‘천하를 다스리는 호칭’이란 제가 천명으로 천하에 호령한다는 의미이다. 오제는 《역전(易傳)》, 《대대예기(大戴禮記)》 등의 기록에 따르면 황제, 전욱, 제곡, 요, 순이다.
■ 《설문》에서 황제와 관련된 글자:
“희(姬)는 황제가 희수에 거주하여 성씨로 삼은 것이다.” 황제는 거주지 희수의 희를 성씨로 삼았다.
“면(冕)은 대부(大夫) 이상의 관(冠)이다. 수연(邃延), 수류(垂瑬), 담광(紞纊). 모(冃)를 따르고 면(免)의 소리를 따른다. 옛날에 황제가 처음으로 면을 만들었다.” 황제는 관위(官位)를 설립하고, 관원이 쓰는 관면(冠冕)을 제작했다.
“치(畤)는 천지오제가 기초를 둔 곳으로, 지(地)에 제사지내는 곳이다. 전(田)을 따르고 사(寺)의 소리를 따른다. 우부풍(右扶風)에 오치(五畤)가 있다. 호치(好畤), 부치(鄜畤)는 모두 황제 시기의 제사다.” 오제 시기부터 천지에 제사지내는 전용 장소가 있었는데, 그중 부풍의 호치, 부치는 황제 시대의 제사 장소였다.
기록에 따르면 창힐이 한자를 발명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책이 남아있지 않을까? 《설문》에는 “전(典)은 오제의 책이다. 서(書)가 기(丌) 위에 있는 것을 따르니, 존중하여 각(閣)에 두었다는 뜻이다. 장도(莊都)가 말하기를, 전은 큰 책이라고 했다”라고 되어 있다. 전의 본뜻은 바로 오제 시대의 책이다. 고고학자들은 황제 시기에 주로 황하 유역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전책 문물이 황하의 흙과 모래에 밀려 묻혔을 수도 있어 발굴이 불가능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림3: 전(典), 갑골문,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전책(典冊)을 받들어 중요한 전례(典禮)를 기록함
일반적인 인상으로는 삼황오제가 신화 속에서 가공된 형상이지만, ‘활화석’이라 불리는 한자 속에는 삼황오제의 여러 측면의 정보가 진실하게 보존되어 있다. (계속) / 明慧網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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