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전편에 이어) 굴원(屈原)은 《초사·천문(楚辭·天問)》에서 이렇게 썼다. “하해(河海)의 응룡(應龍)은 어떤 역정을 겪었나? 곤(鯀)은 무엇을 하였나? 우(禹)는 무엇을 이루었나?” 하해(河海)의 응룡(應龍)은 어떤 경력이 있었나? 우의 부친 곤이 치수할 때 용은 어떤 역할을 했나? 우는 부친의 사업을 이어받아 어떻게 성공했나?
동진(東晉)의 갈홍(葛洪)은 《포박자(抱朴子)》에서 이렇게 썼다. “우는 두 마리 용을 타고 곽지(郭支)가 수레를 몰았다.” 대우(大禹)는 치수(治水)할 때 용을 타고 다녔다. 《태평광기(太平廣記)》는 《습유기(拾遺記)》를 인용하여 말했다. “우는 수로를 만드는 데 힘을 다했고 물길을 터서 산을 평평하게 했다. 황룡(黃龍)이 앞에서 꼬리를 끌었고 현구(玄龜)가 뒤에서 청니(靑泥)를 짊어졌다.” 황룡은 응룡을 가리키며 대우가 치수할 때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는 천명을 받들어 구주도(九州圖)를 다스렸고 하늘은 황룡, 현구 등의 신수(神獸)를 배치해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했다. 용은 중국문화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용의 출현은 상고시대부터 역대로 이어져 《이십사사(二十四史)》에서 용이 각지에 자주 출현했으며 하늘이 보여주는 징조로 여겼다.
《설문해자(說文解字)》는 용의 특징을 명확하게 정리했다. “용은 비늘 있는 짐승 중에서 가장 크다. 어둠 속에 숨을 수도 있고 밝은 곳에 나타날 수도 있으며, 작게 변할 수도 있고 크게 변할 수도 있으며, 짧게 변할 수도 있고 길게 변할 수도 있다. 춘분(春分)에는 하늘로 올라가고 추분(秋分)에는 깊은 못으로 잠긴다.”
대우가 치수에 성공한 후 하(夏) 땅에 봉해져 하·은·주(夏殷周) 삼대(三代)의 첫 번째 나라인 하나라를 열었다. 《설문해자》는 “하는 중국의 사람(中國之人)이다”라고 했다. 하는 현재의 산시(山西)성 윈청(運城)에 있으며 대우는 하에 도읍을 세웠다.
땅이 평평해지고 하늘이 이루어져 구주도가 새로워졌다. 《설문해자》는 “정(鼎)은 다리가 셋이고 귀가 둘이며 오미(五味)를 담는 보배로운 그릇이다. 옛날 우가 구주의 쇠를 모아 형산(荊山) 아래에서 정을 주조했다. 산림과 천택(川澤)에 들어갈 때 도깨비와 요괴들을 만나지 못하게 했으니 이는 천체를 받들어 이룬 것”이라고 했다.
정은 청동기로 주조한 예기(禮器)로 다리가 셋이고 귀가 둘이며 천지(天地)에 제사 지내는 제품을 담는 데 사용했다. 대우는 구주도의 구리를 모아 형산 아래에서 정을 주조했으며, 정이 산림과 강호(江湖)를 지날 때 도깨비와 요괴 같은 정령들이 감히 나타나지 못했는데, 이는 정이 후덕(厚德)함을 지니고 있어 천의(天意)를 받든 위엄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의 유래에 대해 《사기·봉선서(史記·封禪書)》에서 한무제(漢武帝)가 신하들에게 물었을 때 많은 대신은 이런 말을 알고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상고의 태제[泰帝, 태호(太昊)]가 신정(神鼎) 하나를 만들어 일통(一統)의 의미를 취했으며 천지만물의 시작이 모두 조화의 공(功)이라는 것을 상징했다고 한다.
황제는 보정(寶鼎) 셋을 만들어 천지인(天地人)이 합일됐다는 것을 상징했으니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사람도 크다는 것이다. 우는 구주의 쇠를 모아 구정(九鼎)을 주조하여 ‘구주도’를 나누었으니 신주(神州)의 수재(水災)를 제거하고 화하(華夏)가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상징하므로 후세에는 혁고정신(革故鼎新)이라고도 했다.
20세기 1920년대에 고고학자들은 중국의 정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약 7천 년 전의 양소문화(仰韶文化)에서 이미 도정(陶鼎)인 력(鬲)이 출현했고 후에 점차 동정(銅鼎)으로 발전했다. 《설문해자》는 “력은 정에 속한다. 다리가 셋이다”라고 했다. 고고학자들을 당혹스럽게 한 것은 이런 오래된 도정이 한자처럼 중국에만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이는 중화문명만이 가진 문화 현상으로, 일본의 저명한 고고학자 하마다 고사쿠(濱田耕作)는 “력은 중국만이 가지고 있으니, 대개 정이 여기서 시작됐다”라고 말했다.
《사기(史記)》는 황제가 정을 주조할 때의 광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황제가 수산(首山)의 구리를 캐서 형산 아래에서 정을 주조했다. 정이 완성되자 용이 수염을 늘어뜨리고 내려와 황제를 맞이했다.” 저자는 ‘내려와 맞이했다(下迎)’라는 표현을 썼다. 황제는 본래 하늘의 천제(天帝)로, 하계에 내려와 중화 5천 년 문명의 대막을 열었다. 황제는 정으로 하늘에 고하고 용을 타고 돌아갔으니, 이것이 바로 ‘정성룡거(鼎成龍去: 정을 만들고 용이 떠나다)’의 유래다.
황제가 형산에서 정을 주조했고 대우도 형산에서 정을 주조했는데, 이는 황제가 덕(德)으로 다스리는 선하(先河)를 열었음을 계승한다는 의미다. 정으로 덕을 상징하고 “천지인(天地人)이 정족(鼎足)처럼 셋이다”라는 것을 뜻하니, 중화문명의 ‘천인합일(天人合一)’ 신전문화(神傳文化)의 여정이 이로부터 시작됐다. (끝) / 明慧網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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