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산책(唐詩散策)
[21회] 강물은 예나 지금이나 하염없이 흘러간다
< 滕王閣詩 등왕각시>
중국문학의 흐름에 대해 漢文한문, 唐詩당시, 宋詞송사, 元曲원곡, 明淸小說명청소설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각 조대마다 가장 성행했던 문학 장르를 결부시킨 말이다. 중국역사의 황금기인 당나라 때(618∼907)를 대표하는 문학이 바로 당시이다. 이 당시의 발전을 흔히 초당(初唐: 618∼712), 성당(盛唐: 713∼765), 중당(中唐: 766∼835), 만당(晩唐: 836∼906) 등 4기로 나눈다. 초당기는 당시의 준비기로서 절구(絶句)와 율시(律詩)의 기반을 닦은 시기다. 아래 등왕각시를 지은 왕발, 양형, 노조린, 낙빈왕, 유희이, 왕한 등으로 대표된다.
滕王閣詩 등왕각에 부치다 王 勃
등왕각시 왕 발
滕王高閣臨江渚 등왕의 높은 누각, 강가에 우뚝 서 있는데
등왕고각임강저
佩玉鳴鸞罷歌舞 패옥의 방울소리, 가무도 그쳤다.
패옥명란파가무
畵棟朝飛南浦雲 아침이면 단청 기둥에 남포의 구름이 날아들고
화동조비남포운
珠簾暮捲西山雨 저녁이면 주렴을 걷고 서산의 비를 바라본다.
주렴모권서산우
閑雲潭影日悠悠 물에 비친 한가로운 흰 구름은 언제나 유유한데
한운담영일유유
物換星移幾度秋 사물이 바뀌고 별이 옮아가 가을은 몇 번이 지났던가?
물환성이기도추
閣中帝子今何在 누각에서 놀던 왕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각중제자금하재
檻外長江空自流 난간 밖에 장강만이 하염없이 흘러가누나.
함외장강공자류
[주석]註 : 滕 등(나라이름), 江渚강저(강가/강기슭), 佩玉 패옥(허리띠에 차는 노리개), 鸞 난(봉황새의 일종/천자의 수레에 다는 방울), 罷 파(그만두다/그치다), 畵棟 화동(색칠한 기둥), 捲 권(말다), 物換星移 물환성이(만물이 바뀌고 별이 이동함/세상의 변천), 帝子 제자(황제의 아들/등왕 이원영을 말함), 檻外 함외(누각 난간 밖)
[해설]이 시는 왕발이 당 고종(高宗) 상원(上元) 3년(676) 교지(交趾, 베트남)북부지사로 좌천되어 계신 아버지를 찾아 가는 길에 홍주(지금의 강서 남창)를 지나다가 ‘등왕각’ 중수 연회에 참석하였다. 왕발이 즉석에서 ‘등왕각서(滕王閣序)'를 지은 뒤에 문장 끝에 이 시를 붙였는데, 그 내용이 간결하고 함축적이어서 문장의 내용을 개괄하고 있다. 등왕각에 올라 회고에 잠겨, 구름과 비·해·강물 등 자연은 예나 다름없는데, 세상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탄식하고 있다.
이 등왕각(滕王閣)은 당 고조 이연의 아들 이원영(李元嬰)이 홍주자사로 있을 때 지은 누각으로 그때 이원영이 등왕(滕王)으로 封爵봉작되었으므로 ‘등왕각’으로 불리어지게 되었다.
나중에 홍주도독 염백서(閻伯嶼)가 부임했을 때에는 등왕각이 건립된 지 50여년이 되어 황폐하였으므로 때마침 보수를 하고 9월 9일 빈객을 모아 연회를 베풀었다. 도독 염백서는 그의 사위 오자장에게 미리 ‘등왕각’에 대한 글을 짓게 해놓고 당일 연회에서 사위자랑을 하려고 하였다. 마침내 연회당일 손님들이 모였으므로 종이와 붓을 내어 좌중의 손님들에게 글을 지으라고 청하니 아무도 짓는 자가 없었다.
염백서의 계획대로 되어 가는데, 참석자 중 가장 나이가 적은 왕발(29세)에게 기회가 왔다. 왕발은 조금도 주저하는 기색이 없이 붓을 들었다. 이때 왕발이 지은 ‘등왕각서’와 마지막에 붙인 이 시가 너무나 빼어나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얼빠진 표정이 되었다고 한다.
(다음에는 왕창령의 ‘부용루송신점(芙蓉樓送辛漸)’ 편으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