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著: 육서성
演記: 한치선(타타오)
[SOH] 마시는 그녀가 폭발하여 인류를 쓸어버릴 것이 걱정되어 얼른 말을 올렸다.
“어쩌면 여와낭랑님의 그림에 순수한 예술성을 느낀 한 남자의 팬심이 아니었겠습니까? 꼭 무도하고 어리석을 것까지야…”
여와는 시퍼렇게 빛을 발하는 눈을 하고는 마시를 노려보고 말했다.
“너, 문자요정! 니가 내 말을 풀어라! 무도함이 무엇이고 어리석음이 무엇인가?”
마시는 여와의 추상 같은 기세에 눌려 더듬거리다가 말했다.
“주왕은 천박한 인간 주제에 거룩한 모성 격인 천신에게 욕정을 품었으니 생명의 층차에 심히 어긋나고 천륜에도 벗어나므로 그를 일러 무도(無道)라 합니다. 그리고…”
“옳커니! 니 말 잘한다. 계속해봐라.”
“그가 인간계 병 중의 병- 색욕(色慾)이라 하는 병이 깊어 그 얼이 썩어가니 얼이 썩음, 즉 어리석음이라 하신 것 아닙니까?”
“흡족하게 말 한번 잘 풀었구나! 좋아, 그럼 저 무도하고 어리석은 인간을 내 어찌해야 하겠느냐?”
“단매에 쳐죽여야 마땅한 줄 아뢰오!”
말을 뱉어 놓고는 마시는 얼른 자기 입을 막았다.
“그렇지? 나도 당장 쳐죽일 생각이니라! 벽하동자, 게 있느냐?”
여와의 부름에 나타난 것은 푸른 난(鸞)새였는데 그 등에는 수레와 같은 좌석이 부착되어 있었다. 여와가 그 자리에 오르자 마시도 따라 조수석에 날렵하게 뛰어 올라탔다.
“벽하동자야! 저 무도한 주왕의 궁으로 가자!”
여와의 명이 떨어지기도 전에 난새는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나는 바람에 마시는 놀라 수레의 앞손잡이를 꽉 붙잡았다.
“낭랑께선 주왕을 어떻게 하시려고요?”
여와는 품 속 오색수가 놓인 주머니에서 은구슬 하나를 꺼내어 보여주었다.
“앗! 설마 그 무서운 것을 던지시려고요?”
“이 만파옥(萬破玉) 하나를 던지면 주왕은 물론이고 저들의 수도 조가(朝歌)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리라!”
마시는 여와의 말에 걱정이 되고 불안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는 그 엄청난 장면을 보고 싶어하는 자신을 느껴 마음이 싱숭생숭하였다.
순식간에 그들의 난새는 조가의 중심부 주왕의 궁 바로 상공에 이르렀다. 내려다보니 주왕이 개미처럼 꼬물꼬물 보이다가 확대되었다. 주왕은 마침 은교(殷郊)와 은홍(殷洪)이라는 두 아들의 배알(拜謁)을 받고 있었다. 여와는 씨익 웃으며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흥! 잘됐구나. 주왕과 그 자식들까지 와있는 저 한가운데로 만파옥을 떨어뜨려 주어라!”
마시는 덜덜 떨며 물었다.
“지, 지금 저에게 말씀하신 것이옵니까?”
“그럼 내가 하랴? 받아라!”
여와는 만파옥을 휘릭 마시에게 던졌고 마시는 허겁지겁 그 구슬을 옷자락으로 받았다. 마시는 방학과제 하나 하러 왔다가 이게 무슨 꼴인가 싶어 눈물이 쏘옥 나올 지경이었지만 그것을 거부할 수도 없어 안절부절 하는데 두 아들의 머리에서 붉은 빛이 치솟아오름을 보았다.
‘아니, 이 빛은?!’
여와 역시 그 빛을 발견하고는 저으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 주왕과 두 자식도 봉신방에 이름이 올라있는 게로구나? 이리도 치성한 빛이 머리 위로 솟는 것을 보니.”
“그렇습니다. 봉신방에 이름이 올라있는 사람을 셋이나 죽여버리면 천계에서도 여와낭랑께서 소명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마시의 말이 일리가 있는지라 여와는 붉으락푸르락하더니 손가락을 세워 뭔가를 세어보았다.
“저 혐오스런 인간의 수명이 아직도 28년이나 남았구나! 이 수치심을 어이 씻을꼬?”
여와는 분을 삭이지 못해 난새의 수레를 빙글빙글 돌리더니 갑자기 멈추고 마시에게 물었다.
“난 저 주왕의 시 마지막 구절이 눈에 어른거려 참으로 화를 누를 수가 없구나! 나를 품고가서 오래도록 즐기겠다고? 자네가 뭔가 방법을 대보아라! 방법이 없이 28년을 기다리라고 나불댄다면 니 등짝에 이 만파옥을 묶어 하계 아무데나 던져버릴 것이다!”
마시는 여와의 무서운 기운에 얼굴이 퍼렇게 질린 채 겨우 입을 열고는 조그마하게 대답했다.
“주왕이 미색을 밝힘이 정히 혐오스러우시다면…”
“그렇다면?”
“그의 그런 성정(性情)이 그를 스스로 멸망에 빠뜨리도록 하심이 어떠합니까?”
여와는 마시의 말을 듣더니 서서히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구름궁으로 돌아가 주변에 소리쳤다.
“채운(採芸)동자 어디있느냐? 후궁에 가서 금호로(金葫蘆)를 가져오니라!”
채운동자는 여와의 품속에서 스르르 나오더니 그녀의 급한 성정을 익히 아는듯 화살보다 빠르게 날아가 금호로를 대령했다. 여와는 고갯짓으로 마시에게 그 뚜껑을 열라는 신호를 보냈다. 마시는 그 호로병을 신기한듯 바라보다가 뚜껑을 열어 붉은 섬돌 아래 세워두었다. 그러자 호로에서 청랭한 한줄기 빛이 솟아오르더니 기둥처럼 굵게 퍼져가며 사람 몇길 만큼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상부에 깃발이 하나 보이는데 거기서부터 천갈래 빛이 사방으로 뻗쳐나갔다. 마시는 놀라 뒤로 물러서며 물었다.
“이것이 무엇이옵니까?”
“세상의 모든 요괴를 부르는 초요번(招妖旛)이니라.”
■ 경국밀지(傾國密旨)... 제국을 무너뜨릴 무서운 밀지
잠시 후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며 짙은 안개가 자욱해지더니 음산한 핏빛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났다. 바람이 미친듯이 이리저리 황망하게 불어대다 여기저기서 셀 수 없는 크고 작은 요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일제히 여와 앞에 무릎을 꿇고는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공포스러우면서도 일대 장관이었다.
채운동자는 마시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굶주린 요괴들도 있으니 눈을 가리시게! 눈빛을 보면 저들은 식욕을 참지 못 한다네!”
마시는 황급히 눈을 가렸고 마침 다가오던 외눈박이 요괴가 그녀 앞에 이르러 코를 벌름거리다가 돌아섰다.
여와가 허공을 찢듯이 말했다.
“천하 각처에서 모인 요괴들은 전부 물러가고 황제 헌원의 무덤에서 나온 세 요괴만 남아 명령을 기다려라!”
이에 썰물처럼 요괴들이 빠져나가고 마침내 세 요괴만 남아 여왕께 배알(拜謁)하였다.
“낭랑이시여! 천지보다 더한 수명을 누리소서!”
“너희는 스스로를 밝혀보아라!”
“천년 묵은 젊은 여우 호리정(狐狸精), 낭랑을 뵈옵니다.”
“머리 아홉 꿩의 정령 치계정(雉雞精)이 낭랑을 뵈옵니다.”
“옥석같이 매끄러운 비파(琵琶)의 정령 비파정(琵琶精), 낭랑을 뵈옵니다.”
“세 요괴는 내 밀지를 받들라. 분명 밀지(密旨)라고 했느니라.”
“예! 천지가 닫히는 그날까지 비밀로 간직하리이다. 안심 하소서!”
마시는 이 즈음에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세 요괴를 실눈으로 쳐다보았다.
천년 묵은 여우는 비록 짐승이라고는 하나 푸르른 눈빛과 은빛 털이 곱게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모습이었으며 특히 풍성한 꼬리털은 한 올마다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것이 사뭇 매혹적이었다.
머리 아홉 꿩의 정령 역시 찬란한 색들이 어우러진 깃털로 빽빽이 감싸인 그 자태가 뇌리에 깊이 각인되는 힘이 있었다.
비파정령은 말 그대로 옥처럼 매끈한 피부가 돋보여서 보는 이의 심금을 흔드는 힘이 있었다.
여와는 말을 이었다.
“상나라의 기운이 이제 다하려 하고 서주(西周)의 기산(岐山)에 봉황이 울어 새로운 성군이 이미 태어났느니라. 너희 셋은 요괴의 형상을 감추고 몸을 조가성의 궁궐에 깃들어 저 주(紂)라고 이름한 왕을 홀리도록 하여라. 그리하여 머지않은 날에 주나라의 새로운 왕이 이 무도한 상왕을 무너뜨릴 수 있도록 썩은 토대를 마련하여라! 알겠느냐?”
세 요괴는 서로를 보더니 쭈뼛거렸고 마침내 비파정령이 난색을 표했다.
“낭랑님의 지엄하신 분부이오나 저희 소임이 황제 헌원님의 묘인 음택을 지키는 일이온데 겸직을 주시면 곤란하옵니다.”
“내가 아까 헌원님 만나고 오는 길이다. 내가 잘 말해둘 터이니 걱정 말아라.”
아홉머리 꿩의 정령이 또 아뢰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의 괴이한 모습을 하고 주왕을 유혹한다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옵니다. 하오니…”
여와가 발칵 화를 내며 언성을 높이자 그 진동에 황금기둥 하나가 충격을 받아 부서지고 말았다.
“너희들! 그게 지금 천하 요괴의 삼대장인 너희들이 할 말이냐? 자신 없거든 썩 꺼져라!”
그러자 천년여우가 슬며시 고개를 들며 씨익 웃었다.
“자신이 없지는 않사옵니다. 우리가 작심하고 준비하면 한 우매한 인간을 미혹시키는 것은 일이 아니오나, 이 오래 된 왕조를 무너뜨리는 일은 결코 수월찮은 일이온데 그 일을 이루고 나면…”
“댓가를 묻는 것이냐? 이 여우 같은…”
“댓가라기 보다 혼신을 바쳐 일하고자 하면 뭔가 열매를 기대할 수 있어야 하지 않사옵니까?”
"그래, 바라는 게 뭐냐?"
"인간을 제외한 생명들은 아무리 수련해도 정과를 얻을 수 없으며 심지어 오백년, 천년에 한 번씩 천살을 당하곤 합니다. 우리야 황제사당에 헌신한다 하여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습니다만... 일을 성취하면 우리에게 부디 정과를 주시길 청하옵니다."
여와가 코웃음을 치더니 말했다.
"정과라? 그건 나도 줄 능력이 없느니라. 스스로 닦아 얻을 수 밖에. 그러니 너희에게 그 정과의 가능성을 가진 인피(人皮) 하나씩을 주면 어떠하냐?"
꿩정령과 비파정령은 여와의 말에도 별 반응이 없었으나 천년여우는 감격에 겨워 벌떡 일어섰다.
“인피! 정녕 인피를 주신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수련하여 언젠가는 원만(圓滿)의 정과(正果)를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여와는 잔뜩 생색을 내는 투로 두 팔을 벌려가며 장엄하게 말했다.
“그렇다. 인피를 얻고 나선 무한정의 고층차를 향한 문이 열려있으니 뭐든 가능하다. 허구한 날 기껏해야 인간의 몸에 기생하여 조종하려 했던 너희에게는 백천만겁이 흘러도 얻기 어려운 기회가 아니겠는가? 실제 인피의 주인공인 원신이 되어 니환궁에 들어앉아 인신이라는 소우주를 주재하며 단전(丹田)에서는 신비로운 생명체를 산생할 수 있는 위대한 창조자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천년여우는 아직 잘 이해를 못하는 두 정령에게 속삭여 주었다.
“너희는 아느냐? 인피에는 우리에게 없는 니환궁과 단전이 있단다! 그 차이로 인해 인간은 신이 되는 비밀의 길이 열려있다는 말이다! 이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니냐?”
요괴들은 그제야 어렴풋이 실감하면서 기뻐 어쩔 줄을 몰라 서로의 볼을 꼬집어 보기까지 했다.
그들이 그리 좋아하는 것을 보고 의아해하는 마시에게 채운동자가 귀띔해 주었다.
“저들은 인간이 아닌지라 한량없는 세월을 도를 닦아도 정과를 얻을 수 없게 되어 있는데 이번 일로 정식 신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받을 수 있다니 얼마나 기쁘겠소?”
여와는 그들을 진정시키며 말을 이었다.
“다만 인피를 갖게 되더라도 저들 하계의 무지렁이 인간들처럼 오욕칠정에 빠져 살면 지금의 너희보다 나을 것도 없느니라. 바른 법을 만나 법다이 수련을 해야 고층차로 올라갈 수 있는 법! 즉 인피가 있다고 누구나 원만득도하는 것은 어림도 없다는 것을 알아라. 게다가 앞으로 세월이 흐를수록 인피는 점점 수요가 부족해질 것이다. 우주의 말겁이 임박하니 이 인피를 한 장 얻어 정과를 얻고자 고층차의 신들이 대거 몰려들 것이니...”
천년여우가 머리를 연신 조아리며 말했다.
“얼마나 간절히 바랬던 인간의 몸입니까? 저는 인피를 입는 영광을 입게 된다면 목숨을 걸고 미친듯이 시간을 다그쳐 바른 스승님을 찾을 것이며 반드시 원만득도를 향해 일로매진(一路邁進)할 것을 하늘 땅에 맹세하는 바입니다!”
“좋다! 다만 조심할 것이 있나니 이번 대업을 이루는 과정에서 무고한 생명을 함부로 해치면 안 되느니라! 그리고 너희 중 누가 가장 큰 공을 세우는지 보리라. 그에게는 가장 훌륭한 인피가 주어질 것이다."
세 요괴는 머리를 몇 번이나 조아리며 답을 했고 여와가 물러가라는 손짓을 하자 스르르 몸을 돌려 빠져나가는데, 그 중 비파정령이 마시를 보더니 붉은 입을 헤- 하고 벌리며 입맛을 다셨다. 그러자 천년여우가 비파정령의 어깨를 툭 건드리며 말했다.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입맛을 다시는가?”
그리고는 마시 옆을 지나면서 여우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 아이는 인연이 있더라도 나랑 있거든?”
그 요괴들이 연기처럼 화하여 빠져나간 후 여와는 마시에게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요정아! 네 덕에 이렇듯 우아한 방법을 취하여 하늘의 뜻도 이루고 내 모욕도 씻게 되었구나! 뭔가 바라는 상이라도 있느냐?”
마시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대답했다.
“저는 달리 바라는 바 없습니다. 하늘이 인간의 역사를 배후에서 조종하려는 이 현장을 본 것만으로도 영광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저 여우가 저와 무슨 인연이라도 있습니까?”
여와는 마시의 질문에 잠시 멈칫하더니 눈을 감았다가 뜨고는 말했다.
“넌 과거세에 저 여우를 활로 쏘아 맞힌 적이 있구나?”
“네에?”
“네가 무술을 즐기는 공주였는데 닭을 자주 잡아먹는 여우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는 기어코 그 여우를 추적하여 활로 쏘아 맞혔지. 그 여우는 피를 뚝뚝 흘리며 겨우 어느 흑마술사의 동굴로 숨어들어가 목숨은 보존했지만 더 이상 닭사냥을 나설 수 없게 되었고 그로부터 동굴에서 흑마술을 닦는 공부를 하게 되었던 거야. 그리고 천년이 흘러 지금은 꽤 신통력을 갖추게 되었으니 저를 길에서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해는 게 좋겠다.”
마시는 깊이 절을 하며 말했다.
“전생의 인과 알려주시니 감사하옵니다. 이제 제가 감히 하나의 어려운 청을 드리자면…”
“그래 무엇을 바라느냐? 이 여와에게 어려운 청이 무엇이 있을까? 우습구나.”
“저를 이 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아가씨의 몸 속에 깃들게 해주소서!”
여와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만 그 목적이 무엇이냐?”
“저 또한 미색으로 주왕을 홀려내어 장래 나라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가 일어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워 천도를 따르고, 나아가 여와낭랑님의 위덕을 드높게 세우는데 미력하나마 힘을 더하고 싶사옵니다.”
“하지만 내 이미 저들에게 그 일을 맡겼거늘…”
“저들은 그래봤자 하나같이 늙은 요괴이고 저는 본디 꽃다운 요정이옵니다. 주왕이 누구에게 미혹되리라 보십니까? 깊이 헤아려 주십시오!”
여와는 당돌한 마시의 요청에 어안이 벙벙한듯 한동안 대답을 미루고 있었다.
*이제 여와에게 올린 마시의 청이 수락될까? 그리고 세 요괴는 어떻게 주왕에게 접근할 것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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