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중국공상은행(ICBC) 런던 지점이 중국 정부의 글로벌 지정학적 야욕을 뒷받침하는 금융 허브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유출된 문서에는 내부 이메일을 비롯해 의심 거래 기록, 은행 내 조직된 공산당위원회의 지시문 등도 포함되어, 공상은행이 서방의 제재를 무시하고 독재 정권과 제재 대상 재벌들의 자금을 세탁·지원해 온 실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 국제 제재 무시하고 독재 정권·올리가르히 지원
일반적인 상업은행과 달리 ICBC는 중국 재정부와 국영 기관이 대주주로, 상업적 이익과 공산당의 정치적 목적을 동시에 수행하는 구조적 특성을 지닌다.
특히 이번에 유출된 문서의 상당수는 대출 계약서와 심사 서류였으며, 해당 거래가 중국에 이득이 되는 이유를 명시하는 '차이나 래셔널(China rationale)' 항목도 포함되어 있었다. ICBC는 금융 리스크가 큰 대출을 승인할 때마다 시진핑 정부의 ‘일대일로’와 ‘중국제조 2025’ 등 국가 정책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처럼 국가 정책을 최우선시하는 구조 탓에, 서방 은행들이 부패와 제재 위험으로 기피한 글로벌 고위험 고객들이 ICBC 런던 지점으로 대거 몰려들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단행된 러시아 재벌(올리가르히) 지원이다. 서방이 러시아산 니켈 수입을 전면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ICBC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인 올레크 데리파스카가 지분을 보유한 광산기업 '노르니켈'에 위안화 대출 등 금융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했다. 그 결과 ICBC는 러시아 침공 이후 오히려 러시아 내 매출이 2배 이상 급증하는 특수를 누렸다.
미·중 패권 경쟁의 중심에 선 화웨이의 '자금 도피처'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미국 법무부가 대북·대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화웨이를 기소한 직후인 2019년 초, ICBC 런던 지점은 자체 준법감시 부서조차 모르게 13억 달러(약 1조 8,000억 원)에 달하는 화웨이의 긴급 자금을 중국 본토로 신속하게 이체해 주었다. 내부 규정인 리스크 검토 과정을 통째로 건너뛴 초법적 지원이었다.
제재 대상인 독재 국가들과의 검은 거래도 잇따랐다. 러시아 군에 군용 트럭을 공급해 국제 제재를 받은 벨라루스 국영 자동차기업(MAZ)의 합작 사업에 ICBC 계좌가 전방위로 활용됐다. 이들은 제재망을 피하기 위해 제3국을 통해 부품을 우회 공급하는 모의까지 서슴지 않았다.
또한, 아제르바이잔의 독재자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의 두 딸이 소유한 파샤 은행(Pasha Bank)의 계좌를 개설해 준 사실도 드러났다. 당시 은행 내부 분석가들은 이 자금이 부패와 얽혀 있음을 인지하고도, "아제르바이잔 사법당국이 독재자인 아버지의 통제 하에 있어 조사받을 리 없다"며 노골적으로 자금 세탁을 묵인했고, 이 계좌는 수년간 유지되다 뒤늦게 정리됐다.
■ 내부 준법감시 붕괴와 묵살된 경고
중국공상은행(ICBC) 런던 지점과 영국 자회사의 내부 기밀문서 480만 건이 유출되면서, 2019년 당시 자금세탁 보고 담당자가 은행의 높은 금융 범죄 위험 사업 정리 의지 부족을 지적한 내부 메모가 공개되었다.
쿠웨이트 전 총리의 아들이 10억 달러 규모의 말레이시아 국책펀드(1MDB) 횡령 자금을 세탁하는 과정에서 내부 직원의 경고가 묵살됐으며, 체포된 지 수개월이 지나서야 당국에 의심 거래 보고서가 제출됐다.
이미 미국, 캐나다, 룩셈부르크 등 규제 당국으로부터 금융범죄 방지 규정 위반으로 수천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은 ICBC는 전 세계 10여 개국에서 유사한 준법 감시 결함 지적을 받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 ‘하나의 정책’과 지정학적 리스크
2024년 여름, ICBC 런던의 최고위험책임자(CRO)가 작성한 내부 프레젠테이션은 "중국과 러시아의 밀착 관계가 서방과의 마찰을 부르고 있으며, 지정학적 리스크가 '적색(위험)' 단계에 도달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베이징 본점은 시진핑의 '일대일로' 구호를 본딴 "하나의 지점, 하나의 정책(One branch, one policy)"을 강조하며 전 세계 해외 지점이 본점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폭로에 대해 중국 정부 측은 해외 금융이 철저히 시장 규칙을 따른다며 해당 보도를 "허위 서사"라고 부인했으나, ICBC 본사는 침묵을 지켰다.
국내에서도 대규모 자산을 운용 중인 ICBC 한국 지점들(서울·대림·건대입구 지점 및 부산지점)의 지배구조상 배경과 맞물려, 이번 사태로 촉발될 서방의 중국계 국영 은행 압박 수위와 그 향방에 귀추가 주목된다.
디지털뉴스팀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