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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일찰정난(一札定難)... 한 장의 편지로 난을 평정하다

문화부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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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著: 육서성 
演記: 한치선(타타오)    

[SOH] 소호는 잔치를 베풀어 서로 술을 권하면서 즐거이 마시며 그간 조가에 가서 천자와 거기 간신들과 있었던 일들을 소상히 이야기 했음은 물론이다. 

숭흑호가 대답했다.

“이 아우가 이곳에 온 것은 사실은 제 친형 우호와 소호형 사이에 공연한 피바람을 멈추게 하고 기주성 포위를 풀어드리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아드님인 전충이 제가 청한 아버지와의 대화를 묵살하고 싸우려 달려들기에 일단 붙잡아 진영에 감금해 두고 있는데 이것도 실은 형님을 위해서 입니다.” 

그렇게 무정해 보이던 아버지 소호였다지만 막상 아들 이야기가 나오자 가슴이 복받치는듯 울음 한자락을 삼키고 있었다.

한편 그렇게 믿었던 동생 흑호가 의외의 무명 적장에게 산채로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은 숭후호는 휘청거리다가 쓰러질 뻔했으나 부장들이 부축하여 의자에 앉히자 반쯤 넋이 나간듯 중얼거렸다.

“이게 무슨 소리냐? 흑호가 잡혀갔다니…이 세상에 누가 내 아우를 산채로 잡아갈 수 있단 말인가? 오! 하늘이여!”

그가 비탄에 잠겨 있을 때 서백후의 사신이 왔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숭후호는 기분이 영 내키지 않으면서도 사신을 만나지 않을 수도 없는 입장이어서 손짓으로 들라는 표시를 하였다.

사신인 대부 산의생이 장막 안으로 들어와 예를 올렸다.

“소생 산의생(散宜生) 군후께 인사 올립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았소! 그런데 당신의 주군께선 어찌 기회만 엿보면서 실제 군대를 파견하지 않는게요? 이것은 천자를 무시하고 조정의 뜻을 거역한 것이 아니오? 내가 후일 천자 앞에 가서 뭐라 아뢰야 할 것인지 대부가 여기 오셨으니 말 좀 해보시오!”

심뽀가 비틀어진 숭후호의 거친 말에도 산의생은 미소를 지으며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저의 주공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무기는 흉기인지라 부득이(不得已)한 경우에만 써야 한다고. 지금 작은 일로 인해 병사들을 힘들게 하고 재물을 낭비하며 집집마다 두려움에 놀라게 할 일이 아니라 하십니다.”

“흥! 온갖 좋은 말씀은 다 하시지만 그럼 서백후께선 피흘리지 않고 이 사태를 봉합할 무슨 대책이라도 있다는 거요?”

산의생은 비단주머니에서 두루마리 편지를 하나 꺼내어 들며 말했다.

“이 편지 한 장이면 전쟁은 끝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 내용도 아주 간단합니다. 이제라도 소호께서 천자의 청을 받아들여 딸을 조가로 보내라는 대책입니다.”

“핫핫핫! 서백후께선 세상 일을 너무 쉽게 보시는구먼! 그렇게 편지 한장에 딸을 보낼 소호 같으면 반역시를 써다 붙이고 감히 우리 천자의 군과 피 튀기며 싸웠겠소?”

산의생은 싱긋 웃음을 띠며 일어섰다.

“제가 지금 당장 이 편지를 소호님께 전할 것인즉 그 결과를 보시고 그 다음 대책을 강구하셔도 늦지 않겠지요!”

“알아서 하시오! 아마도 목숨이 두개는 되시나 본데…지금 저 기세등등할 소호에게 그런 편지를 줬다간 살아 돌아온다는 보장은 못할 거요!”

산의생은 대답없이 몸을 천천히 숙여 예를 갖춘 후 돌아나와 단지 두명의 수행원만을 데리고 기주성을 향했다.

“군후께 아룁니다! 서백후의 사신이 성 아래 도착했습니다.”

이때 소호는 흑호와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가 말했다.

“오! 서백후 희창은 서기(西岐)의 현인이신데 사신을 보내셨다니 얼른 맞아들여라!”

잠시 후 산의생이 예를 올리자 소호는 물었다.

“대부는 현신으로 소문이 나셨던데 서백후의 편지를 가져오셨다니 무슨 깨우쳐 주실 것이라도 있으신지요?”

산의생은 공손히 편지를 꺼내어 바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소호가 받아 펼치니 내용은 대략 이러하였다.

“서백후 희창이 절하며 기주군후 소공(蘇公) 휘하에 올립니다. 지금 천자는 어여쁜 후궁을 뽑으려 하고 마침 공에게 덕스러운 여식이 있으니 이에 천자의 요청은 참으로 아름다운 경사입니다. 그런데 그대가 이 일에 천자에 맞서 반역시를 만천하에 보였으니 이는 이미 크나큰 불충이고 반역이 명백합니다. 이는 딸 아이에 대한 작은 정(情) 때문에 군신의 도리를 잃고 사직의 안정을 버린 선택이 아닙니까? 저 희창 역시 기주를 진멸하라는 어명을 받든 입장이기는 하나 평소 소공이 충의롭다고 들어왔으매 차마 칼을 겨눌 수 없어 미리 한마디 올리오니 부디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소공께서 따님을 궁궐에 보내면 세가지 이익이 있습니다.
딸이 후궁이 되고 총애를 받으면 따님도 은총을 받아 행복을 누릴 것이며 그 아버지는 척족이 되어 천종의 큰 봉록을 받게 되는 게 첫째요, 기주를 영원히 안정되게 다스리며 아무 걱정근심이 없으리니 이것이 둘째요, 백성이 전란에 빠지지 않고 삼군이 도탄에 빠지는 일이 없으리니 이것이 셋째입니다.

반면 소공이 딸만을 주머니 속 구슬처럼 아껴 기어코 보내지 않는다면 세가지 해로움이 있을 것이니-기주가 머지않아 무너져 종사(宗社)가 보존되지 못함이 첫째요, 군후와 따님을 포함하여 일가가 모두 참수당하고 멸족될 것이니 이가 둘째요, 온 백성이 반적으로 표적이 되어 집은 불타고 짓밟혀 죽으며 남는 자마저 다른 군의 노비로 될 것이니 이것이 셋째입니다. 이 희창이 소공과 같이 상나라의 신하로써 마지 못해 바른 소릴 하여 언짢게 해드림이 송구스럽습니다만 부디 유념하시어 곧바로 회답을 해주시길 바라옵니다. 삼가 올립니다.” 

소호는 편지를 다 읽고 한동안 말을 잊는듯 망연히 벽만 바라보았다. 그런 소호를 보고 산의생은 밀어부쳤다. 

“군후께선 머뭇거리실 이유도 시간도 없습니다. 만일 영명한 뜻으로 이 편지의 뜻을 받아들이신다면 이로써 전쟁은 단박에 끝나고 평화가 찾아들 것입니다. 그 반대라면 신은 우리 주군께 가서 그대로 보고할 것이고 본격적으로 군대를 출정시키게 될 것입니다.  위로는 임금의 어명에 복종해야 하고 가운데로는 제후들과 화합해야 하며 아래로는 삼군의 수고로움을 면하게 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속히 답을 해주시지요!”

소호는 마침내 결심한듯 편지를 흑호에게 건네어 보여주며 말했다.

“현제(賢弟)여! 서백후께서 보낸 이 편지를 읽어보게나. 실로 이치에 합당하고 진실로 국가와 백성을 위하는 인의 군자인 게 느껴지네 그려. 감히 이제라도 그 편지의 뜻을 따름이 옳다고 보네!”

흑호 역시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 뜻 역시 그러합니다. 이렇게 계기를 만들어준 서백후께 감사를 드려야겠습니다. 저는 피튀기게 부닥치면서도 형님을 설득하지 못했는데 서백후는 편지 한장으로 전쟁을 종식시키었으니 그 국량이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호는 산의생에게 답신을 써주며 비단을 선물로 주어 돌아가게 하며 약조했다.

“나는 곧 딸을 천자께 바치고 입궐하여 속죄토록 할 것이외다.”

숭흑호는 소호에게 말했다.

“이제 두 가지 급한 일이 남았습니다. 우선 약조대로 시급히 여식을 궁으로 보내셔야 합니다. 만에 하나 일이 늦어지면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며 다시 양측 다 다시 지옥불을 밝히게 될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제가 숭후호 형의 막사로 돌아가 철수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알겠네! 내 그리 하리니 아우도 내 아들 전충을 모쪼록 서둘러 풀어주시게! 늙은 어미가 매일 울고 있다네.”

“당연히 그리 해야지요! 걱정 마십시오!”

숭흑호는 성을 나가 숭후호의 진영으로 나아가서 자신의 귀환을 알렸다. 숭후호는 그의 귀환을 반기는 한편 서백후의 편지에 대해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역시 내 아우! 도술로 그 곳을 빠져나온 것인가? 쓸모없는 눈뜬 장님들 같으니라고! 그 사이에 서백후의 편지를 사신이라는 작자가 한 장 들고 왔었다네. 이제 와서 딸을 바치고 전쟁을 끝내자고 허튼 수작을 하는데 내 기가 막혀서 혼이 났다네. 세상이 그렇게 녹록한가 말이지! 자네가 거기서 뭐 들은 소식이라도 있는가? 그 사신 살아 돌아가긴 했는가?”

숭흑호는 그런 형의 말을 듣자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을 느꼈고 결국 벌떡 일어서며 냅다 소릴 질렀다.

“형님! 언제 정신을 차리시겠습니까? 소호는 이미 딸을 천자께 바치고 입궐하여 속죄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자존심을 접고 자기 종사와 백성을 염려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현명합니까? 그런데 형님은 섣불리 성을 공격하다가 크게 장수와 군사의 소중한 생명을 도륙 당했습니다. 그러고도 조정을 받드는 제후로서 조정을 위해 현명한 계책을 세울 생각도 없고 오히려 천자 측근의 간신들의 천박한 꾐에 빠져 이런 지경에 이르렀으면서도 부끄러운 줄도 모릅니다. 그 모든 행위가 저 희창의 편지 한장만도 못하였으니 이게 무슨 꼴입니까?”

“아우! 그게 무슨 소린가? 설마 소호가 그 편지대로…”

“나는 이제 형님과 다시는 안 볼 겁니다. 여봐라! 소전충이 갇힌 곳으로 날 안내하라!” 

시위병들은 감히 숭흑호의 명을 거부하지 못하고 소전충을 풀어주었고 소전충은 모든 상황을 들은 후 흑호에게 고개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

“은혜에 감사합니다. 이 어린 조카를 용서해주시고 살려주시니 감격할 따름입니다!”

흑호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해주었다.

“어진 조카는 어서 가서 아버님께 서둘러 천자를 배알하시라고 말씀 드려라. 나는 천자께 상소를 올려 너희 부자가 조정에 가서 사죄함이 통할 수 있도록 하겠네.”

소전충은 사례하고 군영을 빠져나와 말에 올라 기주로 돌아갔으며 숭흑호 역시 삼천 군사를 거느리고 자신의 근거지인 조주로 돌아갔다. 이런 마당에 숭후호 역시 군사를 수습하여 자신의 본국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으며 따로 조정에 상소를 보내어 죄를 청하였다.

■ 기주출사(冀州出師)... 기주를 떠나 조가로 향하는 비장한 행렬

소호는 아들 전충을 맞아들이고 서둘러 부인 양씨에게 딸을 궁궐로 보내기로 한 사실을 토로했고 양씨부인은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채로 말했다.

“이 아이가 예쁘게 자랐다고는 하나 임금을 모시는 예절을 모르니 무슨 사단이라도 나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어쩔 수 없지. 아무리 우리에게 딸이 소중해도 기주 백성 전체를 희생할 수는 없지 않겠소?”

달기도 그 소식을 전해 듣고는 비 오듯 눈물을 흘렸으며 곁에서 지켜보는 마시도 가슴이 저려왔다.

“달기야! 혹여라도 이상한 마음먹지 말아. 네가 잘못되면 일가족이 다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거 알지?”

달기 자신이 너무도 그것을 잘 알기에 더욱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흐느꼈다. 

“마시! 나 하나라면 난 내 목에 비수를 꽂아버릴 거야!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오빠 모습을 보니 차마 그럴 수 없네!”

물론 그 둘의 대화는 둘만이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달기는 눈물을 가리고 마차에 올랐고 오빠 전충은 반나절이나 배웅을 하고 돌아갔다. 전충이 마지막으로 달기를 보낼 때 차마 돌아서지 못하고 하염없이 그녀를 바라봤으며 달기 또 한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소호는 맨 앞에서 달기의 마차를 보호하며 시종들과 함께 나아갔다. 행차 앞에는 ‘귀인(貴人)’이라 쓴 깃발 두개가 앞장을 섰고 가는 길에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셔가며 하루 종일 시간을 다투어 궁이 있는 조가를 향해 먼지를 밟으며 나아갔다. 

푸른 버들 우거진 옛길을 지나 붉은 살구꽃 숲을 지났으며 까마귀 울어 봄을 부르고 두견새가 달을 보고 울었다. 가는 노정이 하루이틀에 그치는 것이 아니어서 물을 건너고 산을 넘었다. 다른 공간에서 마시 또 한 달기의 마차를 따르며 잦은 대화로 그녀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있었다.

그날도 날이 저물어가는데 도착한 곳은 은주(恩州)였다. 은주의 역승(驛丞)이 그들을 접견하자 소호는 말했다.

“역승은 들으시오. 은주역 청사를 청소하고 귀인을 모시도록 하시오.”

그러자 역승은 안절부절하며 대답했다.

“군후께 아룁니다. 이 역은 몇 년 전부터 귀신이 출몰하였는데 이곳에 머문 군후들이 모두 
편치 못했습니다. 그러니…”

소호는 언성을 높였다.

“천자의 귀인이거늘 무슨 삿된 귀신 따위를 두려워하겠는가? 하면 우리가 길바닥에라도 임시막사를 치고 머무르란 말인가? 어서 역관을 청소하여 늑장을 부리지 않도록 하라!”

결국 역승은 인부들을 시켜 역의 대청과 내실을 청소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잠시 후 소호는 달기를 내실로 들어가 쉬게 하고 수십명의 시녀가 시중들게 하며 삼천명의 군사들이 주변을 둘러서 철통 같은 대비를 했다. 소호는 대청에 앉아 생각했다.

‘이곳은 천자의 관리가 용무를 보는 곳으로 사람이 밀집한 곳인데 무슨 귀신이 왕래한단 말인가?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도 있으니 만전의 대비는 해야겠지만.’

그는 표범꼬리 채찍을 부적 삼아 대청에 놓아두고 병서를 펼쳐보다가 이경, 즉 밤 열시를 알리는 북소리가 들리자 슬며시 일어나 내실 쪽으로 가보았다. 

달기도 시녀들도 조용히 잠든 듯하여 그는 안심을 하고 다시 돌아서는데 한줄기 싸늘한 바람결이 귀밑터럭을 쓸었다. 동시에 흉맹한 사기(邪氣)가 살갗에 파고들어 닭살을 돋아나게 하였고 등불이 꺼질 듯 흔들리다가 다시 밝아졌다.

‘이것은 산개의 포효인가? 이무기의 신음소린가?’

비장한 바람 사이 밤안개 속에 한쌍의 눈이 나타났는데 마치 무덤가의 혼불인듯 흔들리다가 사라졌다. 소호는 자신이 너무 예민한가 싶어 고개를 절래절래 젓고는 자기 침소를 향해 걸어갔다. 

그 순간 잠 못 이룬 마시 역시 달기 곁을 지키고 있다가 그 사특한 냉기를 느끼고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보고 말았다. 유령처럼 희미하게 내실로 스며드는 한줄기 그림자! 그것은 마시를 보고 멈추었고 귀기어린 웃음의 파동이 소리없이 느껴졌다.

“힐힐힐힐~~~우리 어째 초면은 아닌듯 하네?”

그것이 발출하는 사념 한자락이 소리도 없으면서 파고드는 고드름처럼 마시의 귀고막을 싸늘하게 만들었다.

“천년 여우?!”

천년여우-과연 뜻대로 인체를 탈취할 것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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